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과 들뢰즈를 하나로 합치는? 시도를 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욕망이라는 걸 결여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과 생성하는 힘으로 보는 것 둘 다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둘의 이론을 수용하여 또 다른 욕망에의 이론을 창조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혹시 철학계에서 이러한 시도가 있었을까요? 미천한 지식으로 감히 여쭈어봅니다.

글쎄요, 질문하신 내용이 다소 포괄적이고 막연해서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서강대학교 서동욱 교수님의 『차이와 타자』라는 저서나 『들뢰즈의 철학』 제4장이 글쓴이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내용을 다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차이와 타자』라는 제목에서 '차이'는 스피노자-들뢰즈 계열의 생성과 긍정성의 철학을 지칭하는 용어이고, '타자'는 헤겔-레비나스 계열의 부정성의 철학을 지칭하는 용어이니 말입니다. 또 『들뢰즈의 철학』 제4장도 스피노자주의자인 들뢰즈의 욕망 이론과 헤겔주의자인 라캉의 욕망 이론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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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 철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좁게나마 아는 바에 따라 짧게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신분석학'으로 프로이트나 라캉 식의, 즉 욕망을 결여의 관점에서 보는 학문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들뢰즈의 사상과 양립할 수 없다고 봅니다. 들뢰즈가 욕망을 단순히 생성하는 힘으로 보는 것에 들어 있는 함축은, 여기에는 긍정과 충만함이 있지 부정이나 결여라는 것은 없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1) 스피노자와 관계들의 외재성: 들뢰즈는 성적 욕망을 어떤 결여와 아버지의 표상이라는 문제로 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강하게 반대합니다. 이는 『안티 오이디푸스』라는 제목에서도 잘 나타나 있고요. 그에게 이런 관점이 문제되는 이유는, 억압이나 결여를 존재에 '내재적으로' 속한 문제로 보면서, 행위의 역량을 매우 감소시킨다는 점입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기쁨과 역량을 증대하거나 감소시키는 것이 외부의 것과의 '마주침'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원래 있는' 결여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배치되거나 꾸며진 결핍만이"(『디알로그』 174쪽) 있을 뿐이에요. "결핍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심지어 사회가 어떤 곳에는 결핍을, 다른 어떤 곳에는 과잉을 분배하기 위해 조직된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결핍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결핍 현상은 욕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들뢰즈 다양체』258쪽) 그래서 프로이트-라캉적 모델에 대한 대안이 바로 '욕망 기계' 및 기관들 없는 신체라는 개념입니다. 이때 욕망하는 기계는 스스로 계속 욕망을 재생산하는 능동적인 개념입니다. 여기에는 미리 주어진 목적, 미리 주어진 원인이란 없기 때문에, 결여 또한 있을 수 없고, 이 점이 정신분석학과 상충됩니다.

(2) 니체와 반동적 힘: 정신분석학에 대한 들뢰즈의 또 다른 비판은 그것이 '반동적인' 학문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 학문에서 들뢰즈는 결여나 부정, 니체 식으로 말하면 '힘에의 의지의 쇠퇴'라는 부정적인 면을 품고 있습니다. 반동적인 힘이란 그 행위 능력으로부터 힘을 분리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니체와 철학』 제2장). 이는 우리의 능력들을 왜곡하고 평가절하하는데, 이는 들뢰즈가 보기에 정신분석학이 가진 바로 그 문제점입니다. 정신분석학은 그에 따르면 무엇이든지 욕망의 결여의 표상인 듯이 해석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들뢰즈는 적극적 힘으로서의 욕망을 끊임없이 긍정하는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동일시합니다. 또 프로이트 식의 정신분석학은 아버지라는 표상을 통해 환자에게 억압과 "가책"을 부여하는데, 이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비판한 그 점이기도 하고요.

들뢰즈를 읽은지 좀 오래되어서, 적절한 답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들뢰즈가 '분열분석'이라고 칭하는 것도 생각나긴 하는데, 잘은 모르겠네요.

(@YOUN 님께서 언급하셨듯이, 『들뢰즈의 철학』 제4장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다만 『차이와 타자』는 들뢰즈와 부정성에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고 있지 않아요. 참고로 위에서 인용한 책들은 국내 번역본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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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 @fuersichsein 두 분 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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