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서평인 글이다.
Christoph Schuringa, A Social History of Analytic Philosophy (2025)
에 대해서 분석철학의 사회사와 분석철학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적 접근으로는 많이 부족하지만 분석철학에 대한 지성사로는 분석철학이 흔히 마주치는 적대감과 이해 부족을 완화시키는 데 요구되는 노력의 귀감이 될 정도로 훌륭하다고 평하고 있다. 그러니까 세심한 마르크스적 해석학은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적 열정은 왕성하고 분석철학은 잘 알지만 혐오하는 인간이 쓴, 의도와는 정 반대 방향으로 성공한 책이라는 것인데, 잘 새겨듣고 다음 번에는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철학 비판서를 썼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 자신도 인정하는 대로, 분석철학이 방법들과 교리들에서 통일성이 부족하다면 하나의 전체로서의 분석철학을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한 과제일 것이다. 마르크스적 통찰들과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영향력 있는 '특정' 분석철학적 저작들과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대결하려는 시도가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이 글에서 동의가 가장 잘 되는 대목은 일반 대중만은 아닌 분석철학 외부의 많은 이들에게 분석철학이 요점이 없어 보이게 된 책임의 일부는 분석철학자들 자신에게도 있다는 대목이다. 대륙철학도 (논변의 자유분방함과 축약되고 응축되고 비약적인 성격 면에서 특히)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뭔가 크고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온전히 감식될수는 없어도 문학 스타일적 매력도 행사하는 반면 분석철학은 흔히 "도대체 이 얘기를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하는, 우리의 삶과 관련된 이유가 무엇인가, 어느쪽 주장이 맞고 틀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바뀌기라도 하나, 사회나 중요한 사회제도들이 개혁되어야 할 당위성이 생기기라도 하나?"라는 의문을 대뜸 야기한다. 나같이 마르크스적 사고에 물든 이들에게는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으로 사고한다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게 하는 논변을 펼치기도 한다. 즉, "내 이 논문, 내 이 책의 실천적 유의미성 또는 우리의 모두의 삶과 관련된 유의미성이 무엇인지"에도 초점을 맞추어 쓰려는 노력이 특히나 분석철학자들에게 요구된다.
"피가 돌지 않는 세심함" (팀 크레인)
팀 크레인은 비엔나 중앙유럽대학교의 철학과 교수이자 부총장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나이트브리지 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마음의 요소들>, <기계적 마음>, <믿음의 의미>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2025년 10월 16일 | 아이디어 레터
철학의 학문적 연구는 안팎에서 경멸을 산다. 2010년에 스티븐 호킹이 한 “철학은 죽었다”는 선언도 과학자들 그리고 다른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견해의 한 버전이다. 대학 외부의 공적 논의에서, 학자들과 그들의 상아탑들에 대한 폄하적 발언은 흔하지만, 내 경험상 철학은 유독 더 강한 비판을 받는다. 학계에 몸담고 있는 철학자로서, 나는 종종 묻는다: 왜 철학을 지목하는가?
그 답의 일부는 철학이 진짜로 하고 있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누구나 삶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진리와 지식과 정의에 관한 큰 물음들에 관심을 가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 그리고 확실히 그것들은 철학이 다뤄야 할 물음들이다. 그러나 현실의 학문적 철학은 대중은 접근할 수 없고 다른 학계 철학자들만 관심을 갖는 난해하거나 사소한 물음들만을 다루는 듯하다. 이런 식으로 철학은 본래의 철학적 충동의 요점을 놓친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다른 신비스러운 학술 연구보다 훨씬 더 요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관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년 전 존 키츠가 "모든 매력은 차가운 철학의 손길에 날아가지 않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비슷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는 깊이, 조명, 교화 등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흔한 것들의 따분한 카탈로그".
