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의 『논리 연구 1』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는 중인데, 갑자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그런데 논리학의 과제는 완전히 다른 종류이다. 논리학은 지성적 활동의 인과적 기원과 결과가 아니라 그 진리의 내용을 심문한다. 즉 논리학은 그와 같은 지성적 활동이 그 결과로 얻은 판단이 참이기 위해 어떤 성질이어야 하고 어떻게 경과해야 하는지를 심문한다. 올바른 판단과 거짓된 판단, 통찰에 의한 판단과 맹목적 판단은 자연법칙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며, 이것들은 모든 심리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인과적 전제와 귀결을 갖는다. 하지만 논리학자가 관심을 두는 것은 심리적 현상의 자연적 연관이 아니다. 그는 항상 실현된 것으로 발견하지 못하지만, 사유작용이 사실적으로 경과하는 가운데 실로 오직 예외적으로만 실현된 것으로 발견하는 이념적 연관을 추구한다. 논리학자의 목표는 물리학(Physik)이 아니라 사유작용의 윤리학(Ethik)이다. 그러므로 지그바르트는 사유작용을 심리학적으로 고찰하면서 “참과 거짓의 대립은 인간의 행위에서 선과 악의 대립이 심리학적 대립인 만큼 ... 역할을 하지 않는다."라고 정당하게 강조한다.
이에 대해 심리학주의자가 답변하겠지만, 우리는 그와 같이 어중간한 논의에 만족할 수 없다. 확실히 논리학은 심리학과 전혀 다른 과제를 갖는다. 과연 누가 이러한 사실마저 부정할 것인가? 논리학은 곧 인식의 기술공학이다. 그러나 이때 논리학은 어떻게 인과적 연관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 있고, 자연적 연관을 연구하지 않고 어떻게 이념적 연관을 추구할 수 있는가? "마치 모든 당위(Sollen)가 존재(Sein)에 입각하지 않듯이, 각 윤리학이 동시에 물리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에드문트 후설, 『논리 연구 I: 순수논리학의 서론』 이종훈 옮김, 민음사, 2018. p.117)
이때 굵게 표시한 부분이 위의 내용과 관련해 어떤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막히는 느낌도 들어서, 영어 번역본을 봤는데 번역이 조금 다르더라고요.
"As if every 'ought' did not rest in an 'is', every ethics did not also have to show itself a physics."
(J. N. Findlay 번역, Logical Investigations Vol.1. Routledge, 2001. p.43)
후설은 각주에서 이것을 립스의 「인식론의 과제」 529쪽에서 인용했다고 말하는데, Husserliana에 있는 독일어 원문은 이러하나 제가 독해할 수가 없네요.
"Als ob nicht jedes Sollen auf ein Sein sich gründen, jede Ethik sich zugleich als Physik ausweisen müßte."
후설은 심리학주의가 '존재/당위' 구분을 혼동한다고 지적하죠. 오늘날 널리 퍼진 철학적 용어로 재서술하자면, 심리학주의는 '자연주의의 오류(naturalistic fallacy)'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지구는 둥글다(is)."라는 존재에 대한 사실로부터 "지구는 둥글어야만 한다(ought to)."라는 당위에 대한 주장을 이끌어내려 하는 시도는 논리적 비약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1+1=2라고 생각한다(우리의 심리는 그런 성향을 지니고 있다)."라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1+1=2라고 생각해야만 한다(수학적 계산은 그런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논리적 비약이라는 겁니다.
즉, 1+1=2라는 진리가 통계나 투표로 정해진 결과 따위가 아닌 이상, 우리가 1+1이라는 계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1+1=2라는 것은 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논리학이나 수학의 문제에서는 '자연적' 혹은 '인과적' 연관 따위를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Sie ist eben Technologie der Erkenntnis; aber wie könnte sie dann von der Frage nach den causalen Zusammenhängen absehen, wie könnte sie nach idealen Zusammenhängen suchen, ohne die natürlichen zu studiren? ,,als ob nicht jedes Sollen auf ein Sein sich gründen, jede Ethik sich zugleich als Physik ausweisen müßte."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풀어서 새로 구성해 볼게요. (직역에서는 벗어난 것입니다)
[심리학주의에 따르면] 논리학은 곧 인식의 기술공학이다. [논리학이 인식의 기술공학이라면] 논리학은 인과적 연관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고, 자연적 연관을 연구하지 않고 이념적 연관을 추구할 수 없다 "[따라서 심리학주의에 의할 때에는] 마치 당위(Sollen)가 존재(Sein)에 입각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거나, 각각의 윤리적 고려 역시 동시에 자연학으로 증명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즉, 자연적 연관을 연구하지 않고 이념적 연관을 추구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못이 된다."
제시하신 독일어 문장,
"Als ob nicht jedes Sollen auf ein Sein sich gründen, jede Ethik sich zugleich als Physik ausweisen müßte."은 als ob nicht [A und B] müßte의 구조룰 하고 있는데 여기서 부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nicht는 A문장뿐 아니라 B에도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위에 제시한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위 문장의 내용은 후설의 주장이 아니라 심리학주의자들의 주장으로서 이후에 후설이 반박을 할 대상입니다. 후설은 <논리연구>에서 순수논리학이 독자적인 이념적 학문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그바르트는 정당하게 다음을 강조한다: 사고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할 때, "참과 거짓의 대립은 인간의 행위에서 선과 악의 대립이 심리학적인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심리학주의자는 이렇게 답변할 것이다: 우리[=심리학주의자]는 그와 같은 어중간한 논의에 만족할 수 없다.
In der psychologischen Betrachtung des Denkens hat „der Gegensatz von wahr und falsch ebensowenig eine Rolle [. . .] wie der Gegensatz von gut und böse im menschlichen Handeln ein psychologischer ist".
Mit solchen Halbheiten - so werden die Psychologisten antworten - können wir uns nicht zufrieden geben. [...]
따라서 Yates님이 지적한 것처럼, 이 뒤에 오는 문장들 역시 심리학주의자들의 주장으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심리학주의자들의 요지는, 한편으로 당위와 사실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전자에 대한 탐구는 결국 사실적 기술로 수행될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랜만이에요, Herb 선생님. 제가 놓친 부분까지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좀 헷갈릴 수 있는 것이 후설이 심리학주의를 비판하면서, 심리학주의자인 지그바르트의 주장에 대해 '정당하게 다음을 강조한다'고 한 부분일 텐데요,
Mit Recht betont daher Sigwart: In der psychologischen Betrachtung des Denkens hat ,,der Gegensatz von wahr und falsch ebenso wenig eine Rolle . . ., wie der Gegensatz von gut und böse im menschlichen Handeln ein psychologischer ist.
이 부분은 Herb님의 해석대로,
그러므로 지그바르트는 정당하게 다음을 강조한다: 사고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할 때, "참과 거짓의 대립은 인간의 행위에서 선과 악의 대립이 심리학적인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즉, 선/악의 대립 문제는 규범적, 이념적인 차원의 문제이고, 심리적 차원의 대립이 아니라는 것인데요, 이는 후설도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심리학주의자인 지그바르트가 이 점을 옳게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심리학주의적 주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임으로써, 심리학주의가 얼마나 모순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려는 후설의 의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