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오른쪽)보다 이름도 덜 알려져서 서러운데, 칸트(오른쪽)에게 얼굴까지 도둑맞은 비운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왼쪽).
개인적으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언젠가는 좀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은 근대 철학자 중에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야코비는 다른 독일 고전철학의 거장들에 비해 이름도 덜 알려져 있고, 심지어 얼굴까지 칸트에게 도둑맞아서(?) 대중적으로는 칸트와 초상화가 자주 혼동되기까지 하는 비운의 철학자이지만, 저는 야코비의 칸트 비판에 뭔가 핵심을 찌르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부 시절에 처음 칸트를 공부하였을 때, 저와 제 철학과 친구들은 종종 "칸트가 철학 다 끝낸 거 아니냐?"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인식의 가능 조건에 따라 '현상계'와 '예지계'를 엄격하게 나누고서, "너는 여기까지 알 수 있고, 여기부터는 알 수 없어."라고 규정하는 칸트의 작업이 너무나 체계적이고 완결적으로 보여서, 더 이상 이 이론을 비판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기 어려웠거든요. 갑자기 '절대자'니 '절대지'니 하는 용어들을 도입하는 칸트 이후의 독일철학은 일종의 퇴락의 길을 걸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죠.
그런데 야코비가 제시한 '사물 자체의 아포리아'를 접하게 되면서, 칸트가 철학을 다 완성시켰을 것이라는 그 전까지의 제 생각이 얼마나 얕은 수준의 평가였는지를 처음 자각했죠. 야코비는 매우 날카롭게도, 사물 자체 개념이 지니고 있는 모순을 폭로하거든요. 칸트의 철학 체계에서 '촉발'과 같은 인과적 관계는 현상계 내부에서 지성을 통해 성립하는 관계이다 보니, 사물 자체가 현상을 '촉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야코비의 지적이었습니다. (a) 사물 자체가 현상을 '촉발'하려면, 사물 자체도 현상계의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현상계 내부에 존재해야 하고, (b) 사물 자체가 현상계 바깥에 존재하려면, 사물 자체는 현상을 '촉발'할 수 없다는 거죠. 야코비의 실제 텍스트에서는 이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제시됩니다.
“대상들이 감각에 인상을 주고, 이러한 방식으로 표상을 산출한다고 말하는 것이 칸트 철학의 정신에 아무리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러한 전제 없이 칸트 철학 자체가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학설의 제시에 도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란 어렵다. […] 이러한 전제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단순히 주관적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사물 자체로서 우리 바깥쪽에 있는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객관적으로 타당하다는 확신이 바로 이 전제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대상들이 서로 맺는 필연적 관계들과 그들의 본질적 연관성에 대한 우리의 표상 역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규정이라는 확신도 마찬가지로 이 전제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어떠한 방식과 방법으로도 칸트 철학과 조화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칸트 철학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하는 데 처음부터 끝까지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상들과 그들의 관계들 모두가 단지 주관적 본질이며, 단순히 우리가 지닌 고유한 자기 자신의 규정들일 뿐이며, 결코 우리 바깥쪽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Jacobi, 1787:109/336)
이 내용은 『데이비드 흄에게 있어서 신앙, 혹은 관념론과 실재론』이라는 책에 부록인 「초월론적 관념론에 대하여(Ueber den Transzendentalen Idealismus)」에서 등장합니다.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독일어본 중에서는 David Hume über den Glauben oder Idealismus und Realismus/Jacobi an Fichte (Hamburg: Felix Meiner Verlag, 2019), S. 103-112에 수록되어 있죠.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는 않지만, 영어로는 The Main Philosophical Writings and the Novel Allwill (George di Giovanni (trans.), Montreal & Kingston: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1994.), pp. 331-338에 번역되어 있고요.
야코비 자신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야코비의 저 논증은 이후에 독일 관념론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헤겔의 초기작인 『믿음과 지식』에서도 야코비가 제기한 것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비판이 칸트에게 제기되는 것을 보면 말이죠.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이 '현상계/예지계'의 이분법을 거부하면서 칸트와는 다른 새로운 사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데에는 야코비의 영향이 지대하지 않았나 합니다.
또 사물 자체에 대한 야코비의 비판이 단순히 칸트의 철학에만 적용되는 비판을 넘어서, 궁극적으로는 형이상학 일반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어떠한 형이상학이든지 개념적 질서 너머에 '실재'를 상정하고자 하면, 비개념적 실재가 어떻게 개념적 질서 속에서 파악되거나 기술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생겨나기 마련이니까요. (a) 개념적 질서 속에 들어오려면, 비개념적 실재일 수 없고, (b) 비개념적 실재라면, 개념적 질서에 들어올 수 없다는, 야코비의 논증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논증이 형이상학 일반에 언제나 제기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이런 식의 논증이 셀라스나, 브랜덤이나, 맥도웰이 제기하는 논증이기도 하고요.)
저도 독일 관념론에 관심이 많지만, 이 분야의 전공자는 아니라서 언제나 곁눈으로만 독일 관념론 관련 논의를 보고 있는데, 제 관심을 충족시키기에는 이 분야가 너무 폭넓고 어려워서 언제나 독해의 한계를 느낍니다. 야코비의 경우에는 철학계 내부에서도 그다지 많이 연구되고 소개되지 않은 인물이라 더욱 어렵네요. 고인이 되신 연세대 남기호 교수님이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야코비를 열심히 연구하셨던 분들 중 한 분이셨는데, 그분이 쓰신 『야코비와 독일 고전철학』을 중심으로 언젠가 야코비를 좀 더 깊게 파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