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이전의 최소 반응 구조에 대한 초안

이 글의 목적은 공포, 분노, 불안, 슬픔 같은 이름 붙은 감정들을 직접 분류하는 데 있지 않다. 내가 지금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그보다 더 아래에 있는 구조이다. 감정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된 결과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감정을 설명하려면 그 이름들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감정이 가능해지기 전에 무엇이 먼저 있어야 하는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붙잡고 있는 문제는 단순하다. 감정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는가. 그리고 감정 이전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감정을 바로 공포, 분노, 불안처럼 나누는 대신, 감정 이전의 최소 반응 구조를 찾는 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안정적으로 남는 출발점은 외부와의 접촉이다. 외부는 처음부터 의미나 감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내부에 접촉을 발생시키는 것으로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 접촉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먼저 최소 판정을 거친다. 나는 이 판정을 정합과 부정합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합과 부정합이 감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좋다, 싫다의 표현도 아니고 공포나 분노 같은 감정 이름도 아니다. 오히려 어떤 접촉이 현재 구조 안에서 그대로 처리 가능한가, 아니면 추가적인 변화나 반응을 강제하는가를 가르는 최소 판정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감정은 이 판정 자체가 아니라, 이 판정 이후에 형성되는 상위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이 판정 다음에는 방향성이 나타난다. 지금까지의 잠정적 정리는 이 최소 방향성을 접근과 회피로 보는 것이다. 즉 감정 이전의 반응 바닥에서는 우선 접근하거나 회피하는 두 방향만을 상정하고 있다. 이때 분노, 증오, 보호, 제거 같은 이름 붙은 반응들은 처음부터 별개의 원소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상위 구성으로 읽힌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만약 최소 판정이 정합과 부정합이고, 최소 방향성이 접근과 회피뿐이라면,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복잡한 감정과 행동 양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새로운 반응 원소가 추가되는가. 아니면 같은 최소 반응들이 특정 방식으로 반복되고 잔류하면서 전혀 다른 결과처럼 보이게 되는가.

내가 현재 더 타당하다고 보는 쪽은 후자이다. 즉 새로운 감정이나 행동 양식은 완전히 새로운 반응 원소의 추가라기보다, 기존 반응 구조에 대한 매핑이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일 수 있다. 같은 종류의 접촉들이 반복될 때, 그 결과가 단순히 사라지지 않고 어떤 흔적을 남긴다면, 이후의 접촉은 더 이상 처음과 같은 조건에서 처리되지 않는다. 이 경우 반응 결과의 잔류가 다음 반응의 출발조건을 바꾸게 되고, 그 반복이 지속될수록 특정 방향이 더 쉽게 선택되는 상태가 형성된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패턴이 형성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패턴은 단순 반복이 아니다. 단순히 많이 쌓였다는 뜻도 아니다. 패턴은 반응의 결과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이후의 분기를 다시 같은 방향으로 더 쉽게 기울게 만드는 상태에 가깝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반응 원소가 생기는가가 아니라, 기존 반응 구조가 어떤 입력군에 대해 안정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잘리기 시작하는가이다.

이렇게 보면 감정도 다시 결과적 상태로 읽히게 된다. 감정은 정합과 부정합, 접근과 회피 같은 최소 원소가 아니라, 그러한 판정과 방향성이 반복과 잔류를 거쳐 편향 상태로 남은 뒤 나타나는 상위 결과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감정은 처음부터 주어진 종류라기보다, 이미 패턴화된 반응 구조가 특정한 형태로 고정된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

내가 지금 특히 중요하게 보는 지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부분이다. 어쩌면 이 논의는 단순히 감정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정합과 부정합에 대한 판정, 접근과 회피라는 최소 반응, 그리고 그 반응 결과가 남아 이후를 다시 기울이게 되는 구조는, 감정 이전의 반응 구조일 뿐 아니라 피동적인 반응이 능동적인 행동 양식처럼 보이게 되는 전환의 시초와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아직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부분이고, 이 글에서 강하게 주장하려는 결론은 아니다. 다만 감정을 파고 내려가다 보니, 감정만이 아니라 더 일반적인 적응 구조를 건드리고 있을 가능성은 분명히 느껴진다.

