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멸종, 인류세, 재난의 일상화. 오늘날 ‘종말’은 더 이상 종교적 예언이나 허구적 상상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핵전쟁 이후의 절멸, 기후과학이 경고하는 티핑 포인트, 인류세를 둘러싼 논쟁, 좀비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 영화까지 종말은 이제 뉴스에서 보도되고, 정책의 전제가 되며, 개인의 삶과 선택을 둘러싼 조건이 되었다.
브라질의 철학자 데보라 다노프스키와 인류학자 에두아루드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공저 『세상의 종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종말을 상상해왔으며, 그 상상은 어떤 세계관과 정치, 어떤 인간상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서구 근대의 상상력은 인간 없는 세상을 수없이 그려왔지만, 세상 없는 인간을 사유하는 데에는 극도로 취약했다. 폐허가 된 지구, 인간이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되는 자연의 시간은 상상할 수 있지만, 인간이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인간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동일시해온 인본주의적 사고 속에서, 인간의 종말은 곧 세상의 종말로 이해되어 왔다.
이 책의 저자들은 철학과 인류학, 기후과학, SF와 대중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텍스트를 가로지르며서구 근대의 종말 담론이 공통적으로 인간을 세상의 중심이자 기준으로 설정해왔음을 드러낸다. 『세상의 종말』은 이를 해체한다. 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세상, 식민주의와 개발로 이미 끝나버린 세상, 그리고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거나 새롭게 형성되는 세상까지. 이 책은 종말을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상이 끝나고 시작되는 방식으로 사유하도록 이끈다.
내용은 흥미로울 것 같은데, 표지가 너무 충격적이네요. 저는 처음에 이미지 파일이 깨진 건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펼친 모습을 보니, 아주 이상한 디자인은 아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