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잡한 글을 썼는데 이 글에 대한 비판과 추천 도서, 추천 탐구 주제에 대한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도덕의 정당성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정당성 자체가 특정 윤리관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그 자체로 도덕은 정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여겨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심지어 오랫동안 그렇게 해 왔지만, 신성과 도덕의 목적성이란 것은 도덕을 수단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 세력에 의해 자주 탄압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논할 수 있는 것은 도덕 그 자체의 정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윤리의 영역이기에, 우리는 그 기원과 역사와 원리와 형성의 근간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도덕은 생물학적 기본값, 즉 불쾌감을 싫어하는 인간의 보편적 세팅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근거한다기보단, 인과적으로 이에 의한 것입니다.

​다만 그 불쾌감을 느끼는 조건에 차이가 생기기에, 도덕은 언제나 모두의 만족을 위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이에 어느 테이블 위 인물들 또는 대중은 그 기준을 통합하려 시도했습니다. 인간의 행복 기준이 사회 안에서 어느 정도 형성된다는 면에서, 영웅 신화를 만들고 권선징악과 사랑의 카타르시스를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 배포한 것입니다.

​체제를 세계에 맞춘 것이 아니라,
세계를 체제에 맞추는 작업은 종교 탄생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물론 종교 탄생이 그 작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온 기념비적 사건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참고로 이런 현상을 너무 기피하지는 마십시오. 선전된 내용이 당신의 생물학적 세팅값이나 다른 요소에 의해 형성된 '불쾌하지 않음'의 기준에서 어긋나 있으면 약간의 인지부조화와 지속적인 약간 또는 큰 불쾌감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다르면 총으로 쏴 죽이거나 칼로 찔러서 배제하던 시절보다는, 세팅값을 맞춰서 그 도덕적 기준에 편입시키려 하는 요즘이 더 친절한 편입니다. 물론 그 배제 기조가 사라진 적은 없습니다.

​다만 그 공통 신앙, 평균이 잘 맞춰진 세팅값의 세계가사라진 지금은 위기입니다.

세팅값과 그에 대한 신앙의 다원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바야흐로 현대는 다양한 불쾌감 기준 사이 종교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같은 세팅값과 신앙 체제(꼭 종교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를 공유하는 두 다원적 개체는 합의하고 손잡기 쉽지만, 완전히 다른 세팅값을 지닌 존재나 절대 합의될 수 없고 합의할 생각도 없는 신앙 체제를 지닌 두 개체의 충돌은 당연하게도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무의미하며 이는 힘의 충돌이 됩니다.

​세팅값이 걷잡을 수 없이 튀기 시작하며 통일성이 사라진 동시에, 그 개개의 세팅값을 지닌 개체들이 자신들에게 주입된 자유와 평등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마치 같은 체제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정반대인 상황도 생겨났고, 그냥 그 개념조차 안 쓰는 분파도 생겨났습니다.

​가진 무력의 양이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공감받고 그들의 신앙과 세팅값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 보통 도덕이 되기 마련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대표적으로는 자유, 평등 개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절대 동기화되거나 화해가 불가능한 세팅값으로 고정되어 있는 사이코패스 같은 고정 신앙을 지닌 케이스를 뒤로하고, 다른 신앙들은 양보와 사랑이나 이해 같은 수단을 통해 대충 세팅값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안 될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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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덕적 논쟁들은 다른 땅에 서 있기에, 합의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각 체제들 간 도덕의 목적성에 대한 합의가 안 됩니다.
규범과 공리는 애초에 도덕의 목적성 자체가 다르고 그 목적성들의 상위 개념이 부재하여 구조적으로 화해가 불가합니다.

​문제 층위 선정에 대한 합의가 안 됩니다.

누군가가 강간당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사건을 문제로 삼을지 말지도 합의가 안 되는 케이스가 있는데,
그것을 문제로 삼고 나서 그럼 이것이 무엇의 탓인지를 따질 때,
수많은 층위의 원인들 중 무엇을 어느 비중으로 선정할지 합의가 안 됩니다. 사실상 이것을 결정하는 건 문화적, 정서적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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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덕은 그 자체로 정당할 수 없다
  2. 인간은 불쾌감을 피하고자 도덕을 직조했고, 인간이 모두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것은 태생적인 불쾌감에 대한 거부감이다.
  3. 사람이 쾌 불쾌를 느끼는 세부적인 기준이 달랐고, 이에 그 기준을 최대한 통일하기 위한 작업이 있어왔다.
  4. 다만 최근 이 통일된 세팅값이 깨지며(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쾌불쾌의 기준에서의 다원화가 생겨났다.
  5. "서로 맞물리는 세팅값"은 도덕에 의한 것인 동시에 도덕의 유지조건이기도 했는데, 그 세팅값들이 수만 갈래로 산개하며 합의 불가능한 도덕적 이념들이 발생했다.
  6. 무언가를 문제로 삼을까 말까 역시 이런 산개에 의해 점차 갈라지기 시작했고, 일부가 그 문제를 합의했다 해도 문제의 원인, 책임소재 선정에서도 합의불가능한 논쟁들이 발생하고 있다.
  7. 서로의 전제와 도덕의 목적성과 맥락이 합의불가능한 세상에서, 어떤 논쟁들은 화해가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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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잡하고 부족한 글에 대한 비판과
이런 견해와 관련 있는 철학자, 도서, 주제, 텍스트를 추천받고 싶습니다.

