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교황 성하는 수학과 출신이시다…
이 글을 보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 수학자 중에서는 종교 친화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은근 있는 것 같아요. 20세기에는 괴델, 라마누잔, 말년의 그로텐디크가 떠오르고 현재는 존 레녹스가 대표적인 것 같아요.
(통계에 근거한 것은 아니고 그냥 제 뇌피셜입니다)
저도 이 글을 보고 갑자기 든 생각인데, 분석 형이상학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실재론적인 메타철학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그 수단으로 1차 논리랑 양상논리(혹은 그 변종)를 별다른 메타적 정당화 없이 사용하는 것 같아(?) 좀 의아하다는 느낌이에요.
저는 분석 형이상학에서 제시되는 논의들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분석 형이상학을 옹호해 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분석 형이상학은 1차 논리나 양상논리 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주 특이한 종류의 형이상학적 가정물들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가령, 루이스의 가능세계 실재론도 "가능하다"나 "필연적이다." 같은 양상 표현(modal idiom)이 우리의 일상적 언어나 양상논리에서 유의미하게 사용된다는 사실로부터, 이런 표현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 표현이 가능세계에 대한 양화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하거든요.
I believe that there are possible worlds other than the one we happen to inhabit. If an argument is wanted, it is this. It is uncontroversially true that things might be otherwise than they are. I believe, and so do you, that things could have been different in countless ways. But what does this mean? Ordinary language permits the paraphrase: there are many ways things could have been besides the way they actually are. On the face of it, this sentence is an existential quantification. It says that there exist many entities of a certain description, to wit 'ways things could have been'. I believe that things could have been different in countless ways; I believe permissible paraphrases of what I believe; taking the paraphrase at its face value, I therefore believe in the existence of entities that might be called 'ways things could have been'. I prefer to call them 'possible worlds'.
I do not make it an inviolable principle to take seeming existential quantifications in ordinary language at their face value. But I do recognize a presumption in favor of taking sentences at their face value, unless (1) taking them at face value is known to lead to trouble, and (2) taking them some other way is known not to. In this case, neither condition is met. I do not know any successful argument that my realism about possible worlds leads to trouble, unless you beg the question by saying that it already is trouble. (I shall shortly consider some unsuccessful arguments.) All the alternatives I know, on the other hand, do lead to trouble.
If our modal idioms are not quantifiers over possible words, then what else are they?
나는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 말고도 다른 가능한 세계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만약 논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물들이 현재의 모습과는 다르게 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나는, 그리고 당신 역시, 사물들이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상 언어는 이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하는 것을 허용한다. 즉, 사물들이 실제 모습 이외에도 있을 수 있었던 많은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이 문장은 존재에 대한 양화를 포함한다. 이는 특정한 설명에 해당하는 많은 개체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그 설명이란 곧 ‘사물들이 있을 수 있었던 방식들’이다. 나는 사물들이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었다고 믿으며, 내가 믿는 바를 허용 가능한 방식으로 바꿔 말한 것도 믿는다. 이 바꿔 말한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따라서 ‘사물들이 있을 수 있었던 방식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어떤 개체들의 존재를 믿는 셈이다. 나는 이것들을 ‘가능세계들’이라고 부르는 편을 선호한다.
나는 일상 언어에 나타나는 겉보기의 존재 양화를 언제나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절대적인 원칙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일종의 추정을 인정한다. 다만 (1)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알려져 있고, (2)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을 경우에는 예외다. 이 경우에는 어느 조건도 충족되지 않는다. 가능한 세계들에 대한 나의 실재론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성공적인 논증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이미 문제라고 전제해버리는 식으로 논점을 선취하지 않는 한 그렇다. (나는 곧 몇 가지 성공적이지 못한 논증들을 검토할 것이다.) 반면 내가 아는 다른 모든 대안들은 오히려 문제를 야기한다.
만약 우리의 양상적 표현들이 가능한 세계들에 대한 양화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것들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양화인가?
D. Lewis, Counterfactulas, Blackwell: Malden, MA, 1973, pp. 84-85 ChatGPT 번역.
저는 위의 태도가 콰인 이후의 '존재론적 개입'에 대한 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a) 우리가 특정한 문장을 '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b) 그 문장이 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존재자'들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의 말이에요. 루이스는 '가능세계 실재론'이라는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가설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 논의를 아주 정직하게 적용한 거죠. (a') 우리가 "가능하다"나 "필연적이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구성한 특정한 문장들을 '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b') 그 문장들이 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가능세계'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죠.
POPE LEO XIV ㅇㄷ ㅋㅋ
괴델이 수첩속에 숨기고 평생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존재론적 신증명은 괴델의 제자 논리학자이자 수학자로서 컴퓨터계의 노벨상을 받은 데이나 스콧에게만 괴델이 전해주게 되고 훗날 괴델 사후 스콧이 발표하게 되죠.
이후 괴델의 논증을 일부 수정하고 보완한 스콧 버전을 발표하고 안소니 앤더슨, 하워드 소벨 같은 학자들에 위해 연구되었죠.
최근엔 크리스토퍼 벤츠뮐러가 2013년경, 괴델의 증명을 Isabelle/HOL 같은 컴퓨터 도구를 사용해 처음으로 자동화된 정형 검증을 시도(AFP등재)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괴델-스콧 버전의 신 존재 증명이 Isabelle/HOL 시스템 내에서 논리적으로 타당(valid)하다는 것을 기계적으로 입증해 냈습니다. 또한 괴델이 설정한 공리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일관성(consistent)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괴델 증명은 태생 괴델 공리를 받아들어야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기계 검증 과정에서 하워드 소벨이 주장했던 '양상 붕괴'가 실제로 일어남을 확인했습니다.
즉, 괴델의 공리 체계에서는 "모든 참인 명제는 필연적으로 참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어, 인간의 자유의지나 우연성이 존재할 자리가 없음을 기계가 증명해 버린 것입니다.
이후 괴델 공리를 약화 수정하여 양상붕괴를 막는 연구가 최근까지도 진행되어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