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납
예나에서 프레게의 제자로 있던 루돌프 카르납은 새로운 논리적 방법들을 초기에 수용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새로운 철학적 탐구에 이 방법을 적용하고자 즉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첫 주요 작품인 『세계의 논리적 구조』(Der Logische Aufbau der Welt)는 모든 과학적 개념을 원초적인 (근본적인) 개념으로 구성하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시도한 결과였다. 주목해볼 만한 것은 카르납이 사용한 구성(construction) 개념이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러셀이 사용했던 논리적 구성(logical construction) 개념과 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셀의 이 개념 또한 한 유형의 수학적 대상(예컨대, 실수)은 다른 유형의 수학적 대상(예컨대, 자연수)에 의해 구성될 수 있다는 수학자들의 아이디어에서 유래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카르납이 수학적 맥락에서 등장하는 해명(explication)이라는 아이디어를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해명이다: 어떤 함수가 “연속적”이라면 오직 그러한 경우에 임의의 양수 ε에 대해 양수 δ가 존재해서….
이처럼 정밀과학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된 철학적 발전을 평가할 때는, 지금 우리에게 명료한 아이디어가 선배 철학자들에게는 꽤나 불분명한 것일 수 있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이론 T가 완전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꽤나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1920년대를 산 카르납과 같은 사람들에게 완전성 개념은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것이었고, 그런고로 그는 그 개념을 철학적 사고에 통합시킬 수 있도록 고심했던 것이다. 카르납 철학이 발전하는 다음 단계, 즉 그가 과학의 개념을 순수하게 “구문론적”으로 분석하려 시도했던 그 단계를 살펴볼 때 우리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20년대 말, 비엔나 서클에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이라는 학생이 참여했다. 카르납은 이후에 자신이 과학의 언어에 관한 질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에 괴델의 영향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괴델은 박사학위논문에서 술어 계산의 완전성에 관한 첫 번째 증명을 제시했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1차 페아노 공리계에서 도출될 수 없는 참인 산술 명제가 있다는 것을 보이는 그 유명한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했다.
불완전성을 증명하는 괴델의 테크닉은 “수학적”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산술에 관한 1차이론 T에 관한 이론 M을 도입했다. 나아가 이 메타이론 M은 순전히 구문론적 개념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기호열의 길이, 문자열에서 왼쪽 괄호의 개수, 혹은 산술의 공리에서 시작한 타당한 증명의 마지막 정식임과 같이 말이다. 카르납은 이런 접근 방식에 매료되었다. 특히 이 방식이 가망 없을 정도로 모호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다루기 쉬운 방식으로, 말하자면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그 방법으로 다룰 수 있게끔 바꿔놓았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괴델의 방법론은 정밀과학에 대한 정밀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괴델의 탐구는 여전히 산술이라는 정밀과학의 한 부분에 제약된 것이었다. 카르납의 야망은 초등 수학을 아득히 넘어 나아갔다. 그는 이 새로운 방법을 과학 이론 전 영역에, 특히 새로운 물리학 이론에 적용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카르납은 이윽고 자신이 메타수학자들이 마주하는 것 이상의 문제에 부닥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과학 이론은 수학과 달리 우연적으로 참(contingently true)인 것, 즉 달리 될 수 있었던 것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철학으로의 논리적 접근 방식은 이론 T를 수학적 대상으로서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완수되지 않는다. T가 어떻게 경험적 실재에 맞닿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한 카르납의 첫 시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어설펐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들어서야 과학철학자들은 형식 논리학의 기초를 배워가고 있었다. “모형론”이라고 부르는 분야가 잘 정립되기까지는 아직 40년이 더 필요했고, 수리논리학은 오늘날까지도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수리논리학이 이제 막 태어나던 시절에 철학자들은 그들이 마주한 문제에 대해 “가장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비록 엄밀하게 검토되면 그 답을 고수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진 못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이론 T의 경험적 내용을 특징짓고자 한 카르납의 시도를 보자. 카르납은 이론 T를 만드는 단어 집합 Σ는 반드시 경험적 하위 단어 집합 O를 포함해야 한다고 보았다(O⊆Σ). 이 때 T의 경험적 내용은 T가 단어 O에 제약되어 얻어진 집합 T|O에 의해 판별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한 이론이 다른 이론으로 “환원”된다는 개념을 명시하려 할 때에도 카르납은 우선 환원되는 이론이 환원하는 이론의 개념을 통해 명시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사용되는 환원 개념보다 훨씬 협소한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는 못했다.
