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스크루턴이 별세했을 때

로저 스크루턴이 별세했을 때 친인들끼리의 카톡방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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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이슬람혐오를 "프로파간다 어휘"라고, "부다페스트 인텔리겐차의 상당수는 유대인이며 소로스 제국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네트워크들의 일부를 형성한다"라고, 데이트 강간이란 "범죄는 없다. 성회롱은 매력적이지 못한 이들이 행하는 성적 접근(advances)일 뿐이다"라고, "레즈비언들은 남자들에게서 더는 얻을 수 없는 헌신적 사랑을 동성에게서 찾으려는 이들"이라고, "중국인 개개인은 옆 중국인의 레플리카이며 그것은 매우 소름끼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일으켜 영국 보수당 정부의 Building Better, Building Beautiful Commission 의 무급 의장직에서 사임당했다가 여차저차해서 그를 공격한 언론매체들 및 그를 사임시킨 제임스 브로큰셔 주택·지역사회·지방행정부 장관으로부터 사과를 받기도 하고 오페라와 와인의 전문가이기도 하고 건축과 음악에 대한 미학 저술들로 유명하고 사진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일본 담배회사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흡연의 자유를 옹호하는 글들을 쓰다가 발각되어 영국에서 콘설턴트로 돈버는 길이 (거의) 막히고 여우 사냥을 금지하는 새 법령이 선포되자 영구이주할 생각으로 한 때 미국에 건너가 살기도 했던 영국의 간판 보수주의 철학자이자 공적 지식인인 로저 스크루턴이 몇일 전 6개월 동안의 암투병 끝에 별세했네요. 마지막에 "죽음이 가까워오면 우리는 삶이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감사(의 마음)이다 Coming close to death you begin to know what life means, and what it means is gratitude"라고 말했다고 해요. 사과를 받은 이유는 그가 한 말을 맥락에서 떼어내 오해되기 쉬운 형태로 퍼뜨렸고 오해 때문에 사임시켰다는 것인데, 저런 말을 한것 자체는 사실이라면 과연 어떤 맥락이 저런 말들의 진의를 달리 해석할 수 있게 할지 의심스럽네요. 다만 여러 모로 저와 완전 반대편에 있는 양반임에도 저는 이 양반을 혐오까지 하지는 않고 일정하게는 좋아하기까지 해요. 무엇보다 이 양반이 쓴 조그만 칸트 입문서와 근대철학소사라는 책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 양반의 어떤 생각들이 생각을 자극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들뢰즈쪽 식자로 유명한 김재인 선생이 이 양반의 책을 번역한 것만 봐도 - 들뢰즈와 스크루턴은 상극이죠 - 이 양반의 생각들이 좌파 식자들한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죠. 동시대 사회에서 보수주의(자)의 자기의식이 궁금한 분들은 이 양반 책 한 두권 정도 읽어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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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턴이 생전에 정제되지 않은 강한 발언들을 다수 쏟아냈나 보네요. 그가 쓴 학술적인 글들에서는 저 정도 이야기들은 보이지 않았는데 의외입니다. 저도 저런 발언들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고,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스크루턴의 강한 반감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최근 서구권에서 일어나는 PC주의 논란들을 보면 좀 양면적인 생각도 들어요. 현실의 PC주의 운동이 반드시 학술장의 엄격하고 정제된 논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중에서는 실제로 과격하고 폭력적인 운동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주디스 버틀러와 트렌스젠더 혐오 페미니스트들이 한 판 싸웠던 것이 학술장과 대중 운동의 간극을 보여주는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해요.) 스크루턴도 그런 맥락에서 과격하고 폭력적인 형태의 대중 운동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적어도 『우리를 속인 세기의 철학가들』(Fools, Frauds and Firebrands: Thinkers of the New Left)처럼 꽤나 직설적인 형태의 글들에서조차, 스크루턴이 자기 반대편 진영의 학자들을 꽤 성실하게 독해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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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보통 트랜스젠더를 혐오한다는 의미로 '트랜스 배제적 급진 페미니스트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라 불리는 페미니스트들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들 자신이 애호하는 명칭은 '젠더 비판적 페미니스트 Gender-Critical Feminist'입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도) 주디스 버틀러류 보다 인기가 없는지 캐슬린 스톡(Kathleen Stock), 홀리 로포드-스미스(Holly Lawford-Smith) 등의, 젠더 비판적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저작들이 아직 국역출간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알렉스 번(Alex Byrne)의 중요한 관련 저작은 국역출간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PC주의 운동은 확실히 학술장의 엄격하고 정제된 논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는, 학술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PC주의 운동은 매우 폭력적이고 독선적입니다. 생각이 다른 이들과 정면적인 학술적 대결을 벌이지도 않을 뿐더러 (예를 들어, 주디스 버틀러는 최근 국역 출간된 <누가 젠더를 두려워 하랴>에서 <가디언>에 실린 스톡의 글 하나와 로포드-스미스의 웹사이트에 있는 YouTube 강연 텍스트만을 상대합니다) 학계를 비롯한 공론장에서 그들을 아예 추방하려고 애씁니다(소위 '취소문화'). 캐슬린 스톡도 상해 위협을 포함한 각종 시달림을 당해 결국은 에섹스 대학교 철학 교수직을 그만 두었습니다.

이런 비현실적 극단은 반드시 역풍을 맞게 됩니다. PC주의 운동의 선도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에서 PC주의 운동은 정점을 지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치하의 미국에서는 역풍이 너무 심해서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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