혼자 공상하다 나온 글인 만큼 엄밀성도 부족하고 제가 못 본 잘못된 전제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비슷한 것에 대해 게시한 적이 있고
이에 대해 추천해주신 텍스트와 도서가 있어서
그 도서들을 구매했습니다.
(절판이긴 했지만 어떻게 구하긴 했습니다)

다만 이 글은 예전의 것보다 비교적 구체화되었고 여러 맥락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 좀 더 다르거나 세분화된 조언을 받을 수 있겠다, 또 그것이 필요하겠다 생각이 들어 이리 조잡한 것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철학서는 아닙니다만 다음 두 책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도덕심리학에서 사회적 직관주의 이론을 다루는 두 학자의 번역서입니다. 다음 문장과 관련하여 읽을 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모든 도덕은 생물학적 기본값, 즉 불쾌감을 싫어하는 인간의 보편적 세팅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관심 가신다면 하이트의 책을 먼저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린의 책은 종이책이 절판되어서 전차책으로 링크를 남깁니다.)

바른 마음 | 조너선 하이트 | 알라딘

[전자책] 옳고 그름 | 조슈아 그린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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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하나하나가 매우 큰 논의를 다루고 있고, 글 전체에 여러 층위의 주장이 존재합니다. 논의의 지형 먼저 파악하지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글 서두에 다음 두 문단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SmallThings님의 입장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도덕의 정당화는 특정한 윤리관을 전제한다.
  2. 윤리관은 불쾌감 회피라는 감정 반응에 기인한다.
  3. 따라서 도덕은 감정 반응에서 유래하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우선 (1)은 자명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당화 기준이 특정 도덕 체계 내부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은 논쟁적인 메타윤리적 입장입니다. 또한 '정당화'가 어떤 의미인지 불분명합니다. 글에서는 도덕 판단이 참이라고 믿을 근거가 있는가(인식론적 정당화), 도덕이 우리를 구속할 이유가 있는가(규범적 권위)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둘은 서로 독립적인 물음입니다.

'정당화'가 인식론적 정당화를 의미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때 SmallThings님의 입장은 도덕 비인지주의(moral non-cognitivism) 또는 오류 이론(error theory)과 도덕 정서주의(moral sentimentalism)의 혼합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각각의 입장은 생각보다 섬세합니다. 예를 들어 SEP의 정서주의 문서를 보면, 정서주의 내부에도 상당히 다른 입장들이 있습니다.

  • 도덕적 사고가 감정에 의해 설명된다는 설명적 정서주의(explanatory sentimentalism)
  • 도덕 판단이 감정으로 구성된다는 판단 정서주의(judgment sentimentalism)
  • 도덕적 사실이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는 형이상학적 정서주의(metaphysical sentimentalism)
  • 감정이 도덕 지식의원천이라는 인식론적 정서주의(epistemic sentimentalism)

이 네 입장은 독립적입니다. SmallThings님은 설명적/판단 정서주의를 주장하면서 곧바로 인식론적 결론('정당화는 무의미하다')을 도출하는데, (2)-(3)의 이행에는 두 가지 숨은 전제가 있습니다.

첫번째, 감정적 기원을 가진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발생학적 오류(genetic fallacy)에 해당합니다. 인식론적 정서주의는 이와 정확히 반대로, 감정적 경험이 도덕적 믿음에 대해 비추론적인 정당화를 제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두번째, 도덕 판단은 세계에 대한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태도의 표현일 뿐이므로, 참/거짓을 물을 수 없다. 이것은 앞서 말한 도덕 비인지주의(moral non-cognitivism)라는 입장이며, 정서주의를 받아들인다고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 판단의 기원이 감정이라고 해도, 그 판단이 참/거짓을 가질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물음입니다.

(2)에 대해서도 유력한 반례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칸트 윤리학은 도덕법칙을 특정 행위에 대한 쾌/불쾌 반응이 아닌 실천이성의 형식적 구조로부터 도출합니다. 혹시 ‘도덕 탐구 자체의 동기가 불쾌감 회피'라는 뜻이더라도, 탐구의 동기와 탐구 결과의 정당화는 별개입니다.

덧붙여, '불쾌감을 싫어하는 세팅'은 Nichols의 정서적 뒷받침(affect-backed) 이론에 더 가깝습니다. 인간이 특정 행위 유형에 대해 부정적 정서 반응을 보이는 성향이 있고, 이와 상응하는 규범이 문화적으로 선택된다는 것입니다. 역시 SEP의 정서주의 문서에서 관련 문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원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저도 비전공자인만큼 답변이 정확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자만, 아마 찰스 테일러의 '세속의 시대'나 에밀 뒤르켐의 '사회분업론'이나 '도덕 교육'이 관련 있을 듯합니다. SEP의 여러 문서들도 적극적으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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