이 비판은 특히 분석철학이라고 불리는 학파에 자주 제기되는데, 분석철학은 현재 영어권과 일부 유럽에서 대학 철학을 장악하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돼 유럽의 여러 전통들과 영향들을 섞어 미국 및 영어권 다른 나라로 퍼졌다. 그것은 철학과 과학, "상식적" 믿음들 간의 연계를 강조한다. 인식론에서는 대체로 경험주의(지식은 주로 감각적 증거로 정당화되고 철학은 자연과학과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를 따르고, 윤리학에서는 결과주의(행동은 그것의 결과만으로 평가된다는 견해)를 둘러싼 논쟁이 지배적이며, 정치철학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배적이다. 그것은 실재의 본성과 그것 속에서의 우리의 자리에 관한 일상적 관념들을 옹호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만, 칸트나 헤겔식의 난해한 총체 이론들을 구축하려 하진 않는다.
분석철학의 학문적 성공은 키츠의 불평의 많은 철학 내부 버전들을 불러왔다. 크리스토프 슈링가의 <분석철학의 사회사>(2025)가 대표적인데, 이 책에서도 표적을 기술하기 위해 "따분한"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옥스퍼드는 "따분함의 고향"이다). 이 책의 명시적인 목표는 분석철학 자체의 사회사를 통해 분석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적 "이데올로기 비판"을 전개하는 것이다. 슈링가는 자신이 (완벽한 구절로) 분석철학의 "피가 돌지 않는 세심함"이라고 부르는 것이 역사와 정치 위에 있는 철학으로서의 분석철학이라는 분석철학의 자기 이해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이 자기 이해는 그가 역사적 및 사회적 맥락이 고려되지 않은 소위 기술적 문제들에 대한 매우 보수적인 관심이라고 본 것을 초래했다.
슈링가의 책의 부제 “어떻게 정치가 비정치적 철학을 형성했는가”는 그의 전반적 메시지를 요약한다. 분석철학은 자신을 본질적으로 비정치적이며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고 내세운다. 사실 그것의 뿌리는 17~18세기 자유주의와 경험주의에 있는 것으로 쉽게 추적된다. 슈링가에게는, 이 뿌리를 식별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기획으로서의 분석철학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경험주의는 모든 지식이 감각에서 나온다는 견해이다; 자유주의는 주체의 자율성을 찬양한다. 둘을 합치면 17~18세기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된다. 이 계급의 부상은 자신을 글로벌 경제 논리로 부과하는 데 성공한 자본주의에 의해 추동되었는데, 그 성공은 유럽의 '신대륙' 식민 착취 덕분이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분석철학의 비엔나 조상인 논리적 실증주의를 "자유주의의 형식주의적 인식론의 비참한 후위작전일 뿐이며, 이 분야에서도 파시즘에 대한 공개적인 복종으로 변질된다"고 기술한 적이 있는데, 슈링가가 분석철학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의 초기 시도"라고 호의적으로 기술한 언급이다.
요컨대, 분석철학의 원죄는 그것이 아무런 역사적 또는 비판적 인식 없이 단순히 18세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들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들 그 자체가 해로울 뿐 아니라 — 슈링가는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이 복속 체제의 정당화라는 사실"에 대해 얘기한다 — 분석철학은 자신이 비정치적이고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정치적 관념들과 역사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니 더욱 경멸받아야 한다.
슈링가의 책은 그 야망과 우아한 스타일, 분석철학의 세부 사항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하지만 사회사나 이데올로기 비판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사회사는 주로 분석철학을 "인물 숭배"로 취급하고 대부분 남성이었던 영국과 유럽 분석철학의 주요 인물들의 특권적 배경을 지적하는 데 그친다. 이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 귀족 출신이었고, 러셀의 가장 뛰어난 제자였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으며, 20세기 중반의 주요 철학자인 A. J. 에이어, 마이클 더멧, J. L. 오스틴은 영국의 (공립이라고 불린) 주요 사립 학교들에서 교육받았다.
