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적 실재론과 형이상학적 실재론

저도 @yhk9297 님과 유사하게 이 부분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사이더라면, 세계의 구조는 이미 '존재론적으로(ontologically)' 특정한 결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언어는 단순히 '인식론적으로(epistemologically)' 그 결을 발견해 낼 뿐이라고 주장하지 않을까요?

다만, 언어와 언어를 '인식론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이 세계의 구조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사이더도 여러 가지 존재론어들 중에서 가장 설명력이 큰 언어를 하나 뽑아낸 다음 "이 존재론어가 이렇게나 뛰어날 수 있는 것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해요. 하지만 특정한 존재론어가 (다른 존재론어를 더욱 잘 환원하든지, 우리의 일상적이거나 논리적 직관에 원활하게 부합하든지, 존재물을 덜 상정한다는 점에서 단순하든지 등) 훌륭한 언어라는 사실이 그 언어가 실재에 대해 진리를 말해준다는 사실과 과연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따져볼 수는 있겠죠.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넘어가는 것이 논리적 비약은 아닐지, 혹은 비약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국 존재론은 인식론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 말이에요.)

물론, 이 점에서도 사이더 같은 인물들은 콰인의 존재론적 개입 기준을 들고 와서 "특정한 언어 L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언어를 참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물이 존재한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거예요. 그렇지만 양화사 변이 이론가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한 언어에서 존재물로 상정되는 것들이 다른 언어에서 존재물로 상정되는 것들로도 얼마든지 번역될 수 있다면, 우리가 한 언어를 훌륭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언어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 두 언어 사이에서 무엇이 더 우월한 언어인지 따지는 것은 '말 뿐인 논쟁(verbal dispute)'이 되고 말겠죠. 또 특정한 사안 M1에서 뛰어난 언어가 다른 사안 M2에서 역시 반드시 뛰어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말이에요. M1에서는 언어 L1이 L2보다 훌륭할 수 있어도, M2에서는 L2가 L1보다 훌륭할 수 있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니까 말이에요.

그렇다면, 결국 여러 가지 '다원적인 존재론어'를 인정할 수 있게 되고, 다원적인 '세계의 구조' 혹은 '실재의 구조'를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해요. 그리고 이러한 논의 구도에서는 결국 우리가 인식론적으로 어떠한 '존재론어'를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존재론적으로 어떠한 '실재의 구조'를 인정할 것인지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언어와 분리된 채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실재'를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요. 그러니까, (a)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곧바로 넘어가려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뿐더러, (b) 만약 콰인의 존재론적 개입 기준에 의존해서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한다면, 결국 세계의 구조나 실재의 구조 같은 '존재'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나 '개념'에 의존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3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