그러나 카르납의 여러 작업을 보면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유관한 접근 방식의 시초를 발견하게 된다. 카르납은 어떤 “언어”와 어떤 “이론”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그 과정에서 여러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예를 들어, 고전적인 수학자는 특정한 언어를 선택하고 그 다음 특정한 변환 규칙들을 도입한다. 반대로 직관주의를 고수하는 수학자는 다른 언어와 다른 변환 규칙을 도입한다. 카르납은 의미론적 상승, 그러니까 과학 이론을 있는 그대로 바깥에서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카르납은 더 이상 이론가 자신이 묻는 “내재적 질문”은 묻지 않는다. 예컨대 가장 큰 소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은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과학철학자는 “외재적 질문”, 즉 이론 T에 관한 질문을 묻는다. 특히 구문론적으로 엄밀하게 만들어진 질문을 말이다. 예를 들어 카르납은 문장이 “T에 상대적으로 분석적임”이라는 개념을 T의 구조를 기술하기 위해 메타이론가들이 사용하는 외재적 개념으로서 제안한다.
분석적 참에 관한 20세기의 관심은 철학과 세미나실에서, 혹은 적어도 오늘날과 같은 철학과에서 등장한 게 아니었다. 사실 이 관심은 19세기 기하학자들이 (1)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과 (2) 수학적 논증의 엄밀성을 재고할 필요성을 마주하면서 갖게 된 관심이었다. 이 둘은 수학적 언어가 물리 세계와 단절되도록 이끄는 데 일조했다. 달리 말하면, 현대 수학이 발전하면서 얻은 한 가지 중요한 결과가 “수”라든가 “선”과 같은 수학적 용어의 탈해석(de-interpretation)이라는 것이다. 이 용어들은 외부 세계와 아무런 직관적인 연결도 갖지 않는 기호들로 대체되었다.
분석적 참을 공준에 의한 참(truth by postulation)으로 보는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 바로 이 수학적 용어의 탈해석이었고, 공준에 의한 참이라는 이 아이디어는 러셀에 이어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에게도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러셀이 “도둑질”이라고 부른 움직임은 수학자들로 하여금 “선”이나 “연속 함수”와 같은 단어의 의미에 관한 통찰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탐구를 계속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들이 보기에, 어떤 단어를 쓰든 간에 그 단어의 용법을 지배하는 규칙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무슨 단어를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즉 힐베르트 같은 선도적인 수학자들은 “선”과 같은 수학적 용어들의 의미는 그 용어에 관해 공리가 말하는 바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았으며, 거짓인 수학적 공준을 쓴다는 것은 단적으로 불가능했다. 그 공준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할 외부적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카르납이 프레임워크 안에서의 분석적 참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리고 콰인은 이후 분석-종합 구분에 관한 강력한 비판을 개진한다. 그러나 카르납과 콰인은 그들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으며, 그들의 생각은 1930년대의 과학이 도달한 수준의 추상성에서 작동했다. 논리적 메타이론의 개념은 그 당시 이제 막 태어났을 뿐이었고, “프레임워크”라든가 “이론”이 논리학자의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논리학자들에게도 분명치 않았다.