물론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이 대단히 영향력 있고 부유한 가정 출신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요 공립 학교들에 다녔다는 것은 분석철학자들을 당시의 다른 영국 학자들과 구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영국 대학들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문화에 의해 지배되었고, 당시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공립 학교 교육을 받은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며 분석철학의 역사적으로 특별한 점을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책에는 제도사에 관한 설명도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운동들이 분석철학의 어느 특정 관념들에 미친 영향에 관한 설명도 없다. 어떻게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시기 적대들에 분석철학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 슈링가는 그런 설명에 가장 가까이 간다. 그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이 주요 부분은 그가 분석철학의 중립주의라고 식별하는 것, 즉 철학은 일반적인 정치적 정향 없이 수행될 수 있고, 철학의 많은 영역은 전혀 정치적 관련성이 없다는 관념에 기반해 있다. 그의 논변의 개요는 반미 활동을 의심받던 철학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철학 개념으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분석철학자들뿐만 아니라 비분석 철학자들도 매카시즘의 영향을 받았다. 매카시즘이 결정적으로 차단한 것은 분석철학에 적절한 중립주의에 도전한 철학자들이었다."
슈링가는 1930년대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주로 미국으로 이주한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좌파 성향이 강했고,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 일부가 정치적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 그들이 매카시즘에 의해 침묵당했고, 사실상 자신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자신들의 철학이 중립적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그는 "[철학자들의] 중립성 항변의 진정성"을 옹호하는 이들을 "진정성은 이데올로기 비판에서 부수적인 관심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비상한 응답으로 비판한다.
달리 말해, 철학자들이 철학의 어떤 부분의 중립성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정당화하려하든, 그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여서는 안된다. 이 특정 사례에서, 중립성은 매카시 숙청을 피하기 위한 전술적 수법으로만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우연히든 의도적으로든) 비정치적 분석철학을 미국 대학에 심기 위한 전술적 조치로만 볼 수 있다.
물론 견해의 진정한 표현을 무시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비판의 표준적 부분이다("그는 그렇게 말하겠지, 그렇지 않겠어?"라는 식의 움직임). 이 기획은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설명이나 방어에서 실제로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행동을 하든 이데올로기들을 그 말이나 그 행동을 추동하는 것으로서 식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적 전제들은 슈링가의 책에서 방어되지 않는다 — 그것들은 그 자체로 좋은 것들이다; 그것들은 그것의 출발점들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것들로서, 그것들은 철학의 어떤 다른 출발점과도 마찬가지로 논쟁의 여지가 많다.
슈링가는 분석철학자들이 자신들의 견해들을 옹호하기 위해 "직관"에 호소하는 것을 조롱하는 것을 즐기며, 그들에게 반대해 몇 가지 훌륭한 지적을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루이스가 말했듯이, 직관들은 단지 의견들일 뿐이다 — 직관들인 의견들에서 출발하여 철학의 나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이 의미에서, 슈링가의 마르크스적 출발점들은 그 자신의 직관들이다.
이 출발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그 현상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매카시즘의 특별한 경우, 그들은 철학자들이 빨갱이 미끼를 던지는 깡패들이 자신들을 고발하게 할 어떤 행동도 피하는 동시에 좋은 이유들로 철학의 많은 영역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믿는 것이 완벽하게 일관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유들은 그들의 정치적 무활동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적일 수 있다.
슈링가의 접근 방식은 그가 이 해석의 여지를 보는 것을 차단하는데, 그가 철학의 일부가 실제로 비정치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그는 어디에서도 경험주의와 자유주의가 너무 깊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분석철학의 기원이 경험주의와 자유주의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분석철학을 비난하기에 충분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방어하지 않는다.
