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철학 독해력에 관하여: 제 신념이자 나름대로 자기객관화로 얻은 철학 학습 경험칙인데, 취향만 맞는다면 기성 카테고리(분별 기준들)에 구애 받지 말고 닥치는 대로 다 읽다 보면 어느새 독해력은 갖춰지더라구요. (제 입으로 말해 부끄럽긴 하지만 저 같은 경우, 요즘은 '그' 순수이성비판을 필요한 정보를 거의 누락하지 않으면서 가볍게 책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칸트 전공자'가 아닙니다'.) 다만 소위 고전으로 분류되는 것들이나 정보 밀도가 유독 높은 텍스트, 자기 자신에게 "취향저격"인 철학자/사상가나 사조 등의 척추를 이루는 핵심 텍스트는 확실하게 큰 무게 비중을 두어서 시간과 집중력의 "선택과 집중"을 하시는 전략전술도 권유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나라는 철학자의 메인 텍스트는 내가 메인이라고 믿고 읽어온 것들이 그 구성에 더욱 많이 기여하기 마련이거든요.
학부 시절에는 일단 교수님이 대학 강의에서 제시하시는 철학적 내용과 철학적 논증의 구조를 철저하게 '암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머릿속에 철학의 기본 주제들과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암기되어 있어야, 그 지식을 비판하거나 극복하는 작업도 이루어질 수 있죠. 창의적인 사고를 하려고 해도, 암기를 통해 미리 갖추어진 자원이 없으면 사고가 공허해지기 쉽습니다. (말 그대로,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한 거죠.)
그래서 학부생 시절에는 일단 강의 내용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외우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물론, 의문이 나는 부분이 있으면 교수님께 질문도 드려야 하고 따로 책도 찾아보셔야겠지만, 적어도 시험 기간만큼은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완벽하게 외워서, 눈을 감고도 백지에 교수님이 강의하신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 없이 쓸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로, 칸트의 '존재' 개념에 대해서 하이데거가 쓴 뛰어난 논문이 있습니다. 『이정표』라는 하이데거의 논문집에 수록된 「칸트의 존재 테제」라는 글인데, "존재는 실재적 술어가 아니다."라는 칸트의 유명한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설합니다. 존재가 저 어딘가에 자신만의 내용을 가지고서 놓여 있는 고정된 사물 따위가 아니라, 감성과 지성 '사이'에서 성립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하면서, 존재와 사유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글인데, 하이데거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다소 읽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적 사고를 하는 능력이 뛰어나면 학부 학점을 잘 받는 데에는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높은 학부 학점이 뛰어난 철학적 사고 능력의 필수적인 조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시험에서 출제자가 기대하는 바 및 의도에 부합하는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뛰어난 철학적 사고 능력을 이루는 요소들이 저 기대와 의도에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그 유관 정도가 달라질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YOUN 선생님 조언처럼,
이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철학 이론의 전반적인 내용과 핵심적인 논증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새로 방문하는 여행지의 지도를 챙기는 것 또는 그 지역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는 팜플렛 중 핵심적인 내용들을 기억해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철학적 내용과 철학적 논증의 핵심 구조를 암기하고 또 직접 손으로 정리해보면, 어느 순간 이해가 잘 안 가는 지점들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런 부분들을 교수님께 질문하고, 책을 찾아보고, 논문도 읽어보면서 보충하게 된다면, 이전보다 더 나은 이해, 조금 더 넓어진 시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들과 해당 주제에 관해 계속 대화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