다만 여기서도 선을 분명히 긋고 싶다. 이 글은 감정의 완전한 분류를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공포와 분노, 불안과 슬픔 같은 개별 감정들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갈라지는지도 아직 말하지 못한다. 현재까지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감정 이전의 최소 구조와 패턴 생성의 잠정적 조건들뿐이다. 특히 반응의 결과가 단순한 흔적을 넘어 실제로 이후 반응을 바꾸는 상태가 되는 정확한 조건, 그리고 그 패턴이 어느 지점에서 비로소 감정이라고 불릴 수 있는가는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완성된 이론 제시라기보다, 현재까지 정리된 구조가 실제로 어디까지 버티는지를 점검하기 위한 초안이다. 지금 단계에서 내가 특히 확인하고 싶은 것은 외부 이론과의 비교보다는, 이 글 내부에서 비약처럼 보이는 연결이 있는지, 서로 다른 층위를 섞어 쓴 부분이 있는지, 정의가 불분명한 용어가 무엇인지, 또는 이 구조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사례가 있는지에 대한 검토다. 물론 다른 방향의 의견도 가능하겠지만, 현재 내가 우선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의 내부 구조가 어디서 끊기고 어디서 유지되는가이다.

정리하면, 내가 지금 잠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이렇다. 감정은 처음부터 이름 붙은 독립 단위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외부 접촉, 정합과 부정합의 최소 판정, 접근과 회피의 최소 방향성이 먼저 있으며, 그 결과가 잔류하고 반복적으로 재개입하면서 패턴을 형성한다. 감정은 이 패턴의 상위 결과일 수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감정 이전의 최소 구조를 추적하기 위한 구조적 초안이다.

짧은 요약

감정은 처음부터 주어진 종류가 아니라, 접촉 이후의 최소 판정과 방향성이 반복과 잔류를 거쳐 패턴으로 굳을 때 나타나는 상위 결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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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나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같은 근대철학자들의 감정론이나, 20세기 이후 현상학적 심리학이나, 오늘날의 도덕 심리학에 대해 참조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감정은 무엇으로부터 생겨나는가. 그리고 감정 이전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의문이나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그 자체만으로는 철학적 함의를 지니기가 다소 어렵습니다. 그 문제는 오늘날에는 실험심리학의 영역에서 실제 가설 연역과 검증의 방식을 통해 다루어지다 보니, '감정'이라는 개념에 대한 일종의 사변으로만 논의가 이루어질 경우 다소 공허한 사유에 빠지기 쉽습니다. (소위 '안락의자 철학armchair philosophy'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죠.)

제시하신 논의들이 '철학적' 함의를 지니려면, 그 논의들이 감정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어떠한 방식으로 수정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떠한 실존적-사회적-정치적 함의를 지니는지가 명확해져야 합니다. 실제로, 근대의 철학자들의 감정론이나, 현대의 현상학적 심리학과 도덕 심리학은, 단순히 감정의 인과적 원인에 대한 논의 자체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우리의 삶 전반에 어떤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주목합니다. 이 분야들을 대략적으로 파악하시고 나면, 제시하시고자 하는 논의를 좀 더 명확하게 만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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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디펜스를 막 끝낸 제 박사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감정을 공포, 분노처럼 이미 이름 붙은 상태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보다 더 아래의 구조로 내려가 보려는 접근은 인지과학이나 철학에서도 이미 꽤 발전된 논의들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Lisa Barrett의 구성주의 이론에서는 감정을 처음부터 주어진 종류로 보지 않고, 보다 기본적인 affect (positive/negative valence + activation /deactivation)와 개념의 결합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기서 말하는 개념이 단순히 언어적 명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언어적이고 신경적으로 구현된 예측 구조, 즉 일종의 neural concept 혹은representation으로 작용한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많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패턴이 형성되면서 상위 결과로서 감정이 나타난다”는 아이디어는 구성주의뿐 아니라 인지과학에서의 예측처리(predictive processing) 같은 틀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정합/부정합이라는 최소 판정은, 예측처리 이론에서는 뇌가 세운 예측과 실제 입력이 얼마나 잘 맞는지를 평가하는 과정, 즉 예측 오차(prediction error)의 발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뇌는 항상 어떤 상태를 미리 예측하고, 실제 들어오는 정보와 비교하는데, 이 둘이 잘 맞으면 정합, 어긋나면 부정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글에서 말하는 “반복과 잔류를 통한 편향 형성”은, 과거의 경험이 이후의 반응을 기울게 만든다는 점에서 예측처리에서 말하는 priors(기존에 형성된 기대나 경향)의 형성과 갱신 과정과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유형의 접촉과 반응이 반복되면, 그 결과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후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게 되고, 그로 인해 비슷한 입력에 대해 점점 더 비슷한 방향의 반응이 선택되기 쉬워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글에서 말하는 패턴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과거의 반응 결과가 이후의 분기를 체계적으로 기울게 만드는 구조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정은 이러한 예측 구조가 일정하게 안정화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상위 수준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아이디어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이라기보다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되어 온 연구들과 강하게 연결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처럼 보입니다.