그의 견해는 경험주의와 자유주의와 같은 관념들의 지지 가능성을 간단한 질문들로 논의하는 것이 더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인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좌파의 일부 철학자들은 분석철학의 지배적인 자유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레이먼드 고이스는 분석적 자유주의가 핵심적인 정치 현상인 권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분석철학의 사회사>는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복속 체제의 정당화이다"와 같은 슬로건들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비판을 한쪽으로 치워두면, 슈링가의 책은 사회사라기보다는 지성사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다(최근 리뷰에서 키어란 세티야가 지적한 것처럼). 슈링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비엔나, 미국 등 매우 다른 전통이 "분석철학"이라는 명칭을 중심으로 어떻게 통합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외부에서 그 전통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분석철학이 자신에게 말하는 통상적인 휘그당원적 역사적 이야기 (즉, 그것이 길을 잃었던 철학적 전통에 상식적인 명료성과 과학에 대한 존중을 마침내 도입했다는 것) 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많은 창립 신화를 해체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최근 리뷰
분석철학의 자기 이해에 따르면, 분석철학은 수학적 논리 및 자연과학의 진보와 밀접하게 연관된, 다양한 방법들을 가진 통일되고 엄격한 분야이다. 분석철학은 그것의 방법들과 테크닉들의 엄격함과 미리 주어진 "문제들"의 "직관적" 특성을 통해 소위 대륙철학과 구분된다. 그리고, 중요한데, 그것은 아무런 역사적 인식도 없어도 성공적으로 추구될 수 있고 추구되어야 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과 그것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프린스턴의 철학자 길버트 하먼은 자신의 연구실 문에 "철학의 역사에 '아니오'라고 말하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었다.
분석철학에 대한 이 이해는 셀프 서비스이고 여러 면에서 부정확하며, 그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슈링가의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슈링가는 이전의 많은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분석철학이라는 제목 아래에 속하는 접근법들과 교리들의 집합에 본질적인 공통점이 없음을 보여준다. 한 통찰력 있는 에세이에서, <분석철학의 사회사>의 영웅 중 한 명인 조나단 레는 1950년대 옥스퍼드의 철학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철학 혁명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그 혁명이 무엇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동의할 수 없었다고 논평했다. 분석철학자라고 해서 모두 경험주의자도 아니고, 모두 유물론자도 아니며, 모두 과학주의자도 아니고, 모두 자유주의자도 아니다. 교리 측면에서 볼 때, 일부 분석철학자들은 다른 분석철학자나 칸트주의자 또는 헤겔주의자보다 대륙륙철학자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방법의 통일성이나 철학의 특정 영역의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도 없다. 어떤 이들은 "일상언어"의 뉘앙스들에 주목한 오스틴을 따랐고, 더멧은 분석철학이 보다 체계적인 언어철학을 자신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러셀은 철학은 "논리적 형식들"의 분석이라고 말했고, 다른 이들은 형식논리를 학문의 핵심으로 삼은 그를 따랐으며, W. V. O. 콰인은 "과학철학은 충분히 철학"이라는 선언으로 비엔나 서클을 따랐다. 그러나 이 견해들 모두는 자신들의 형성, 기질 및 직업적 지위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분석적인 철학자들에 의해 도전받았다. 단 하나의 분석[철학]적 방법도, 고유하게 분석[철학]적인 교리들도 없다.
슈링가가 지적했듯이, 일부 철학자들은 통일성의 이 결여에 분석철학이라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대응해 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철학 그 자체만 있을 뿐이며, 분석철학이 한 모든 것은 철학을 미리 주어진 문제들의 적절한 메뉴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실용주의 전통은 분석적이지 않았다. 후설의 현상학도 분석적이지 않았고, 유교나 불교도 분석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륙의 전통이 분석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륙철학과의 비교는 분석철학이 실제로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흔히들 대륙철학이 분석철학보다 훨씬 덜 통일적이라고 얘기한다 . 이 용어는 요즘에는 어쩌면 칸트로까지 거슬로 올라가고 포스트-칸트적 19세기 독일 사상 (특히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니체), 에드먼드 후설의 현상학과 그에 응답한 이들(제2차 세계대전 전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 그리고 프랑스의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장 폴 사르트르)부터 전후 프랑스 철학자들인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엠마누엘 레비나스, 미셸 푸코, 그리고 여기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다른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적 사유 전통들의 느슨한 집합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이 레이블은 또한 때때로 프랑크푸르트 학파 (테오도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또는 비판이론을 포함한다.
