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석사과정 진학 관련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 중인 3년차 변호사입니다. 밤낮없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만 하는 삶이 지쳐서,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원없이 해보려고 내년 1학기에 철학과 석사과정 진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에 진학할지, 아니면 석사만 마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올지는 그때가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대학원을 선택하는 기준입니다. 저는 영미 분석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석사과정에서 영미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은데, 자교(제가 학부를 졸업한 곳)에 유명한 교수님이 한 분 계시지만(저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교수진의 성향이 전반적으로 영미철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자교에 지원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기는 하겠습니다만, 저는 학부 전공도 철학과 거리가 먼 상경계열이었는지라, 자교를 고집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자교를 선택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학교라도 영미철학을 전공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신 곳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지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석사과정 대학원을 선택함에 있어서 교수진 전반의 백그라운드가 중요한지, 아니면 지도교수님의 전공분야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지도 여쭙고 싶습니다.

조언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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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어려운 문제네요. 언뜻 듣기로 수도권 내에서 성대에서 현재 분석철학 전통과 밀접한 수업이 비교적 많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여러 선생님들의 교정 부탁드려요)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1. 분석철학 전통 내에서도 어떤 주제에 특히 관심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 질문 맥락에서 다소 벗어나지만, 사실 석사 과정 시 내 관심과 떨어져 있는 세미나에 참여하는 것이 소중하고 의미있는 경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도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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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가 좋은 조언을 드릴 입장은 전혀 아니기에 적절한 답변을 드리진 못하지만 제 생각을 몇 자 남겨봅니다.

대학원 진학 시에 저는 생활권과 생활안정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만, trope님의 글에서 이 요소가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trope님께서 철학에 대한 배경이 꽤 있으시다면 지도교수를 중심으로, 철학에 대한 배경이 거의 없으시다면 전반적인 백그라운드를 중심으로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제가 답을 쓰는 사이 skim9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셨네요. 논문 주제나 관심 분야가 명확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저는 전반적인 배경을 쌓으면서 관심분야를 탐색해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처음부터 너무 선택지를 좁게 잡아놓으면 나중에 관심분야가 바뀌어 버리거나 했을 때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분석철학만 해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유연한 선택지를 가지고 진입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제가 종종 분석철학으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면 물어보는 게 비트겐슈타인 하고 싶냐는 얘기인데요, 혹시 특별히 비트겐슈타인이 공부하고 싶으신 것이라면 잘 알아보시고 컨택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분석철학 전공이지만 교수님께 비트겐슈타인 얘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보다 더 좋은 댓글이 많이 달려서 고민이 해결되시면 좋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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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님이나 skim님이 정론은 말하셨고 저는 각론만 몇 덧붙이겠습니다.

  1. 분석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의 선택지에는 비단 지도교수님 혹은 철학과 다른 교수님이 분석철학인 것과는 무관하게, 고려하실 요소가 있습니다.
    학부 수업과 학점교환 프로그램입니다.

  2. 통상 대학원생이라면 한학기에 두 수업 정도를 듣습니다만, 기실 분석철학 전반을 훑는다기보단 좁은 주제에 관해 수업이 진행됩니다.
    예컨대 학부에서는 언어철학이라고 수업이 열리겠지만 대학원 레벨에서는 화용론과 어쩌고저쩌고 등의 수업이 열립니다.

그래서 쓰신분이 철학적 배경이 없다면 아마 학부수업을 들으실거고 학부수업 커리큘럼이 폭넓고 좋은 곳을 찾는게 나아보입니다.

  1. 학점 교환은 우선 연대-서강대-이대-홍대가 하나로 묶여서 진행됩니다. 딴 곳도 있을수도 있고요. 이걸 고려하면 자교내 영미철학 전공자 수가 적어도 총 인원은 더 많은 경우가 생길수도 있겠죠.

  2. 졸업 요건도 중요합니다. 졸업 요건에서 동양철학이나 철학사 등의 필수 조건이 있을겁니다. 이런 요건이 있다면 아까운 학점 3을 날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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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이 따듯하고 상세한 조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 하나하나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언들을 살펴보니 저의 철학 배경지식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학부시절에 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철학과에 열리는 분석철학 계열 전공수업을 몇 개 수강한 적은 있습니다. 사실 학교보다도 그냥 혼자 공부를 더 많이 한 것 같은데, 국내에 번역된 분석철학 학술 개론서들은 꽤 많이 읽었고, 국내외 대학에서 쓰이는 교과서 원서도 좀 읽었습니다(예컨대 Routledge 시리즈). 이외에도 관심있는 주제에 관한 SEP 엔트리를 꾸준히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안 할 때) 읽고 있고요. 이런 식으로 혼자 공부한 것이 2년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사람만큼은 아니겠지만, 배경지식이 전무한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무리없이 소화할 정도가 될지는 자신이 없지만요.

아직 연구주제 수준으로까지 관심사를 특정할 내공은 안됩니다만, 브로드하게 말하면 언어철학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아울러, Raccoon님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 올리겠습니다. Raccoon님께서 질문하신 의도를 함부로 넘겨짚는 것일까봐 염려스럽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어 분석철학에 입문했다가 실제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그와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경우가 꽤 빈번하기 때문에 그렇게 여쭤보신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비트겐슈타인이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다시 한 번 아낌없이 조언을 베풀어 주신 세 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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