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은 없다ㅡ 문답형식으로 논증 해봤어요

A:이 세상에 확실한 게 있을까요?
B:확실한거 있죠
어차피 인류는 멸종한다는 사실
A:인류는 멸종한다는 사실을 믿는 자신을 확신할 수 있으신가요?
B:네,인류는 확실히 멸종합니다
A:멸종을 확신하는 자신을 확신하는 자신을 또 확신할 수 있나요
B:네
A:저런 식으로 무한히 자신을 의심해보실 수 있나요
안타깝게도, 사람의 사고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절대 도달하지 못할 깊이의 사고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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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ep.utm.edu/kk-princ/
Greco, "Could KK be ok?"

정도가 생각나네요. 다만 epistemic modal logic의 사용빈도가 높아서 조금 테크니컬하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Benthem - Modal Logic for Open Minds에서 epistemic modal logic을 조금 다룹니다.

+) 무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로 무한은 하나의 숫자로 보지 않고, 'x가 무한으로 간다' 와 같은 방식으로 쓰입니다. 그 경우에는 'x는 어떤 숫자를 주어도 그 숫자보다 커질 수 있다' 정도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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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층위에서 접근할 수 있는 주제인데, "자신을 확신하는 자신을 또 확신할 수 있나요?"라고 쓰신 것을 보니 아마도 작성자님은 "나는 …을 확신한다." 혹은 "나는 …을 안다."라는 구조가 확실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자체가 종종 현대철학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가령,

(1) 지구는 둥글다.
(2) 나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
(3) 나는 내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는 것을 안다.

라는 세 가지 문장에서 (1)의 확실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드시 (2)나 (3)의 확실성까지도 정당화해야 하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지구는 둥글다."라는 지식의 확실성은 월식이나, 수평선이나, 별자리 등에 대한 과학적 관찰만으로도 충분히 정당화될 뿐, 그 지식이 확실성을 지닌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는지" 혹은 "확신하는지"의 문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1)을 정당화하기 위해 (2)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2)를 정당화하기 위해 (3)이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고요. 오히려 상황은 완전히 반대의 방식대로 일어납니다. 우리가 과학적 관찰을 통해 (1)을 정당화하고 나면, 우리는 (2)나 (3)까지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과학적 관측을 통해 "지구가 둥글다."가 확실성을 지니고 나면, 우리는 그제서야 "나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그 지식을 '나'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것이죠. (2)와 (3)이 (1)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1)이 (2)와 (3)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입장이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에 관하여』(ÜG)에서 제시됩니다. "나는 …를 확신한다." 혹은 "나는 …를 안다."라는 구조가 다른 지식들에게 확실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식들이 확실성을 지닌 것으로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나는 …를 확신한다." 혹은 "나는 …를 안다."라는 구조를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강력한 근거들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나는 …… 안다.’고 말한다. ‘나는 안다.’는 진리의 해명가능성과 관련되어 있다. (ÜG, 243)

그러므로 여기서 ‘나는 …… 안다.’라는 명제는 어떤 것들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표현한다. (ÜG, 330)

나는 …… 안다.’라는 발언은 그 밖의 ‘앎’의 증거와 결합해서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ÜG,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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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하자면, (2) 와 (3) 의 연결고리, 즉 kk principle에 대해서 논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저작들이 kk principle에 관한 논문들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kk principle에 회의감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신뢰주의와 같은 외적주의가 맞다면 제 믿음이 정당화됐다는 사실을 제가 꼭 알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제가 p를 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제 p라는 믿음이 정당화됐는지를 알아야하는데, 외적주의가 맞다면 제 믿음에 대한 정당화를 제가 꼭 알지는 못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p를 안다고 해서 p를 안다는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위에서 언급한 그레코의 논문에서도 나오지만, 신뢰주의와 같은 외적주의와 같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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