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적 실재론과 형이상학적 실재론

먼저 두 입장을 구분합시다.

존재론적 실재론 : 세계가 고유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고유한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존재론적 개념/언어가 있다.
형이상학적 실재론: 세계(의 구조)가 인간의 사유/언어/개념으로부터 독립적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 형이상학에서 T.Sider 등이 주장하는 존재론적 실재론이 (실제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정합적인가? 오히려 반대로, 존재론적 실재론을 받아들일수록 형이상학적 실재론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를 위한 최소한의 논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계가 고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존재론적 실재론에 따르면, 세계 고유의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존재론적 언어가 있다.
  2. 형이상학적 실재론에 따르면, 세계 고유의 구조는 인간의 사유/언어/개념으로부터 독립적이다. 또한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맞다면, 세계 고유의 구조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사유/언어/개념에 구성적인 요소를 전제하지 않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3.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그 어떤 최선의 존재론적 언어도 언어적 형식을 전제해야 한다. 즉 그 어떤 존재론적 언어도 인간에게 이해될 수 있는 형태의 언어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말하는 언어적 형식이 자연언어의 형식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 종이 불가피하게 마주하는 이 언어적 형식이라는 것은 세계 고유의 구조 자체에 속하는가?
  4. 인간의 언어적 형식이 세계 고유의 구조 자체에 속한다면, 세계 고유의 구조가 이미 언어적으로 재단되어 있다는 말이 되고, 따라서 (모종의 의미에서의) 언어적 관념론 내지 개념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인간의 사유/언어/개념에 구성적인 요소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될 수 없다. (물론 반실재론이 곧바로 따라나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부정될 뿐이다.)
  5. 언어적 형식이 세계 고유의 구조 자체에 속하지 않는다면, "세계 고유의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존재론적 언어"라는 존재론적 실재론의 주장이 공허해진다. 한갓 언어적 형식이 어떻게 비언어적 세계의 구조와 매칭된다는 것인가?
  6. 따라서 둘 중 어느 경우라도, 존재론적 실재론은 형이상학적 실재론과 함께 갈 수 없다.

특별히 무거운 철학적 입장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제게는 꽤나 직관적으로 여겨지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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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형이상학 실재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이더는 구조적 실재론 (아마 허브님이 말씀하시는 존재론적 실재론)을 설명하면서 구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The goal of this book is to push forward the front of realism about structure. I want to expand our conception of structure’s importance, generalize the concept of structure, investigate its nature, use it as the foundation of “metametaphysics”, and reconceptualize metaphysics in terms of it.
Structure is particularly central to metaphysics. The heart of metaphysics is the question: what is the world ultimately, or fundamentally, like? And fundamentality is a matter of structure: the fundamental facts are those cast in terms that carve at the joints.
The truly central question of metaphysics is that of what is most fundamental. So in my terms, we must ask which notions carve perfectly at the joints (Writing the Book of the World, pp. 5)

다시 말하면, 형이상학을 한다는 것은 실재의 구조를 가장 잘 (관절대로) carve해줄 수 있는 개념 (term; notion)들을 찾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실재는 그 자체로 재단돼있고, 우리의 언어를 살펴보면서 그에 상응하는 개념들을 찾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존재론적 실재론이 형이상학 실재론과 양립가능한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실재 자체가 우리의 언어와 독립적으로 재단돼있다는 면에서 존재론적 실재론이 형이상학 실재론을 전제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하지 않지만요.) 그래서 제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음 부분입니다:

"언어적 관념론," 혹은 "개념주의" 가 정확히 어떤 말씀이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이더가 말하는 구조적 실재론을 가져간다면, 세계 고유의 구조가 언어적으로 재단이 돼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그 자체로 재단이 돼있으며, 그 재단과 상응하는 언어를 찾는 것이 (적어도 사이더에 따르면) 형이상학의 목표니깐요. 일단 제가 아는 바를 적어봤는데, 제가 놓치는 부분이 있으면 더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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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논의를 몰라서 오해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Herb 님이 말씀하시는 존재론적 실재론이 맞다면 "세계가 고유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고유한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존재론적 개념/언어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계의 고유한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존재론적 개념/언어가 있다는 주장으로부터 세계의 고유한 구조가 그 자체로 인간적 언어적 구조라는 주장도 따라 나오지 않고 세계의 고유한 구조가 그 자체로, 인간적이든 비인간적이든, 언어적 구조라는 주장도 따라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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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yhk9297 님과 유사하게 이 부분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사이더라면, 세계의 구조는 이미 '존재론적으로(ontologically)' 특정한 결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언어는 단순히 '인식론적으로(epistemologically)' 그 결을 발견해 낼 뿐이라고 주장하지 않을까요?

