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규범 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번역)

특이하게도 저명한 니체학자인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자이고 영어권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철학 블로그 다섯 곳 중 한 곳의 주인장인 시카고 대학 법[철]학 교수 브라이언 라이터의 'Why Marxism Still Does Not Need Normative Theory (2015)'의 원문 pdf와 번역문 pdf를 압축한 파일 링크입니다. 그는 최근에 제자였던 이와 함께 자신이 편집자인 루틀리지 철학자 시리즈의 '마르크스'편을 공저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빨리 국역출간되어야 하는 책입니다. 저는 라이터의 이 글을 마르크스 사후에 집필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글 100편 선집을 낸다면 그 안에 집어넣어야 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봅니다. 본문 번역만 원문을 병기했습니다.
++++

규범이론불필요.zip

10개의 좋아요

첫 페이지에 오자가 있어서 정정본으로 교체했습니다.

1.) 라이터가 "1968년의 학생 반란과 여성, 인종적 소수자, 동성애자들을 위한 연합 해방운동은 대학들에게 실천적 관심사와 ‘관련성’을 가지라는 요구를 했는데, 물론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부과한 제약 내에서였다. 결과적인 부르주아 실천철학—롤스와 하버마스, 그리고 더 최근에는 싱어와 코헨으로 대표되는—은 이상적 응답이었다"라고 쓴 것에 대한 논평이군요. 코헨이 규범철학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노직의 책을 읽고 받은 깊은 인상이다라는 주장의 참임과 라이터의 주장의 참임은 양립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전기적 주장이고 후자는 이데올로기 비판 이론적 주장이라서 후자는 전자를 인정하면서 전자를 포섭할 수 있습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이유, 더 나아가 특정하게 반응한 이유 등을 이데올로기 비판 이론적 틀 내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더 이론적인 설명이기 때문에 참임을 입증하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버마스의 첫 저서가 1968년 학생 반란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 역시 라이터의 주장의 참임과 양립할 수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책을 스무 권 이상 냈고 대표작을 포함해 그 중 상당수가 70년대 이후에 출간되었습니다.

2.) '서구 마르크스주의'를 서유럽과 영어권 마르크스주의자를 가리키는 기술적인 대분류 명칭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는, 그 지역들이 명시적인 소속 기준이고 현실 사회주의 체제와 결부되어 있었던 마르크스주의 전통과의 구분이 추가적인 암묵적 소속 기준인 마르크스주의입니다. 대분류 명칭이기 때문에, 그리고 대분류 명칭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생각이 많이 다른 이들을 한묶음으로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장 보드리야르, 루이 알튀세르, 롤랑 바르트 등을 한묶음으로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3.) 사회학에서의 구조기능주의는 '기능적 설명'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기능주의의 사회과학적 버전 중 하나입니다. 코헨 버전 역사유물론도 기능주의의 사회과학적 버전 중 하나입니다. 코헨이 다윈적 진화생물학의 기능 개념을 차용했다고 해도 코엔 버전 역사유물론은 생물학 이론이 아니라 거대 사회학 모델입니다. 즉 일종의 사회학적 기능주의입니다. 게다가 그 둘(구조'기능주의' 사회학과 코엔의 '기능주의'적 역사유물론)에 대한 기술에서 '기능주의'라는 같은 용어가 등장한다고 해서 그 둘을 혼동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다른데도 혼동을 한다면 알아보려는 시도도 하기 전에 용어 하나의 동일성만 근거로 해서 서둘러 하는 혼동인데, 일반적으로 일어나기는 어려운 혼동입니다. 또, 원어 자체가 'functionalist'인데 이것을 '기능주의적'외의 무엇으로 번역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라이터 자신이 주 18)에서 코헨의 기능 개념이 다윈적 진화생물학에서 차용된 것임을 언급하고 있어서 혼동의 여지가 아예 없습니다.

3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