콰인
만일 누군가가 20세기 후반에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면, 그 사람은 콰인이 논리적 실증주의를 “허물어버렸다”라고 배웠을 것이다. 기실 실증주의의 오류는 가장 빤한 철학적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는 교과서적 교훈으로 여겨진다. 어떤 견해를 제시하면서 만일 그 견해가 참이라면 그것을 정당하게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함축된다면 그런 견해를 주장한다는 것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겠는가!
오벌린에서 학부시절을 보내는 동안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러셀의 수리논리학을 접하게 되었다. 1932년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콰인은 카르납이 “과학의 논리”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던 비엔나로 즉시 날아갔다. 콰인은 곧 카르납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되었다. 으레 말하듯, 콰인은 단신으로 카르납의 프로그램과 좀 더 일반적으로는 논리실증주의의 종말을 이끌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콰인은 20세기 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는 그가 취했던 견해 때문에만은 아니었고, 그런 견해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론 때문이기도 했다. 요컨대 콰인식의 방법론은 대략 이런 식이다:
- 논리적 메타이론에서 어떤 정리 φ를 취한다.
- φ가 어떤 철학적 귀결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특정 견해를 지지할 수 없게 만든다”라든가)
비록 콰인이 관련되는 논리적 메타이론의 정리가 무엇인지 매번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더라도 몇몇 콰인의 논증은 이런 패턴을 따른다. 명시적으로 밝힌 예를 하나 들자면 1940년에 넬슨 굿맨(Nelson Goodman)과 공저한 논문이 있는데, 거기서 콰인은 모든 종합적 참이 분석적 참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분석성을 공격하는 콰인의 후기 논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이 메타이론적 결과가 콰인이 분석-종합 구분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분석-종합 구분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려고 한다면 바로 이 수학적 결과에도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으레 말하듯, 콰인의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Two Dogmas of Empiricism)는 논리실증주의에 치명타를 날렸다. 그러나 카르납은 그의 관점을 발전시켜나가며 콰인에게 움직이는 표적지를 제시했다. “경험주의, 의미론, 그리고 존재론”에서 카르납은 프레임워크(framework) 개념을 더 발전시켰다. 이 개념은 과학적 이론(scientific theory) 개념과 1차 논리에서의 이론 T 개념 모두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이 논문에서 카르납은 두 유형의 질문을 구별한다. 프레임워크에 내재적인 질문과 프레임워크에 외재적인 질문이 그것이다. 내재적 질문은 프레임워크의 언어로 제시될 수 있고 프레임워크는 그 답을 제시한다. 이와 달리 외재적 질문은 어떤 프레임워크에 관한(about) 질문이다.
카르납이 가진 추상적인 아이디어는 간단한 1차 논리의 사례로 그려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1차 논리 언어의 단어로 Σ를, 그리고 이론 T를 이 단어를 가지고 기술한다면, 전형적인 내재적 질문은 “술어 P(x)를 만족하는 것이 있는가?”와 같은 게 될 것이다. 이와 달리 외재적 질문은 “Σ에는 얼마나 많은 술어 기호가 있는가?”와 같은 게 될 것이다. 즉, 내재적-외재적 구분은 이전에 카르납이 『언어의 논리적 구문론』(Logische Syntax der Sprache)에서 논의의 틀로 삼았던 대상 언어와 메타언어 구분에 대체로 대응한다.
