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탐구』 §426, 그리고 칸트와 니체?

  1. 의미를 분명하게 확정하는 듯이 보이는 어떤 그림이 우리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 그림이 우리 앞에 그려 보이는 것과 비교하면, 실제의 쓰임은 더럽혀진 어떤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다시 집합론에서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 표현 방식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어떤 신(神)을 위해 맞춰진 듯이 보인다. 그 신은 무한 수열 전체를 보며, 사람의 의식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표현 형식들은, 우리가 입을 수는 있지만 입은 채로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 예복(禮服)과도 같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런 옷차림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할 실질적인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들을 실제로 사용할 때, 우리는 말하자면 우회해서 골목길을 타고 간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곧게 뻗은 대로를 보지만, 물론 그 길을 이용할 수는 없다. 그 길은 영원히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우상의 황혼』에서 "어떻게 참된 세계가 우화가 되었는가"라는 제목 아래서 '오류의 역사'를 추적한 니체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의 이성주의 또는 초월적 실재론자들을 공격하는 칸트입니다. 사실 칸트의 비판적 작업은 너무나 중요하고 동시에 근본적이어서, 다른 학자들을 설명하는 데에도 칸트와 계속 연관되어지곤 하잖아요. 예를 들면, R. Kevin Hill의 Nietzsche's Critiques 같은 책을 보면 심지어 칸트의 적대자였던 니체에게서도 약간의 칸트적인 비판 프로젝트를 발견하기도 하니까요. 저는 위의 구절이 '신적 관점에서' 실재를 파악하려고 또는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들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즉 우리의 일상적 쓰임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니체의 비판과 닮아 있다고 보았고, 또 그런 관점의 한계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칸트의 그것과 닮아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을 단순히 칸트주의적 철학자로 규정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에는 약간 의문이 있습니다. 칸트는 비판자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인식론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에요.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류의 철학적 작업에 대한 거부 말고도) 이런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에 관한 생각에 다소 회의적인 것 같거든요. 특히 §374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커다란 어려움은, 마치 우리가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이 문제를 묘사하지 않는 것이다. 즉 마치 실제로 어떤 대상이 있고 내가 그로부터 기술(記述)을 이끌어내지만, 누구에게도 그 대상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듯이 묘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제안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이 그림을 사용하려는 유혹에 굴복하더라도 그때 그 그림의 적용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탐구하라는 것이다."

즉,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접근에 어떤 인식론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것의 오도된 사용과 오해들에 대한 치료(Therapy)를 원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119 등에서 말하는 "언어의 한계"를 칸트적 의미가 아니라 '쓰임의 한계'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를 밝혀내고자 했지만, 이 한계를 탐구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그에 따라 이 한계가 의미하는 것도 의미론적이고 인식론적인 한게에서 쓰임과 관련되고 헛소리의 구분과 관련된 한계로 바뀌었다고 말이에요. "한 문장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의미 없음이 그것의 의미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낱말들의 한 조합이 그 언어로부터 배제되며,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500).

결국 저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비판적 작업이 칸트보다는 니체에 가깝다는 생각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니체의 여러 측면들과는 대응하지 않지만, 철학을 일종의 의사의 치료법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다고 보거든요. 가령 니체는 『즐거운 학문』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전히 단어의 예외적인 의미에서 철학적인 의사를 고대하고 있다. 민족, 시대, 인종, 인류의 총체적인 건강의 문제를 진단하고, 내가 제기한 의혹을 끝까지 추구하며 모든 철학이 지금까지 다루어온 것은 '진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즉 건강, 미래, 성장, 권력, 삶 등이라는 명제에 과감하게 천착하는 그런 의사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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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의 관련성은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저도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과연 칸트처럼 특정한 ‘한계‘를 설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위에 쓰신 내용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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