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게 관련하여 질문드립니다

Richard G. Heck과 Robert May(이하 저자)의 <Frege's Contribution to Philosophy of Language>를 읽고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언어철학에 있어서 프레게의 기여를 살펴보는 논문이기도 하고, 프레게의 언어철학에 있어서의 기획의도(논리주의)에 따라 Boole식 논리에서 프레게 자신의 논리로의 이전에 있어서 일반성 처리부터 문장의 지시체로서의 진리값, 뜻과 지시체 논의로 이어지고, 그 결과 언어철학에 대한 프레게의 영향력은 이름의 지시체 결정에 있어서 정보의 중요성을 수용하는 데 있다는 논문이기도 합니다.

위의 설명이 개략적으로 읽고 적은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다시 읽으면서 논지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중 프레게가 함수의 unsaturatedness(AI 번역으론 '비포화성' 정도로 번역되던데, 맥락상 표현에 적용될 경우 그 표현이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표현(이름)과 조합되어 나타나진다는 의미로 사용되곤 합니다. 또, 함수나 개념, 즉 프레게가 술어의 지시 대상으로 본 것에 대해 적용될 경우에는 그것이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판단 가능한 내용-그러니까, 문장(평서문)의 내용-을 분해함으로써만 드러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다만 개념의 비포화성의 경우, 그것이 술어의 비포화성을 통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달라집니다. 지금 적어놓은 건 프레게의 초기 견해에 더 가깝단 뜻입니다.)과 술어의 비포화성에 대해, 그 둘 간의 우선 순위에서 후자를 위에 두는 식으로, 즉 술어의 비포화성을 통해 함수의 비포화성을 설명하는 식으로 주장하는 파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이에 대해 먼저 제가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말씀드리고, 이런 이해가 괜찮을지를 여쭙고자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레게의 논리에서, 술어의 비포화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이름과 술어 간의 근본적인 통사적 구별을 옹호하는 것은 잘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술어의 지시 대상인 개념이 포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종종 그가 그 자신의 통사적 구분을 세계에 투영하는 것 같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인 주장으로, 혹은 그것이 판단의 가능한 내용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심리학적인 주장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개념의 비포화성에 대한 주장은 그런 주장이 아니고, 술어와 그 지시 대상 간의 연결, 즉 술어의 의미론적 성격에서 비롯되는 의미론적 주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논증하는 데 있어 술어의 통사론적 특성이 어떻게 그 의미론적 조항에 반영되는지, 그리고 말 개념 문제(The concept horse ploblem)에 대한 술어와 이름의 지시 대상과 그 통사론적 차이 간의 긴장을 어떻게 해소하는지를 보이고자 한다.

우선, 술어가 포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항상 적절한 수의 논항과 함께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술어에 대한 의미론적 조항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나타나야 한다:

(0) ⌜Δ is mortal ⌝ denotes… / 여기서 Δ는 보조 이름(auxiliary names)이다. 여기서의 역할은 논항으로 등장할 수 있는 표현들을 포함하는 통사적 변수이다.

그에 따라 프레게의 주장을 반영한 술어에 대한 의미론적 조항은 다음과 같다:

(1) ⌜Δ is mortal⌝ denotes the True iff, for some x, Δ denotes x and x is mortal.

(1)과 같은 방식은 술어의 지시 대상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진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내면 말 개념 문제가 발생한다:

(2) The predicate ‘is mortal’ denotes the concept mortality.

(2)의 문제점은 이름과 술어 간의 근본적인 통사적 차이, 즉 이름은 비포화적이지 않은 반면 술어는 비포화적이라는 차이에 따라 이름과 술어의 그 의미론적 조항은 달라야 할 것처럼 보이는데, (2)와 같은 방식은 이름의 의미론적 조항과 동일한 방식이라는 점이다. 즉,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술어는 그 비포화성에 따라 적절한 수의 논항과 함께 표현되어야지 문장이 될 수 있고, 그 문장의 내용에서 개념을 분해해냄으로써 그 지시대상이 주어져야 하는데, (2)와 같은 방식은 그렇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레게가 제시한 방식은 한 술어와 그 술어의 지시대상(개념)에 대한 지시절을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

(3) denotes (‘ ξ is mortal’, x is mortal) / 여기서 ξ은 논항 자리(argument-place)이다. 여기서 x는 속박 변수(bound variable)이다.

(3)의 방식은 ‘ ξ is mortal’라는 표현 자체를 하나의 논항으로 두고, 그 술어 표현이 지시했을 개념을 취하는 지시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방식에 따를 때, ‘ ξ is mortal’은 논항을 지시하는 고유명사가 되고, x is mortal은 그 개념을 지시하는 술어(그에 따라 포화되지 않음으로 속박 변수 x를 논항으로 가지는)가 된다.

