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때문에 헤겔을 오해한 니체?

EBS 위대한 수업 <헤겔> 1강의 16분 35초부터 피베크 교수가 "니체는 말년에 한 가지 후회를 했는데요, 쇼펜하우어의 어리석은 분노에 휩쓸려 헤겔을 오해했다고 했죠"라고 언급한 부분이 나옵니다. 독일어를 잘 못하는 제가 듣기로는 아마도 "Der späte Nietzsche bedauerte es in seinem Umgang mit Hegel, der unintelligenten Wut Schopenhauers gefolgt zu sein"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니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나 싶어서 찾아보니 선악의 저편 204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Am häufigsten endlich fand ich bei jungen Gelehrten hinter der hochmüthigen Geringschätzung der Philosophie die schlimme Nachwirkung eines Philosophen selbst, dem man zwar im Ganzen den Gehorsam gekündigt hatte, ohne doch aus dem Banne seiner wegwerfenden Werthschätzungen anderer Philosophen herausgetreten zu sein: — mit dem Ergebniss einer Gesammt-Verstimmung gegen alle Philosophie. (Dergestalt scheint mir zum Beispiel die Nachwirkung Schopenhauer's auf das neueste Deutschland zu sein: — er hat es mit seiner unintelligenten Wuth auf Hegel dahin gebracht, die ganze letzte Generation von Deutschen aus dem Zusammenhang mit der deutschen Cultur herauszubrechen, welche Cultur, Alles wohl erwogen, eine Höhe und divinatorische Feinheit des historischen Sinns gewesen ist: aber Schopenhauer selbst war gerade an dieser Stelle bis zur Genialität arm, unempfänglich, undeutsch.)

마지막으로 내가 젊은 학자들에게서 가장 자주 발견했던 것은 철학에 대한 오만한 경시 뒤에 숨어 있는 어떤 철학자 자신의 나쁜 영향이었으며, 실은 전체적으로 보면 이 철학자에게 복종하기로 예고했지만, 다른 철학자들에 대한 경멸이라는 자신의 가치평가의 굴레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결과로 모든 철학에 대한 전체적인 불만이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면 나에게는 쇼펜하우어가 최근의 독일에 끼친 영향이 이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 그는 헤겔에 대한 비지성적인 분노로 독일의 최근 세대 전체를 독일 문화와의 관계에서 분리시켰던 것이다. 이 문화는 모든 것을 잘 고려해볼 때, 역사적 감각의 높이와 예언적 섬세함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에서 쇼펜하우어 자신은 천재적일 정도로 빈약하고 둔감하고 비독일적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김정현 역, 책세상, 2002, pp. 170-171.

그런데 이 구절에서 니체가 딱히 헤겔에 대한 자신의 오해를 고백하는 것 같지는 같습니다. 선악의 저편 말고도 니체가 헤겔에 대한 오해를 언급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피베크 교수가 저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니체가 헤겔을 직접 언급한 적이 별로 없는 걸로 알고 있어서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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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lgate - Hegle, Nietzsche, Criticisms of Metaphysics 에서 니체와 헤겔의 관계성을 다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후기 니체가 헤겔에 더 sympathetic해져서 자신의 철학에 incorporate하려고 했다, 뭐 이런저런 편지에서 헤겔을 언급했다... 이런 맥락의 주장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수년전에 읽은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헤겔/니체 연결성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체크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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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위대한 수업>이 해외 사용자를 막아둬서 정확한 맥락을 들어볼 수가 없네요.

1.
말씀하신 바처럼 <선악의 저편> 204절은 니체 자신이 쇼펜하우어로 인해 헤겔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는 구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니체는 (1) 204절에서 헤겔은 쇼펜하우어와 달리 "역사적 감각"을 가진 자였다고 말하고 있으며, (2) 211절 등지에서 역사적 감각은 진정한 철학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전제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니체는 헤겔을 높이사고 있습니다.

또 니체는 (3) 204절에서 철학자를 "종합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라고 말하는데, 종합적 과제는 205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포괄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작업입니다. 특히, 니체는 당대 철학이 인식론으로 축소됐다며, 더 이상 당대 철학이 종합적 작업을 수행할 수 없다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4) 헤겔 철학의 중심이 인식론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헤겔 철학이 마냥 인식론적 작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게다가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관상학이나 골상학과 같은 오만가지의 지식을 사용하고 자신 철학을 전개하고 있지요. 니체 스스로도 211절 등지에서 "칸트나 헤겔의 고상한 모범을 따르는 자"들이 "논리적, 정치적(도덕적), 그리고 예술적 영역이든 한때 정립되고 창조됐으면서도 이제 지배적인 것이 되고 소위 ‘진리’라고 불리게 된 주어진 다양한 가치들을 확정하고 정식화”한다. 이로써 “이들 연구자들은 이제까지 일어난 일과 가치 있다고 여겨진 것들을 더욱 분명하게, 확실하게, 이해하기 쉽게, 다루기 쉽게 만들어서 과거의 그 방대한 것들을 –심지어 시간마저도- 축소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엄청나고 대단한 작업"을 수행했다고 평가하는데, 이를 미루어보면 니체가 헤겔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2.
아마 피베크가 염두에 둔 구절은 <아침놀> 193절일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헤겔 비판이 애초에 구체적이지도 않고, 그 비판의 핵심이 헤겔 철학은 쓸데없이 장황하고 사실상 아무런 내용도 없다는 것이라면요.

해당 구절에서 니체는 "유명한 독일인 중에서 헤겔보다 에스프리리를 많이 지녔던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의 "문체"에 대해서 길게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독일인들은 [그 문제의] 황홀경에 빠져 거리낌 없이 그를 즐겼기에, 쇼펜하우어같은 극히 훌륭한 지성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쇼펜하우어는 독일인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광경을 일생 동안 꾸짖었으나 결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3.
하지만 제가 1번에서 쓴 것처럼 니체는 헤겔에 대해서 마냥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지도 않았습니다. 니체가 헤겔에 대해 취한 입장은 매우 복합적입니다. 동시에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앵무새처럼 따르지도 않았구요.

이런 이유에서 헤겔과 니체 사이의 관계는 니체 학계에서 아직 연구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헤겔과 니체 사이의 관계를 공부하기 위한 좋은 교재로는 @yhk9297 님이 언급하신 Houlgate의 책이 있습니다. 그 외엔 Robert Pippin의 작업이 좋은 참고 문헌이 될 것 입니다. 피핀은 니체 학계와 헤겔 학회 양측 모두에서 권위있는 연구자로 취급됩니다. 훌게이트의 경우, 헤겔 권위자로는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의 작업이 니체 학계에서도 얼마나 진지하게 다뤄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첨언하자면, 니체와 헤겔 관계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훌게이트가 재직하고 있는 Warwick 대학은 니체와 헤겔를 동시에 공부하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Warwick에서 니체 권위자인 Ansell Pearson과 Huddleston가 근무했고, 지금은 SEP <니체의 미학> 파트를 작성한 Timothy Stoll 근무하고 있습니다. 물론, Pippin은 은퇴 예정이지만, 그가 있는 Chicago도 니체와 헤겔을 동시에 공부하기에 아주 좋은 대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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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는 점을 첨언하자면, (1) 니체는 쇼펜하우어보다 헤겔 철학을 먼저 접했다; (2) 니체는 어릴 적에 헤겔의 Encyklopädie를 구매했다; (3) 그가 읽은 또 하나의 헤겔 원전은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이다; (4) 그 외의 헤겔 원전을 읽었다는 증거나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헤겔과 관련된 많은 2차 문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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