다만, 언어와 언어를 '인식론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이 세계의 구조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사이더도 여러 가지 존재론어들 중에서 가장 설명력이 큰 언어를 하나 뽑아낸 다음 "이 존재론어가 이렇게나 뛰어날 수 있는 것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해요. 하지만 특정한 존재론어가 (다른 존재론어를 더욱 잘 환원하든지, 우리의 일상적이거나 논리적 직관에 원활하게 부합하든지, 존재물을 덜 상정한다는 점에서 단순하든지 등) 훌륭한 언어라는 사실이 그 언어가 실재에 대해 진리를 말해준다는 사실과 과연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따져볼 수는 있겠죠.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넘어가는 것이 논리적 비약은 아닐지, 혹은 비약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국 존재론은 인식론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 말이에요.)

물론, 이 점에서도 사이더 같은 인물들은 콰인의 존재론적 개입 기준을 들고 와서 "특정한 언어 L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언어를 참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물이 존재한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거예요. 그렇지만 양화사 변이 이론가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한 언어에서 존재물로 상정되는 것들이 다른 언어에서 존재물로 상정되는 것들로도 얼마든지 번역될 수 있다면, 우리가 한 언어를 훌륭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언어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 두 언어 사이에서 무엇이 더 우월한 언어인지 따지는 것은 '말 뿐인 논쟁(verbal dispute)'이 되고 말겠죠. 또 특정한 사안 M1에서 뛰어난 언어가 다른 사안 M2에서 역시 반드시 뛰어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말이에요. M1에서는 언어 L1이 L2보다 훌륭할 수 있어도, M2에서는 L2가 L1보다 훌륭할 수 있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니까 말이에요.

그렇다면, 결국 여러 가지 '다원적인 존재론어'를 인정할 수 있게 되고, 다원적인 '세계의 구조' 혹은 '실재의 구조'를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해요. 그리고 이러한 논의 구도에서는 결국 우리가 인식론적으로 어떠한 '존재론어'를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존재론적으로 어떠한 '실재의 구조'를 인정할 것인지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언어와 분리된 채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실재'를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요. 그러니까, (a) 인식론에서 존재론으로 곧바로 넘어가려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뿐더러, (b) 만약 콰인의 존재론적 개입 기준에 의존해서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한다면, 결국 세계의 구조나 실재의 구조 같은 '존재'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나 '개념'에 의존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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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우리의 혼란은

가 애매하다는 데에서 나옵니다. 제 생각에는 적어도 두 해석이 가능합니다.

  • 오류가능론으로서 형이상학적 실재론 (MRF): 세계의 구조에 대해 인간의 사유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 형언불가능성 논제로서 형이상학적 실재론 (MRE): 인간의 사유 방식으로써 형언 불가능한 실재의 요소가 있다.

MRF는 존재론적 실재론과 전적으로 양립 가능하며, 또한 외견상으로도 합리적입니다. 한편 MRE는 @Herb 님의 논증을 따라 (사실, ‘존재론어의 exhaustivity’에 관한 논제가 추가되어야 할 텐데요) 존재론적 실재론과 충돌을 일으키는 듯 보입니다. 이 점은 제가 이해하기로 퍼트남이나 데이빗슨, 굿맨같은 세기말 반실재론자들이 말하려 한 요지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쉽게, MRE를 버리고 MRF를 택하면 그만일 텐데요, 여기에서 웃긴 결과가 생깁니다. MRF는 이른바 반실재론자들 역시 받아들이는 관점이거든요. 나아가 사실상 그 어떤 철학자도, 헤겔조차도 MRF에는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래서 형이상학적 실재론 ‘논쟁’이라 일컬어졌던, 일련의 수상한 담론들의 수명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목할 것은, 존재론적 실재론 논쟁은 여전히 의미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가 언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지, 그리고 단일한 구조만을 갖는지 따위는 MRE를 버리고 MRF를 택하자는 합의 속에서도 종결되지 않는 물음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 메타존재론은 나름 방향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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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전히 다소 애매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MRF라고 표현하신 "세계의 구조에 대해 인간의 사유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라는 논제를

  • 과학적 실재의 독립성: 세계의 과학적 구조에 대해 인간의 사유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 형이상학적 실재의 독립성: 세계의 형이상학적 구조에 대해 인간의 사유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라고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반실재론자들은 '과학적 실재의 독립성'에 동의하는 것이지 '형이상학적 실재의 독립성'에 동의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인간이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실재'나 '구조'가 형이상학자들이 찾으려고 한 자연세계 뒤편의 비감각적이거나 초감각적인 무엇인가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형이상학에 대해 비판적인 철학자들이 취하는 태도가 아닌가 해서요. 물론, '과학'과 '형이상학'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퍼트남이나 데이비슨 같은 인물들이 전통적 의미의 형이상학자들이 추구해 온 '보편자'나 '실체-속성 구조' 같은 것들을 세계의 구조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반실재론 진영을 옹호하거나 그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형이상학적 실재의 독립성'을 상정하는 메타형이상학의 논의가 여전히 불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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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yhk9297 님과 @mimmum 님, 그리고 @Youn 님의 첫번째 문단은 비슷한 지적을 해주신 걸로 이해됩니다.