이에 따라 원자적 문장과 같은 단순한 문장의 구성 원리를 마련해볼 수 있다:

(4) Φ(Δ) denotes the True if, and only if, for some φ and for some x, denotes (Φ(ξ), φx) and denotes (Δ, x) and φx. / 여기서 ‘Φ(ξ)’는 술어를 대상으로 하는 구문적 변수(syntactic variable)이다.

이에 따라 다음이 증명된다:

(5) denotes (Φ(ξ), φx) iff, for every Δ, Φ(Δ) denotes the True iff, for some x, denotes(Δ,x) and φx. / (4)에서 (5)에 대한 증명에는 한 술어가 최대 하나의 개념만을 가진다는 가정이 들어가야 한다. 정확히는 한 술어과 각각의 두 개념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지시절이 모두 참이라면 그 두 개념은 논리적으로 동치라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4)가 말하는 것은 임의의 술어와 논항으로 이루어진 문장의 논리적 동치 조건이고, (5)가 말하는 것은 임의의 술어에 대한 지시절의 논리적 동치 조건이기 때문에, (4)로부터 (5)가 나오기 위해서는 그 판단의 가능한 내용에 있어서의 개념과 그 술어 간의 지시 관계가 여러 개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이 현 질문 내용과 큰 관련을 가질 일은 없다. 여기서 (4)와 (5)는 술어에 대한 지시를 정의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만 이해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 (1)은 (5)의 적절한 사례에서의 우변이므로, 이제 우리는 (1)이 술어의 지시 대상을 결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시 되는 것은 술어의 의미론적 조항에 있어서 (1)을 근본적으로 둘지, 그러니까 그 술어의 의미론적 조항을 문장을 구성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는 식으로 둘지, 아니면 (3)을, 즉 술어의 비포화성을 반영하는 식으로 그 지시절과 그 지시를 정의하는 식으로 둘지에 대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술어와 개념의 비포화성 중 어느 것이 보다 근본적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1)의 방식은 술어의 비포화성으로 개념의 비포화성을 설명하는 것이라기 보다, 먼저 문장을 형성한 후, 그 문장의 내용-판단의 가능한 내용-을 분해함으로써 술어의 지시대상을 결정짓는, 즉 개념의 비포화성을 먼저 전제한 뒤에 그에 따라 술어의 비포화성을 정당화하는 방식이고, (3)의 방식은 술어의 비포화성에 따라 술어에 대한 지시절을 형성한 뒤 그에 따라 지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왜 (3)을 선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면 왜 프레게가 술어의 비포화성으로 개념의 비포화성을 설명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프레게의 논리주의 프로그램에 있어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가 원자적 문장이 논리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레게를 따를 때, 논리적으로 근본적인 관계는 개념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개체(내지 대상)가 개념에 속하는 관계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불의 논리에서 나타났던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개념과 개념 간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과 개념 간의 관계이다. 이 때 우리는 프레게의 방식을 따라 전자의 관계를 조건문으로 환원할 수 있다. 가령, 불의 논리에서 '인간은 필멸적이다'라는 문장은 '인간', '필멸성'과 같은 술어와, '_는_이다'라는 주어와 술어의 관계로서의 판단 형식을 지시하는 연산자로 이루어지지만, 프레게의 논리에서는 논항을 지시하는 이름, 함수를 지시하는 술어로 이루어지며, 그에 따라 '인간은 필멸적이다'와 같은 문장의 경우에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논항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x에 대해 x가 인간이라면, x는 필멸적이다'와 같은 식으로 나타나진다.

만약 이렇다면, 프레게의 논리에 따를 때, 원자적 문장이 근본적이기 때문에 주어와 술어의 관계로서의 판단 형식이 있을 곳은 없다. 대상과 개념간의 관계를 서술하는 문장은 근본적으로 개념과 개념간의 관계를 서술하는 문장과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바로 이것이 프레게가 불의 논리와 중요한 차이점으로 내세운 일반성을 표시하는 문장과 그렇지 않은 문장 간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름과 술어로 이루어진 문장에서 술어는 그런 원자적 문장의 내용을 이름의 지시 대상인 대상을 그 자신의 지시대상인 개념에 속하게하는 방식으로 구성해야 함으로, 개념은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술어화되어야 한다. 즉, 개념의 비포화성은 술어의 비포화성에 따라 설명된다. 그리고 이는 술어(표현)과 개념(지시 대상) 간의 관계이므로 의미론적 관계이고, 문장의 내용을 조합하여 산출한다는 점에서 조합성(composition)의 원리와 관계된다.

여기서 유의하여야 하는 지점은 이런 개념의 비포화성에 대한 설명이 판단 형식에 대한 내용을 술어가 포함한다는 방식의 설명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념과 개념 간의 관계에 있는 것이며, 조건문으로 환원될 주어와 술어 간의 관계에 있어서 주어도 술어도 아닌 제 3의 요소인 것이지, 개념과 대상 간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프레게에게 있어 개념-대상 구별, 술어-이름 구별을 지워버리는 것은 문장의 의미를 형성하는 데 있어 조합성의 문제를 선제하거나 지워버리는 것이다. 만약 술어와 이름이 둘 다 대상을 지시한다면 그것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진리를 산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어떤 설명도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인데, 이것이 적절한 이해일까요? 아니라면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가요?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논문을 올릴 수 있는지를 잘 몰라서 일단 올리진 않았는데, 제가 요약한 내용에 대한 단락은 1.2 Concepts입니다.

