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 "여성의 본분은 근본적으로 가정과 결혼에 있다."

후설의 제자인 게르다 발터(Gerda Walther)의 책 Zum anderen Ufer: Vom Marxismus und Atheismus zum Christentum에 흥미로운 일화가 있네요. 원래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1919년 논쟁에 대한 일화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당대 여성의 학문적 지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어느 날 후설은 우리 모두를 강연에 초대했다. 그 강연은 그가 프라이부르크의 ‘문화철학회’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의 전임자인 리케르트(Rickert) 교수가 설립한 단체였다. 잠시 후 그는 여제자들에게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 행사에 여성은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예외를 인정받으려 노력했지만 정관에 규정되어 있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괴한 일인가? 예를 들어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은 그곳에 참석이 허용된 수많은 ‘만물의 영장(남성)’들보다 후설의 철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 목적은 학자들이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겠지만, 당시는 아직 여대생이 없던 시절이었다.

(Gerda Walther, Zum anderen Ufer: Vom Marxismus und Atheismus zum Christentum, Reichl Verlag, 1960, S. 213. 제미나이 번역)

[…] 내가 후설과 교수 자격 취득(Habilitation)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을 때, 그는 다소 당황하며 여성의 본분은 근본적으로 가정과 결혼에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래서 그는 에디트 슈타인의 교수 자격 취득도 주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가능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른 교수들은 여성을 교수 자격자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도 상황에 따라 여제자들을 그들에게 추천할 수는 있겠지만, 본인 스스로는 아직 그런 결정을 내릴 마음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그의 부인 말비네(Malwine)의 목소리가 투영된 것일까? 충분히 그럴 법해 보였다. 기혼 여성이 대학 강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나중에는 여러 차례 그런 사례가 생겼지만— 당시 그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면에서 그는 구약성서적이고 가부장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비록 그는 늘 강조했듯이 외부적인 이유가 아니라 신념에 따라 (개신교) 기독교로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설은 여성의 참여를 아예 불허했던 저 프라이부르크 철학회의 설립자들보다는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1918년 혁명이 일어나서야 비로소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학문의 길이 온전하게 열리게 되었다.

(Gerda Walther, Zum anderen Ufer: Vom Marxismus und Atheismus zum Christentum, S. 216. 제미나이 번역)

1개의 좋아요

정작 후설에게 여제자가 있지 않았나요? 후설이랑 논쟁을 벌이며 꽤 다투기도 했고 제 기억으론 그랬던 거 같은데. 아 그래서 에디트 슈타인의 교수 자격 취득 주선을 거절 했다고 써있네요 쩝.. 어쩌면 후설이 본인에게 대들어서 삐진게 원인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망상을 해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