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소 서강올빼미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고1 학생입니다.
학교에서 동아리 일로 경제 관련된 사상가를 소개하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사상가는 카를 맑스였는데
정확히는 마르크스로서의 사회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라는 사상 자체를 중심 주제로 삼았습니다.
자료조사를 하며 여러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었는데
쓴 글의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GPT나 제미니는 괜찮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환각 문제도 있어서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연유로 염치없지만 서강올빼미에 계신 분들에게 제 조잡한 글에 대한 평가와 일종의 검수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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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대한민국에서 멀고도 가깝게 느껴지는 그 개념. 대다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생산수단 국유화", "실패한 이념" 정도의 얕은 지식만을 갖추고 있을 뿐, 그 사상의 정확한 배경과 내용, 동기에 대한 맥락과 지식은 결여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사회주의란 낡은 이념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는 19세기 자본주의의 반동으로 나타난 사상으로서 자본주의의 구조와 모순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비판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것이며, 아직도 그 사상은 자본주의에 대한 유의미한 반론과 관점을 제공한다. 어떤 사상과 생각이 "죽지"않으려면 그에 대한 반론과 재평가, 재해석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 역시 사회주의가 지니는 반론자로서의 가치를 천명한다. 나는 그런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설명함으로서 나와 독자의 자본주의와 현 체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몇 가지 의문 또는 의문의 씨앗을 제기할 것이다, 또는 그러길 바란다. 또,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이 글을 읽는 학생들 중 일부는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나 부정적 인상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런 학생들은 더더욱 이러한 글을 읽는 작업에 충실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그들이 가지는 인상이 틀릴 수 있다. 즉, 사회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한 부정확한 편견으로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라는 지적•도덕적 책임과 의무에 대한 불성실을 범하고 있었을 수 있다. 둘째, 진정 사회주의가 비판받을 만한 부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음으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반한 진정성 있는 비판으로 하여금 비판의 선기능인 진리 탐구의 효과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알면 더 올바르게, 더 잘 깔 수 있다"(물론 사회주의를 비난하거나 속히 말하는 "까기"를 위해 사회주의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일종의 블성실 또는 불평등을 저지르는 것일 수 있으니 중립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로 먼저 경청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 사상을 잘 모르기에 그 사상에 대해 배울 때에 그 사상을 비판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듣는 행위는 그 사상에 대한 앎이 이뤄지지 전에 가지는 동기로서 그 사상의 합리성이나 논리에 대해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그것을 비판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여긴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열망이 아닌 사적이고 맹목적인 악의일 뿐이며 중립성이라는 청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사회주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상가는 단연 그 복슬복슬해 보이는 수염이 인상적인 카를 마르크스일(Karl Marx, 1818.5.5~1883.3.14) 것이다. 다만 나는 마르크스로서의 사회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라는 사상의 역사와 개념을 말할 것이기에, 그 이전의 세상과 사상가들에 대해 논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니, 그의 사회주의를 기대하고 읽는 독자들은 조금만 기다려주길 바란다.
먼저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사상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초기 사회주의자 중 하나인 생시몽(saint simon)은 프랑스 혁명 이후 왕실이 사라진 후 사회를 바라보며, 혁명이 가져온 것은 만인의 평등과 낙원이 아닌 왕실과 구귀족에서 "생산하지 않는 자들"로의 이권 이전이 발생했을 뿐인 또다른 불평등의 세계가 발생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생산하지 않는 자"들은 금융, 투기, 지대 계층으로 단순히 말해 "돈으로 돈을 버는 계급"을 지칭한다. 생시몽은 이런 사회의 현실에 반하여 “사회는 가장 유용한 일을 하는 자들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산업체계에 대하여(De l’industrie))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실재로 사회를 발전시키는(생시몽의 견해에 따르면) 계층인 기술자,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지향하였다. 동시에 지위만으로 생산 없이 이익을 얻는 기생계급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기생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혼란에 빠진다.”