미국에서도 인문학 논문의 숫자가 급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보면, 철학과 인문학이 정말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발전한 선진국들은 이제 단순한 경제성장이나 제도적 민주주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이런 문제를 개별 분야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고, 그 통합된 사고를 이해하고 사회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가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21세기 인문학의 역할은 대략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푸코적 비판 —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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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철학(롤스와 칸트) — 무엇이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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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사회과학(케인즈, 하이에크) — 무엇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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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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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적 공론장 — 시민들이 이것을 어떻게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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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dung(가다머) — 어떤 인간과 시민이 되어야 하는가?
푸코만 남으면 모든 것이 권력의 문제가 되고,
경제학만 남으면 모든 것이 자원배분의 문제가 된다.
권리와 정의의 정당성만 강조하면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제약을 놓칠 수 있고,
공론장만 남으면 무엇이 정당한지에 대한 규범적 기준 없이 토론의 절차만 남아 공회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가다머가 말한 교양(Bildung)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사라지면 정작 그 모든 논의를 수행해야 할 인간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대학에 형해화된 교양수업들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여러 과목을 조금씩 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지식과 가치들을 연결하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교양의 본래 의미에 더 가깝지 않을까.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문학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무자식 상팔자에 나이 먹어가는 나는 그냥 퇴직금 받은 것 쓰면서 살다가 죽을 생각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