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두 입장을 구분합시다.
존재론적 실재론 : 세계가 고유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고유한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존재론적 개념/언어가 있다.
형이상학적 실재론: 세계(의 구조)가 인간의 사유/언어/개념으로부터 독립적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 형이상학에서 T.Sider 등이 주장하는 존재론적 실재론이 (실제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정합적인가? 오히려 반대로, 존재론적 실재론을 받아들일수록 형이상학적 실재론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를 위한 최소한의 논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가 고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존재론적 실재론에 따르면, 세계 고유의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존재론적 언어가 있다.
- 형이상학적 실재론에 따르면, 세계 고유의 구조는 인간의 사유/언어/개념으로부터 독립적이다. 또한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맞다면, 세계 고유의 구조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사유/언어/개념에 구성적인 요소를 전제하지 않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그 어떤 최선의 존재론적 언어도 언어적 형식을 전제해야 한다. 즉 그 어떤 존재론적 언어도 인간에게 이해될 수 있는 형태의 언어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말하는 언어적 형식이 자연언어의 형식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 종이 불가피하게 마주하는 이 언어적 형식이라는 것은 세계 고유의 구조 자체에 속하는가?
- 인간의 언어적 형식이 세계 고유의 구조 자체에 속한다면, 세계 고유의 구조가 이미 언어적으로 재단되어 있다는 말이 되고, 따라서 (모종의 의미에서의) 언어적 관념론 내지 개념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인간의 사유/언어/개념에 구성적인 요소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될 수 없다. (물론 반실재론이 곧바로 따라나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부정될 뿐이다.)
- 언어적 형식이 세계 고유의 구조 자체에 속하지 않는다면, "세계 고유의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존재론적 언어"라는 존재론적 실재론의 주장이 공허해진다. 한갓 언어적 형식이 어떻게 비언어적 세계의 구조와 매칭된다는 것인가?
- 따라서 둘 중 어느 경우라도, 존재론적 실재론은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함께 갈 수 없다.
특별히 무거운 철학적 입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제게는 꽤나 직관적으로 여겨지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