(새로운 기독교(Nouveau Christianisme)) 분량상 더 다루기는 어렵지만 이 이외에도 푸리에, 오언 등의 다른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존재하며, 그들의 이름과 사상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독일 이데올로기』,『철학의 빈곤』,『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등의 텍스트에서도 언급된다. 초기 사회주의자들 모두가 자본주의를 비판했고 각자의 이상사회를 추구했지만 그들의 이론은 자본가 계급이나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고 공상적인 면이 다분했다는 비평을 듣는다. 한마디로, 현실성이 떨어졌고 사상의 완성도가 빈약했다. 그들은 자본가나 노동자, 대중의 도덕심에만 호소했다. 그들은 치밀하기 분석하지도 철저하게 설계하지도 못했으며, 그 한계는 후에 마르크스가 그들을 "존중하지만 넘어야 하는 대상" 으로 보도록 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을 단지 미완성, 낙관론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을 것이다. 완성도 높은 비윤 아니지만, 그것은 마치 김치찌게를 동양 음식이라고만 설명하는 것과 같다. 틀리진 않았지만, 절대 김치찌게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명할 것은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이다. 마르크스와 초기 사회주의자들 사이에는 대략 40년 정도의 간격이 존재하는데, 그 사이에 초기 사회주의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모순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으며 산업자본주의는 여전히 생존을 위한 노동을 노동자에게 강제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은, 정의의 법칙을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이익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추구할 완전한 자유를 가진다.”(『국부론』)에서 "정의의 법칙을 침해하지 않는 한"은 무시되었다. 마르크스는 자유주의자들의 '자발적 노동계약'을 '구조적 강제성'에 대한 정당화라고 비판하였다. "안 하면 굶어 죽는데 하든 말든 자유라고 하면 그게 자유인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그의 역사관에 근거를 둔다. 그는 이에 대해 한 가지 말을 남겼는데, 그 말은 지금까지도 그의 상징처럼 전해지고 있다.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공산당 선언』) 그의 역사관은 대게 역사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운다. 유물론이란 관념론과 대비되는 관점으로서, 인간의 관념이나 도덕 등의 의식들은 모두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의식에 영향을 주는 물질을 토대로 형성된다는 견해이다. 사상이 있고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물질)이 있고 나서 그에 기반해 사상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앞서 말했듯 그의 사회주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사실상 그 근원, 발생지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고통과 이기심, 분쟁은 그들이 처한 상황조건의 산물이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절대로 좋은 상황조건이 아니였다. 노동자의 반 강제적 노동과 비인간적 노동환경, 구조적 착취를 고착화시키는 자본주의라는 썩은 토양에서는 이상사회라는 작물이 자라날 수 없다고 본 것이다.동시에 그의 역사관은 변증법적 역사관이라고도 불린다(이렇게 말하면 앞서 말한 역사유물론과 변증법적 역사관이 같은 내용에 다른 명칭인 것 같지만, 마르크스의 역사관이 이런 두 가지 특징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이 둘을 합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는 해겔의 변증법적 관념론과는 다른 변증법적 역사관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부른다. 유물론은 앞서 설명한 것이고, 변증법적이란 말에 대해 설명하자면, 변증법이란 고전적으로는 정(테제)에 대한 반(빈테제)과 그 둘의 합(진테제)인 진테제가 다시 정이 되고 또 다른 진테제가 되는 과정을 말하지만,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보충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헤겔의 의식에서 세계로의 관념론과는 다르게,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의식이 물질에 의해 형성된다고 여긴다. 그에 따라 그의 역사관에서의 변증법적 요소 역시 물질에 기초하고 있다. 비교대상이 있으면 더 이해하기 쉬울 태니 마르크스와 대비되는 헤겔을 예시로 들어보자. 헤겔은 역사를 의식(이념)의 자기실현 과정이라 여긴다. 의식이 사건을 만들고, 그에 따라 세계의 조건이 변화한다는 견해가 헤겔의 변증법적 관념론이다. 세계의 정론이 있고, 이에 대한 반론이 생기고, 그 반론과 정론이 충돌하며 사건이 일어나며, 결국 두 이론의 진테제(합)이 도출되는 것이다. 헤겔에게서 변증법을 포이어바흐라는 선대 유물론자에게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만들어낸 것이 마르크스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사상적 토대 위에서 "잉여가치", "자본가와 노동자" 등의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을 근거로 "자본가 계급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혁명"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Proletariat revolution/Proletarian revolution)"이 일어날 것이라 주장하였다. "잉여가치"의 개념이나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들의 세부적인 내용,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말하는 역사전개의 내용은 내가 설명할 능력이 없으니 생략하겠다.
마음만큼은 사회주의와 독재, 민주주의의 관계성과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을 거치며 변형된 사회주의와 각 사회주의의 차이, 사회주의 실패원인, 민주사회주의도 다루고 싶지만 A4용지 하나 분량에 담아야 한다는 분량제한이 있으니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찾아보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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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그럼, 여기 계신 모든 분들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