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께서 서술하신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갖는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 답글을 남깁니다.
작성자님께서 말씀하시는 “철학자”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처럼 이른바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거대이론가들, “철학 연구자”란 이 거장들의 이론을 정밀하게 해석하고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이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는 과학자 vs. 과학 연구자에 대한 구분만큼이나 모호하고 오도의 소지가 다분한 구별입니다.
일단, yhk9297님께서 이야기하셨지만, 아무리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철학자들이라도 이전의 철학 이론들을 전혀 참조하지 않은 채 아예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연구가 선행하는 연구들과의 일정한 영향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초기 고대의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 및 플라톤의 이론을 연구하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철학 체계를 확립했고, 칸트도 라이프니츠에서 볼프로 이어지는 당대 독일 철학 전통을 배경으로 해서 『순수이성비판』을 집필했습니다. 거꾸로 아무리 거장들의 이론을 해석하고 정교화하는 (이른바 “주석가”라고 폄하당하곤 하는) 철학자들이라도 새로움이 전혀 없는 연구결과를 내지 않습니다(애초에 새로운 내용을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는 연구결과는 논문으로 게재되지도 않습니다). 이들 역시 기존에 학계에서 미처 주목받지 않았던 이론을 조명한다거나, 알려졌던 이론이라도 이 이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거나, 혹은 이 이론에서 따라나오는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구는 언제나 새로운 내용을 담습니다. 요컨대 “완전히 새로운 이론의 제시” 같은 것은 없습니다. 얼마나, 어느 정도로 새롭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이런 사정은 비단 철학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학문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닙니다. 음악가들도 선대의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소설가들도 선배 소설가들의 빼어난 문장을 읽고 배우면서 창작 능력을 기릅니다. 베토벤은 하이든에게 작곡을 배웠고, 고흐는 선배 화가들의 그림들을 따라 그리면서 그림을 연습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작품을 갈구하는 예술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하물며 학문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요.
모든 철학 연구가 선행연구들을 준거점으로 삼아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칸트” 철학, “헤겔” 철학처럼 자기 이름으로 브랜딩할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고, 그런 일에 성공하는 학자들은 극소수입니다. 사실 역사에 이름이 길이 남아 계속 회자될 정도의 막대한 이론적 기여를 한 이들이 예외적인 사례이고,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그저 철학이라는 씬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평균적인 정도의 기여를 하는 것뿐이죠. 자연과학에서도, 뉴턴, 아인슈타인, 다윈, 멘델처럼 학계 내에 혁신을 가져온 거대이론가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학계 내에서 정립된 고전역학, 상대성이론, 진화론, 유전법칙 등을 배우고 그 위에서 후속 연구들을 더 해나가며 이론을 발전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대이론을 창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대부분의 과학자들을 “과학자가 아닌 과학 연구자이다”라거나 “스스로의 언어가 아닌 타인의 언어로 만든 성벽 안에 숨어있다”는 식으로 힐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각자 몸담고 있는 세계에 능력껏 기여를 할 뿐이니까요. 저쪽 부자는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5억을 출연했는데 왜 너는 5만원만 기부했냐고 우리가 헐뜯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거대이론가만이 철학자이고, 이들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이들은 “철학자”라고 일컬어질 수 없으며 “철학 연구자”라고만 일컬어져야 한다고 평가절하당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스스로의 언어가 아닌 타인의 언어로 만든 성벽 안에 숨어있다”는 등의 말로 미루어보면 후자를 백안시하는 어조가 없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