언어적 관념론은 워낙 다양한 함의가 있는 umbrella term이다 보니 구체적으로 정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대강 “세계가 언어적으로 구조되어 있다” 정도의 주장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는 세계가 중국어나 영어, 한자나 알파벳 따위로 이루어져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세계의 구조와 언어의 구조 사이의 구조적 동형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념주의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맥도웰의 개념주의를 빌려와도 좋습니다. 이에 따르면 세계의 구조는 이미 space of reasons의 경계 내부에 있고, 이 space of reasons “외부”에 별도의 형이상학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제 의문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방금 설명한 의미에서의 언어적 관념론자 내지 개념주의자는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존재론적 실재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즉 세계 고유의 구조가 있고, 이 고유의 구조를 “carve at the joints”할 수 있는 존재론어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바로 세계의 근원적 구조가 언어 혹은 개념성의 근원적 구조와 동형적이라고 주장하니깐요.

그렇다면 “존재론적 실재론 + 형이상학적 실재론”의 조합은 언어적 관념론자/개념론자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할 수 있나요? @yhk9297 님의 말씀처럼

세계는 이미 그 자체로 재단이 돼 있으며 (=형이상학적 실재론) 단지 이것이 존재론어의 언어적 구조와 사후적으로 일치하는 것 뿐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언어적 관념론자/개념론자는 “세계가 그 자체로 재단되어 있는 그 구조가 언어적인가 아닌가?”를 다시 한 번 물어 볼 수 있고,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지지하기 위해서는 “아니오”라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 특정 존재론어의 “언어적 구조”가, 세계 그 자체의 “비-언어적 구조”를 carve at the joints 한다는 말이 저에게는 그저 말 뿐으로 느껴집니다. (이 비-언어적 구조와 언어적 구조의 간극을, @Youn 님은 존재론적/인식론적 간극을 통해 지적하셨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제 핵심은 존재론적 실재론을 주장하기 위해,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불필요할 뿐더러 비정합적이라는 아이디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는 포인트가 약간 다른데요. 저는 존재론적 다원주의자들의 경우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내세우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의심스러운 테제지만) 가능한 조합이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존재론어의 구조와 세계 고유의 존재론적 구조 사이의 간극을 0으로 수렴시키는 강한 존재론적 실재론자일수록, 저는 형이상학적 실재론과는 정합적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 점에서 @car_nap 님의 답변이 흥미롭네요. MRF를 따른다면 “형이상학적 실재론”을 지지한다는 선언이 공허해지고, MRE를 따른다면 존재론적 실재론과 형이상학적 실재론의 조합은 비정합적이게 된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저는 존재론적 실재론을 둘러싼 메타존재론의 논쟁을 문제삼을 의도도,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소박하게, 왜 존재론적 실재론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의심스러운 “형이상학적 실재론”와 결합시키는지 이것이 의아할 뿐입니다. 물론 많은 현대 분석철학자들이 그렇듯 관념론이나 상대주의의 혐의를 피하기 위한 라벨링일 수도 있겠죠. 저는 존재론적 실재론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들의 입장이 형이상학적 실재론보다는 (위에서 설명한) 언어적 관념론 내지 개념주의와 더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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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께서 말씀해주신 좋은 지점에 덧붙여보자면,

저도 @car_nap 님의 말씀대로 본 논증이 성공하기 위해선 "독립성" 개념이 MRE로 해석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MRE에 의거할 경우에만

라는 점이 도출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언어 독립성"을 좀 다른, 어쩌면 더 소박한 방식인 '형이상학적 비의존성'으로 이해할 것 같습니다. 요컨대 단순한 방식인 양상적 수반 개념을 활용할 경우,

(수반) '인류 언어 활동이 고정되면, 세계의 구조도 고정된다'

에 대한 거부를 곧 독립성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반)에 대한 거부는 MRE를 함축하지 않으므로 위 논변을 피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MRE와 무관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고려시,

이유는

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라 봅니다. 상기한 의미에서 우리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실재가 있어야만 어느 언어가 "고유한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지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할수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그런 기준에 회의적일 경우,

라는 강력한 도전을 바로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양화사 변동론 등으로 귀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상기한 바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적 실재론은 존재론적 실재론자에게 있어 (최소한) 긴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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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dpr.nd.edu/reviews/idealism-and-the-harmony-of-thought-and-reality/

MRE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관념론을 옹호하는 저작을 Thomas Hofweber가 2023년에 출판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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