다만 몇 가지 더 명확해지면 좋을 부분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정합/부정합이 정확히 어떤 기준에서 평가되는지, 그리고 이 최소 구조가 어느 지점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감정으로 넘어가는지의 조건이 조금 더 구체화되면 이 이론이 훨씬 강해질 것 같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신경적/계산적 설명과 경험적(현상적) 설명이 함께 사용되는 것처럼 보여, 이 층위를 구분하면 논의가 더 정교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할 것이 있다면, 감정 아래에 더 기본적인 반응 구조가 존재한다는 전제입니다.예를 들어 Paul Ekman이나 Jaak Panksepp 같은 기본감정 이론가들은 공포, 분노, 슬픔과 같은 감정들이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기본 단위이며, 진화적으로 주어진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감정이 더 아래 구조로부터 구성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정 자체가 설명의 출발점이 됩니다.

물론 최근에는 구성주의나 예측처리 기반처럼 감정을 더 기본적인 과정으로부터 구성된 결과로 보려는 시도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지만, 기본 감정 이론은 여전히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감정 아래에 더 근본적인 구조가 있다는 가정은 하나의 이론적 선택으로 밝히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이론들과 연결될 수 있는 재밌는 논의라고 느꼈습니다. 이 구조가 어떻게 더 구체화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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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합니다. YOUN 님 말씀대로 저도 아무런 목적없는 환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환원의 목적은 감정을 분류가능한 상태로 나누고 도덕판별모델에 적용시킬 수 있는 형태로 변환시키기 위한 작업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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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답변드릴 수 있는 종류의 글이라 감격스럽네요.

처음엔 말씀하신대로 Paul Ekman이나 Jaak Panksepp 등 기본감정 이론가들의 말처럼 여러 기초되는 가장 낮은 상태의 감정들을 바닥에 두고 세워보려 했으나, 제 목적이 도덕판별모델의 완성에 있기에 "감정을 분해해 분류한다"는 목적을 성립시키기 어려워 해당 작업에 착수하게 됐다는 걸 밝힙니다.

조금 흥분한지라 실례될 수 있고, 또 석박사 과정을 밟고 계신 분들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후의 진척에 대해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아래에 글을 올려봅니다.

처음 요약문에서 제가 감정 이전의 최소 구조로 두었던 정합/부정합, 접근/회피라는 표현도 지금은 그대로 두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접근/회피는 이미 행동적인 느낌이 강해서, 당시에는 감정 아래의 최소 방향을 잡기 위한 임시 표현으로 썼지만, 이후 검토하면서 이것도 여전히 너무 높은 층의 언어일 수 있다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감정 전단계를 바로 공포, 분노, 불안 같은 이름에서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아래에서 접촉 이후 무엇이 남고, 그 남은 것이 어떻게 다시 작동하는지를 보는 쪽으로 더 내려간 상태입니다.

초안 이후 가장 중요하게 남은 핵심은 “남음”입니다. 처음에는 반복과 잔류를 통해 패턴이 생긴다고 다소 넓게 썼는데, 지금은 그 표현도 조금 더 좁혀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반응이 반복된다고 패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응의 결과가 사라지지 않고 이후 반응의 조건으로 다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말하는 패턴은 단순한 반복이나 누적이 아니라, 반응 결과의 잔류가 다음 분기를 다시 특정 방향으로 기울게 만드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초안보다 “반복”보다 “잔류와 재개입” 쪽에 무게가 많이 옮겨졌습니다.

