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해한 <프레게-기치 문제>를 스스로 정리해 본 글입니다. 내용은 IEP의 Non-Cognitivism in Ethics와 Ethical Expressivism 문서, SEP의 Russell’s Moral Philosophy 문서를 참고했습니다.
프레게-기치 문제는 윤리학에서의 비인지주의(non-cognitivism)에 대한 대표적 반론이라고 여겨진다. 비인지주의란 윤리적 문장의 진릿값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메타윤리적 관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는 질량을 갖는다" 같은 문장은 사실을 나타내기 때문에 진리조건을 통해 참/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반면 "동물을 괴롭히는 건 언제나 나쁘다" 같이 가치를 나타낸 문장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비인지주의에서 정의주의(emotivism)는 이러한 윤리적 문장이 일종의 감정, 태도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의주의자들에 의하면 방금 예를 든 문장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는 사실 "사람들이 동물을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 해!" 같은 정서 표현이며, 진릿값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비인지주의적 관점을 따르면서도 일상에서의 도덕 판단을 잘 설명하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P. T. 기치는 [어떤 문장이 담론에서 주장되거나 주장되지 않은 채로 나타나도 동일한 문장임을 알 수 있다]는 프레게의 관점을 바탕으로 정의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다음과 같은 예시를 보자.
(전제1) 만약 동물을 괴롭히는 것이 언제나 나쁘다면 강아지를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
(전제2)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
그러므로, 강아지를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
이 추론은 전건긍정 규칙이 사용됐으며, 명백하게 타당한 논증이다. 이때 (전제2)에서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는 주장된 채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전제1) 속에서 나타난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조건문은 전건이 성립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전건이 성립하면 후건 또한 성립한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프레게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동일한 문장이다.
정의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전제2)는 윤리적 문장이며, 따라서 일종의 감정 표현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제1) 속에 등장한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는 윤리적 문장이지만 감정 표현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동물을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 해!" 같은 소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전제1)은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전제1) 만약 동물을 괴롭히는 것이 언제나 나쁘다면 강아지를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
(전제3) 강아지를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쁜 게 아니다. [강아지의 교육을 위해서는 훈육이 필요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동물을 괴롭히는 것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이 후건부정 추론에서 a는 "사람들이 동물을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 해!"라는 소망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전제1)을 받아들일 수 있다. 정의주의 해석에서 이 예시를 봤을 때 프레게의 관점과 달리, (전제1)의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와 (전제2)의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언제나 나쁘다"는 서로 동일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이는 정의주의적 해석의 약점을 나타낸다.
정의주의는 윤리적 문장이 정서를 표현한다고 말하지만 (전제1)처럼 "만약 ~이면 ~다", "그리고", "또는" 같은 연결사 결합을 통해 나타냈을 때는 정서를 표현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렇듯 정의주의는 윤리적 문장이 더 큰 문장 속에 삽입되어 나타났을 경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에 비해 일상에서는 이런 문장들이 매우 흔하게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치가 제기한 이 문제는 곧 정의주의가 극복해야 될 큰 난관이다.
하지만 만약 정의주의가 프레게-기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음 경우들 중 하나만이 옳을 것이다.
(a) 윤리적 문장 또한 진릿값을 가진다 (인지주의적 관점)
(b) 윤리적 문장은 논리로 다룰 수 없다 (급진적 관점)
만약 저 중에서 (b)가 옳다면 방금 예를 든 명백히 타당해 보이는 논증이 사실은 논리가 아니며, 도덕 규범은 합리의 영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저는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주변에 이런 주제에 관해 물어볼 사람도 없는지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서네요. 그래서 이런 부족한 수준의 정리글이라도 써 봅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논의를 보면 드는 생각이, 논리학을 배운다 한들 논리를 일상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꽤 어려운 문제같네요. 만약 정말로 도덕 규범이나 예술 평론이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면 우리는 실제로 일상에서 무슨 토론을 했던 것일까요? 단순한 문장 조합 놀이를 했던것일까요?
러셀도 청소년기에는 공리주의자였지만 이후에는 정의주의적 관점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저는 비인지주의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 비인지주의자들 전부가 정치나 윤리적 문제에 대해 담을 쌓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러셀같은 경우를 보면 꼭 그런것만은 아니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