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언어학파에 관심이 있는 한 사람입니다. 길버트 라일의 마음의 개념 한국어 번역본의 질이 궁금합니다. 알라딘 평은 좋지 않다고해서요
『마음의 개념』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같은 역자분이 옮긴 리처드 팔머의 『해석학이란 무엇인가』와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그다지 나쁘지 않게 읽었습니다. 원문과 대조를 해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번역이 얼마나 꼼꼼한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전체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 번역이었습니다.
번역본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작업은 사실 매우 어려운 작업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어학 능력과 책의 주제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조차도 문장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대조해 보지 않는 이상 특정한 번역본이 좋다/나쁘다에 대해 손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설령, 몇몇 부분에서 번역이 원문과 다소 어긋난다고 해도, 그 부분이 책의 내용에서 핵심적인지, 그 어긋남이 오역 때문인지 의역 때문인지, 그런 어긋남이 책에서 얼마나 빈번한지 등에 대해 총체적으로 고려한 다음에야 번역의 퀄리티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각을 잡고서 번역본을 검사하지 않는다면 번역의 수준에 대해 책임감 있는 평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나쁘지 않게 읽고 있어요. 진짜 심각한 상태의 역서에 당해보니깐 다른 역서들이 사랑스러워 보일 정도입니다. 그리고 번역 상태와 상관없이 궁금하면 한번 사보셔요. 안 사면 죽는 병은 번역 문제 따위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동일한 유형의 질문들을 연속적으로 올리시는 것으로 보아, 번역본으로 철학책을 읽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오독/오해를 경계하시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은 어느 정도 합리적인 걱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대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면, 걱정의 상당 부분이 다른 방식으로 해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자 님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경우를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 원서의 언어를 아예 독해하지 못하는 경우
- 원서의 언어를 어느 정도 독해하는 경우
- 원서의 언어로 전문적인 독해가 가능한 경우
만약 1번이라면, 번역본의 질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저의 경우, 읽지 못하는 원서의 번역본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외치고 그냥 읽습니다.
3번의 경우에도, 해당 질문을 거의 던지지 않게 됩니다. 3번에 해당하는 (주로) 연구자들은 (그 책이 연구에 중요하다는 판단이 서는 경우) 심지어 번역본이 있다고 하여도 일부러 원서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2번의 회색지대입니다. 외국어에 아예 까막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국어로 직접 독해가 부담스러운 경우, 혹은 그렇다고 번역본으로 보자니 오독과 오해의 걱정이 앞서는 경우. 이 경우에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영어를 포함한 유럽언어들과 한국어의 언어학적 근친성이 0에 수렴하는 관계로, 소위 완벽한 번역이란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어떤 최상의 번역본이 있다고 하여도, 원서에 비하면 로스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목표에 맞추어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여러 선택이 가능할 것입니다. 외국어 독해가 부담스럽거나 시간이 많지 않은 경우, 번역본을 읽으면서 필요한 경우 원서를 비교 대조하며 참조하는 것도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고, 반대로 시간이 많거나 장기적으로 원서를 직접 읽는 것이 목표라면 원서를 직접 읽어나가면서 이해가 안되는 경우 번역본을 참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자신의 현재 능력과 상황, 목표를 고려한다면 좀 더 생산적인 고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알라딘에 제가 평을 남겼던 기억이 나서 다시 들어가보니 제가 남긴 평이 맞군요. 제 평에 ybh로 시작하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 댓글도 다셨는데, 이 글 쓰신 분과 동일인이신 것 같습니다. 서강올빼미는 눈팅만 하다 간단한 해명(?)을 위해 첫 댓글 달아봅니다.
우선, 제가 해당 번역본을 읽은 건 2021년 1학기에 자기지식(self-knowlege)에 대한 대학원 세미나를 수강할 때였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읽은지 시간이 5년쯤이나 지나기도 했고, 치명적인 오역들을 여러 개 발견하고 번역본을 그냥 버려서 오역 사례들을 일일이 짚어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알라딘 100자평도 애초에 글자수 제한 때문에 자세하게 쓰기 어려웠고요. (제가 남긴 다른 평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전 웬만하면 평을 후하게 남기는 편입니다.) 다만, 당시에 수업을 같이 수강했던 동료 대학원생들과 카톡 주고받은 게 남아있어 몇 개 적어드립니다. 당시 세미나에서 읽어야 했던 부분은 몇 쪽에 불과하지만, 의미를 완전히 반대로 바꿔놓은 경우가 많아 내용 이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유사법칙' - 'law-like'의 번역어인데, 'pseudo-law'와 착각될 여지가 큽니다. 'pseudoscience'를 '유사과학'으로 번역하는 걸 생각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law-like'는 법칙처럼 어떤 규칙을 띠고 있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냥 '법칙적'이라고 번역하면 오해의 소지를 차단할 수 있었을겁니다. 'law-like generalization'이 대표적인 용례고요.
228쪽 두 번째 문단: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갖는다" 다음에 "Sometimes the earlier steps stand in some other relation to the later"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229쪽 두 번째 문단: "두 가지 과정으로 분할된다 할지라도". 부정형으로 "두 가지 과정으로 분할되지 않는다 할지라도"라고 번역하는 게 맞습니다.
230쪽 두 번째 문단: "~추론과정에서 그가 다음으로 밟게 될 단계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동시에 그밖의 다른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다"가 아니라 "그가 밟아야 할 단계들에 대해서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은 다양한 만일의 사태들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가 되어야 합니다.
240쪽 첫 번째 문단: "내가 <생각하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도 부정형을 잘못 번역했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이어야 합니다.
이 정도 오역이면 제가 혹평을 남겨둔 이유를 이해하셨을거라고 봅니다. 고작 몇 쪽 사이에도 원문을 완전히 반대로 번역하거나 문장을 생략해버린 사례가 여럿 나옵니다. 번역본을 읽으면 오히려 원래 내용을 오해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아마 윗 분이 다른 책 번역은 괜찮아보인다고 하신 건, 단지 한국어 문장이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아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동료에게 보낸 카톡을 보니, 문장은 자연스러운데 번역은 이상하다는 말도 있네요.
안녕하세요. 알라딘에 해당 평 남겼던 사람입니다. 댓글로 『마음의 개념』에 어떤 오역이 있는지, 그리고 왜 얼핏 보기에 나쁘지 않아 보이는지 댓글을 달았습니다. 읽어보시면 제가 번역을 문제삼은 이유를 이해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알라딘에 해당 평 남겼던 사람입니다. 저도 번역서에 대한 선생님의 관점에 거의 동의하며, 다소 부자연스럽거나 일부 오역이 있더라도 해당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다면 번역본을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마음의 개념』은 그렇게 용인할 정도의 번역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을 달아놓았으니, 읽어보시면 그 이유를 이해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정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원 세미나가 확실히 이런 오역의 문제들을 잡아내기에 좋은 계기가 되네요.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번역의 문제를, 세미나 같은 계기가 있으면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저도 대학원 세미나를 통해 모 번역본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번역본의 원문 발제를 담당하게 되어서 원문과 번역본을 함께 비교해 보았는데, 누락이나 오역이 엄청나더라고요. 역자가 기본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번역을 한 것인지, 한국어로는 아예 의미 자체가 통하지 않을 만큼 기계적 번역이 되어 있었고요. 저도 100자 제한 때문에 길게 쓰지는 못하였지만, 알라딘에 평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