이와 연결해서, 처음에는 감정 전단계를 분류하기 위한 축을 곧바로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최소 판정 다음에 최소 방향이 있고, 그다음에 거기서 다시 2차적인 분기축 같은 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도가 한 단계 빨랐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단계에서는 감정 전단계를 직접 자르기 위한 축을 세우는 것보다, 그런 분류가 가능해지기 이전에 어떤 구조적 문턱들이 먼저 있어야 하는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감정 전단계의 축이 무엇인가”보다 “감정 전단계 같은 것이 생길 수 있으려면 무엇이 먼저 가능해져야 하는가” 쪽으로 문제를 다시 잡았습니다.

또 하나 크게 수정된 부분은, 처음에는 최소 반응 구조를 일종의 개체적 반응처럼 읽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단계 자체가 아직 개체적 능동성을 전제할 수 없는 곳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지금은 지각, 운동, 포식, 방어 같은 것은 전부 훨씬 위층의 이야기라고 보고 있고, 현재 다루는 층은 아직 철저히 피동적인 반응 구조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문제는 “무엇을 느끼느냐”보다 “접촉의 결과가 남을 수 있느냐”, “남은 것이 다시 작동할 수 있느냐”, “그 작동이 개별 반응을 넘어 더 큰 상태를 만들 수 있느냐”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기물/무기물이라는 분류도 그대로 쓰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지금 찾고 있는 구분이 화학 교과서식 분류라기보다, 구조 차이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물질 종류로서의 유기물/무기물보다, 단순히 묶여 유지되는 상태와, 그 유지된 상태가 이후 반응의 기준처럼 작동하는 상태를 구분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즉 지금 관심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보다 “어떤 상태가 남고, 그 남은 것이 이후를 다시 조직하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초안 이후 실제로 많이 진행된 부분 중 하나는, 개별 반응 결과가 개체 내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고 누적되어 더 큰 공유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확장된 점입니다. 처음에는 개별 접촉과 그 이후의 잔류에 초점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남은 것이 단순히 한 자리에서 다시 작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자리들에도 전달되어 집단적 배경 상태를 만들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때 말하는 공유상태는 추상적 의미에서의 공유라기보다, 한 자리에서 생긴 변화가 다른 자리의 다음 반응 조건으로 넘어가며 집단 전체의 상태 일부가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해진 이유는, 공유상태가 생기면 반응과 판정의 단위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접촉 하나가 국소적으로 처리되었다면, 공유상태가 생긴 이후에는 같은 접촉도 단지 그 자리 하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전체 상태를 배경으로 다시 읽히게 됩니다. 즉 현재는 “국소 접촉”만이 아니라 “공유된 전체 상태”가 반응의 배경이 되기 시작하는가를 보고 있습니다. 이게 현재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진척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점부터는 단일한 국소 반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또 이와 함께, 외측과 내측 같은 위치 차이가 반복되면서 기능 분화와 구획화의 가능성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능 분화는 아직 능동적 기관 발달 같은 것이 아니라, 같은 반응 원리가 각 위치에서 다르게 작동하는 방향으로 고정되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외측은 외부 유입을 먼저 맞고, 내측은 전달된 결과를 늦게 맞게 되므로, 같은 반응 원리라도 더 이상 모든 자리에서 동일하게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 점 역시 초안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인데, 현재는 이후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초안에서는 “감정은 최소 판정과 최소 방향성이 반복과 잔류를 거쳐 패턴화된 상위 결과일 수 있다”는 구조 자체를 제안하는 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서, 그 최소 구조 자체도 아직 다소 높은 표현일 수 있다는 점, 패턴의 핵심은 반복 일반보다 잔류와 재개입에 있다는 점, 감정 전단계를 곧바로 축으로 자르려는 시도는 성급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개별 반응의 결과가 어떻게 전달되고 누적되어 공유상태를 만들고 더 큰 규모의 반응 배경이 되는가를 더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 쪽으로 실제 논의가 많이 이동했습니다.

아직 미완인 부분이 많고, 특히 어느 지점에서 이런 구조를 비로소 감정 전단계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초안 이후 실제로 이동한 방향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비록 제한된 여건 아래 있지만 좋게 봐주신 만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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