제가 아직 문헌 표기법에 익숙치 않아서 제목을 통째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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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다소 복잡한 논의인데다 프레게에 대한 기초적 수준의 지식을 넘어선 의문이라 올려주신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게 어렵네요. 부분부분적으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1)

이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프레게주의에서는 지시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종종 "의미가 지시를 결정한다(Meaning determines reference)."라는 구호로 요약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다만, 현재 영미권 언어철학에서는 외재주의적이고 인과적인 지시 이론이 대세이다 보니, 프레게에 반대하여 "지시가 의미를 결정한다(Reference determines meaning)."라는 구호가 대부분의 언어철학자들에게는 더욱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2)

일반적으로는 "불포화성"으로 번역됩니다. 그렇지만 "비포화성"도 크게 잘못된 번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사실 프레게의 철학에서 술어의 뜻과 지시체가 각각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해석은, 술어의 뜻이 문장의 '불포화된 부분'이고 술어의 지시체는 '개념'이라고 주장합니다. '불포화된 부분'이라는 술어의 뜻을 통해 '개념'이라는 술어의 지시체가 결정된다는 것이죠. '의미' 혹은 '뜻'이 지시를 결정한다는 것이 프레게주의의 대전제니까요. 하지만 프레게를 자세하게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피터 기치와 마이클 더밋 사이에 이 주제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찾아보려니 제가 어느 논문에서 그 논쟁을 보았는지를 잊어버려서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네요.)

(4)

아주 독특한 해석을 제시하는 논문이네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프레게가 그냥 모든 것을 뜻/지시체로 나누려 하다 보니, 술어도 억지로 그렇게 나눈 거겠지."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논문 저자는 프레게를 옹호하면서, 술어의 뜻/지시체라는 구분을 설득력 있게 만들고 싶어하는군요.

(5)

수학에서는 x의 자리에 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변수"라고 번역하는 것 같지만, 언어철학에서는 x의 자리에 수가 아닌 다른 언어적 대상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변항"이라 번역합니다.

이 부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저에게는 명확하지 않은데요. 그러니까, denotes (‘ξ is mortal’, x is mortal)은, ‘ξ is mortal’라는 고유명사가 x is mortal를 지시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표현인가요? 그렇다면 여기서 x is mortal는 '술어'가 아니라 '개념'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x is mortal은 그 개념을 지시하는 술어가 된다."라고 하셔서 저로서는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헷갈리네요. (혹시 술어와 개념을 "x is mortal"와 x is mortal처럼 따옴표 처리 유무로 구분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생략하신 것이 아닌지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6)

논문의 핵심이 이 부분인 것 같은데요.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1)처럼 문장을 분해하여 고유명사와 불포화된 술어를 도출해야 하는지, (3)처럼 고유명사와 불포화된 술어로부터 문장을 조합해야 하는지가 쟁점인데, 그 중에서 저자는 (3)이 프레게의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네요. (그런데 사실 (3)이라고 표현해 주신 "denotes (‘ ξ is mortal’, x is mortal)" 자체는 불포화된 술어로부터 문장을 조합하는 방식을 나타내주고 있기보다는, 단순히 ‘ ξ is mortal’라는 이름의 술어가 x is mortal라는 개념을 지시한다는 사실을 기호화한 것처럼 보이네요.)

(7)

여기서 첫 번째 문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불분명하네요. 일단 (a) 프레게에게서 원자적 문장이 근본적이라는 점, (b) 원자적 문장은 대상과 개념의 관계를 표현하는 고유명사+술어 형식을 지닌다는 점, (c) 대상과 개념의 관계는 개념과 개념의 관계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은 올바른 해석이라고 보입니다.

(8)

이 부분도 글이 좀 불분명하게 요약되어 있는데요. 아마 (a) 프레게는 원자적 문장으로부터 더욱 복잡한 언어를 조합하려 하였고, (b) 원자적 문장은 고유명사+술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c) 따라서 고유명사와 술어는 더 이상 환원 불가능한 요소이기 때문에, (d) 고유명사가 독자적으로 뜻을 표현하고 개체를 지시하는 것처럼, 술어도 독자적으로 뜻을 표현하고 개념을 지시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굳이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앞에서처럼 denotes (‘ ξ is mortal’, x is mortal)라는 기호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네요. 그 기호법이 이 주장을 정당화하거나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서요. 굳이 저런 기호법을 통한 구분 없이도, 그냥 프레게가 개념과 개념의 관계보다 대상과 개념의 관계를 더욱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모든 논의를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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