내재적-외재적 구분이 갖는 철학적 논점을 말하자면, 외재적 질문에 대한 답과 내재적 질문에 대한 답이 같은 기준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프레임워크는 규칙을 포함하고, 내재적 질문에 대한 답은 그 규칙에 따라 제시되어야 한다. 카르납이 즐겨 사용하는 예시를 들어 보자. “수가 있는가?”는 외재적 질문으로 간주되는 게 자연스럽다. 어떤 수학자도 이 질문을 적극적으로 탐구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 질문은 수리 과학에서 추구되는 질문이 아니라 수리과학의 전제이다. 이와 달리, “가장 큰 소수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수학적 활동에 내재적인 질문이다. 즉, 이 질문은 수학이 답을 찾고자 하는 종류의 질문인 것이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카르납이 여기서 발전시키고자 한 직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외재적 질문은 과학이라는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답이 주어져야 하는 질문이고, 내재적 질문은 그 게임을 진행하면서 답이 제시되는 질문이다. 그러나 카르납은 이 아이디어를 직관적인 수준에서 더 밀고 나가 그가 구상하는 인식론의 주춧돌로 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카르납은 Allwörter 라고 이름 붙인 특별한 술어 집합을 선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정수론 학자들은 “수”라는 단어를 자신의 탐구 영역에서 골라내어 “x는 수다”라는 술어에 어떤 것이 속하는지 아닌지는 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떤 정수론 학자는 x3+y3=z3을 만족하는 세 수 x,y,z가 존재하는지를 탐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때 수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이 관계를 만족시키는지 아닌지는 아예 생각하질 않을 것이다.
콰인은 카르납의 내재적-외재적 구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인의 공격 전략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가 튼튼한 논리적 사실에 기초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의문시되지 않았다. 특히 콰인은 서로 구별되는 양화사를 가진 언어(즉, 다분류논리(many-sorted logic))에서의 모든 이론은 하나의 무제약적 양화사를 가진 언어에서의 이론과 동치라는 논리적 사실에 호소한다.
수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묻는 질문이 수를 특별히 지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별도의 변항을 채택하는 언어에 대해서만 어떤 범주에 관한 질문(a category question)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만일 우리 언어가 수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의 집합도 값으로 가질 수 있는 변항을 통해 수를 지시한다면, 수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묻는 질문은 하위 집합(subclass question)에 관한 질문이 된다. (…) 만일 우리 언어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종류에 걸치는 단일 변항을 사용한다면, 집합이 존재하는지, 물리적 대상이 존재하는지와 같은 질문들 역시 하위 집합 질문이 될 것이다. 물리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진술과 검은 백조가 존재한다는 진술은 이분법적인 구분을 할 때 같은 쪽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단일 유형의 변항을 쓸 것인지, 아니면 두 개의 변항을 써서 하나는 물리적 대상에, 하나는 집합에 쓸 것인지와 같은 비교적 사소한 고려사항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Quine 1976, p.208)
즉 콰인은 다음과 같이 시사하는 것이다. 다중유형이론은 단일유형이론과 동치라는 메타 이론적 결과가 있고, 이는 카르납이 Allwörter와 다른 술어들을 구분하려고 했던 시도를 무너뜨린다.
서론에서 이 문제에 관한 각자의 입장을 견주어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목적이 수학적 사실을 분명한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 주장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게끔 하는 것임을 고려해볼 때, 이 문제를 지금 다루는 것은 너무 이른 일이다.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에서 콰인은 어떤 진술을 확증하거나 반증하는 단독적 사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딱 10년 뒤에 힐러리 퍼트넘은 “이론은 무엇이 아닌가”(What Theories Are Not)라는 논문에서 콰인의 아이디어를 과학 이론 전체에 적용했다. 최초의 (논리)실증주의자인 라이헨바흐의 제자였던 퍼트넘은 이제 실증주의자들의 주무기를 그들 자신에게로 돌려, 실증주의 기획의 중심에 있던 구분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이 논문의 경우 퍼트넘은 “관찰 문장”의 집합 T|O가 이론 T의 경험적 내용을 정확히 나타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어떤 과학 이론이 경험적 내용을 가진다고 적절히 말할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이론을 믿을 만한 정당성은 아래(경험적 부분)로부터 위로(이론적 부분) 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형적인 퍼트넘식 행마이다. 약간의 수리논리를 능란하게 적용해 급진적인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 말이다. 광범위한 철학적 주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수리논리학을 휘두르는 퍼트남의 방식은 추후에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