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펜팔 제자, 팔츠의 엘리자베스 공주가 데카르트에게 직접 그가 주장한 이원론의 난점을 지적한 건 너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대체 어떻게 비물질적인 영혼이 물질적인 신체에 운동을 야기하고, 어떻게 물질적인 신체가 비물질적인 영혼에 영향을 행사하냐 진지하게 묻죠.
그런데 데카르트는 무려 "무거움이 실재적 성질이라고 가정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듯" 이해하면 된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이게 데카르트가 내놓은 답변의 전부는 아닙니다만, 데카르트 자신이 저런 식의 '실재적 성질' 개념을 주장하던 스콜라 철학자들을 대놓고 비판하던 걸 생각하면 많이 이상하죠. 이에 엘리자베스 공주는 다시 이렇게 답장합니다.
이제 내 가문의 이익, 내가 피할 수 없는 어떤 대화나 사회적 의무 같은 것들이 내 약한 마음을 성가심, 지루함과 함께 짓뭉게버렸다는 사실이, 당신이 무거움을 통해 이야기했던 [심신 상호작용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 멍청함에 대한 변명이 되길 바랍니다. (AT Ⅲ 684)
"니가 개소리하는 거냐 아니면 내가 너무 멍청해서 이해를 못하는 거냐?"라는 질문을 정중한 어휘로 바꿔 묻는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데카르트는 부랴부랴 다시 이런 식으로 답장을 보냅니다.
저는 전하가 제가 진지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랬다면,] 이는 제가 전하에게 빚진, 전하에게 응당 다시 되갚아야 할 그 존경심에 상반되는 것입니다. (AT Ⅲ 692)
"나는 항상 진지했고 절대 당신에게 이런 말로 장난치지 않는다"며 바짝 엎드린 데카르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진실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제나 제 연구 안에서 관찰해온 원리가 되는 규칙과, 약간의 지식을 얻음에 있어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제가 믿는 그것들은, 상상을 사용하는 것들은 하루에 몇 시간, 지성 자체만을 사용하는 것들은 1년에 몇 시간 밖에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나머지 시간은 제 감각과 정신을 휴식하도록 두는 데 사용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시골로 떠난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금 쓰는 것만큼의 시간을 연구에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제 정신은 [도시의] 삶이 요구하는 여러 다른 귀찮은 것들에 의해 방해받을 것이므로, 그만큼의 시간을 유용하게 쓰기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AT Ⅲ 692-3)
여기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지성 자체만을 사용하는 것"들은 수학이나 형이상학과 같은 분야의 학문을 말합니다. 즉, 이곳에서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적 생각은 1년에 몇 시간 못하고, 그마저도 시골에서 해야 좀 잘 되지 도시에서는 못 한다'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데카르트가 암만 천재라도 이건 너무 무리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구라를 치는 데카르트에게 엘리자베스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비록 제가 당신에게 이런 고백과 여러 감사를 빚지고 있긴 하지만, 제가 만약 당신의 친절함과 관대함을 알지 못했더라면 [당신의 대답을] 굉장히 불성실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AT Ⅳ 3)
그렇답니다. 그냥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계속 고민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