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테세우스의 배와 심신미약 판결의 공통점

안녕하세요, 새로운 글을 썼습니다.
좋은 글이 아니더라도 일단 쓰여졌으면 읽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귀한 곳에 누추한 글을 들고 홍보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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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독창적인 글이네요! 아마도 (a) '악무한'과 '진무한'의 차이에 대한 헤겔의 논의와 (b) '예외화' 혹은 '포함하는 배제'에 대한 슈미트나 벤야민 등의 논의 사이에 어떠한 연속성이 있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쓰신 글에서는 슈미트나 벤야민 대신에 푸코가 등장하긴 하지만요.) 서로 대립되거나 단절되어 있다고 흔히 여겨지는 '유한/무한', '신/인간', '안/밖', '정상/병리' 같은 구분들이, 실제로는 한쪽이 다른 쪽을 배제함으로써 다시 포함하는 형태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논의 말이에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진무한'에 대한 헤겔의 논의나 '예외화'에 대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논의가 모두 이분법적 구분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두 가지 논의가 논리 구조상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어요. 저는 헤겔의 논의가 형식논리학적으로 따지자면 일종의 '귀류법'(P → Q & ~Q / 따라서 ~P)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예외화'에 대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논의는 칼 포퍼의 반증주의가 '후건부정식'을 통해 기존 이론이 반증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P → Q / ~Q / 따라서 ~P)과 유사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요. 한쪽에서는 주어진 개념에서 모순을 이끌어 내어 그 개념을 지양하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주어진 이론에 대한 반례 혹은 예외를 발견해서 그 이론을 무너뜨리려 하는 모습이 있으니까요. (그냥 잠정적으로 제가 그 두 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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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헤겔의 변증법을 귀류법과 가까운 논리 전개 방식으로 읽는 한(그리고 실제로도 꽤 많은 연구자들이 그러한 독법을 보여주는데), 이론의 여지 없이 YOUN 선생님께서 짚어주신 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형식논리학적 맥락에서는 제가 반론을 제기할만한 구석은 없는 것 같네요!ㅋㅋ
다만 제가 형식논리학적으로 읽지 않을 때 오히려 헤겔 변증법의 강점이 살아난다고 믿고 읽으려는 편이라(사실 제 생각이 아니라 헤겔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a) '악무한'과 '진무한'의 논의와 (b) '예외화' 혹은 '포함하는 배제'의 논의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차라리 (a)를 귀류법으로부터 구별하고, (b)를 후건부정식으로부터 구별해서, (a)와 (b)를 교묘하게 뒤섞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예컨대 존재와 무, 혹은 무한과 유한의 변증법에 대한 헤겔의 구절들을 살펴보면, '존재' 범주의 규정성을 유지하려는 모든 시도 자체가 실상 '무' 범주의 규정성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존재'는 동시에 '무'라는 것이지, '존재' 범주 내부에서 서로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두 가지 규정이 발생하기에 우리는 새로운 범주인 '생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사실 이런 부연도 필요 없고, 철학에서 관건인 것은 언제나 텍스트의 교조주의적 해석이 아니라 창조적인 재독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YOUN 선생님께서 짚어주신 점도 잘 곱씹어서 다음에는 이를 포괄하는 흥미로운 논지를 전개할 수 있도록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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