여기서 대륙철학자로 분류된 철학자 중 누구도 자신을 그런 식으로 기술하지 않았을 것이다. 포스트-칸트적 독일 철학, 현상학, 실존주의, 포스트-구조주의, 니체주의, 비판이론의 전통들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대륙철학 연구 프로그램도 없다. 오히려 "대륙적"이라는 레이블은 영미권 학문적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분석철학에 반대되는 철학으로 정의되는 이 전통들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한 제도적 또는 개인적 헌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다. "대륙철학"이라는 용어가 1838년에 제레미 벤담과 사무엘 테일러 콜러리지에 관한 한 쌍의 에세이들에서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처음 사용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밀은 경험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영국 사상가인 벤담과 대조적으로 콜러리지를 "대륙적 스타일"의 철학 패러다임으로 표현했다. "대륙적"이라는 레이블은 반대파를 지칭하는 용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슈링가가 지적했듯이 "분석적"도 마찬가지였다. 옥스퍼드의 관념론 철학자 R.G. 콜링우드는 "1933년에 '분석 철학'이라는 용어를 경멸적으로 사용하여 자신이 못마땅해 하는 철학자들을 한데 묶었는데, 이 표현이 인쇄물에 처음 등장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한다. 두 경우 모두, 그 레이블은 경멸받는 철학적 "타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도입되었다. 차이점은 분석철학자들이 이 용어를 빠르게 받아들였고,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북미 대학들의 인기 교과서들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석철학도 대륙철학도 뚜렷한 철학적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둘 사이에 구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실질적 구분이 철학적 구분인 것은 아니다. 동시대 철학에 익숙한 누구라도 각 전통의 주요 인물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없을 텐데, 그 전통들에 속한 이들은 그 용어들을 거부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교리나 방법이 아니라면 그 구분 뒤에 무엇이 놓여 있을까? 슈링가 자신은 대륙철학이라는 범주를 옹호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휴 폴리가 지적한 것처럼) 분석철학자들을 특정 인성 유형으로 식별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것은 그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인성 유형이다: 트집을 잘 잡고 현학적이고 자신들의 가정들에 무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안일한 자아상을 갖고 있고 "너무 영리"하다.
지적한 것처럼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불편부당하게 살펴보면,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진정한 구분은 심리적이지도 깊이 철학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그것은 교리에 의해 구성되지 않거나 심지어 스타일에 의해서조차도 구성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일련의 정전 텍스트들과 그것들을 읽는 방식들에 의해 구성되는 역사적 전통들의 두 느슨한 집합들의 구분이다. 칸트, 헤겔, 니체, 후설,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의 일부 텍스트들은 두 계열 모두에 속하지만 읽는 방식, 강조되는 부분, 그리고 무시되는 부분에 차이가 있다.
이 사고 방식에서 분석철학은 신자유주의의 하우스 철학이나 특정한 불쾌한 인성 유형이 선호하는 지적 운동이 아니라 우발적이고 역사적으로 구성된 일련의 텍스트들로, 그것들을 읽는 하나의 방식과 함께 나타난다. 이것은 슈링가의 마르크스적 접근 방식의 총체화하는 비전이 결여된, 그 전통에 대한 다소 디플레이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 사고방식만이 분석철학의 테마들과 교리들상의 통일성 부족을 설명할 수 있는 동시에 어떻게 그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묶여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분석철학은 일반 문화와 학계의 다른 부분들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영미권 및 기타 주요 대학들의 철학과들을 지배한다. 대륙철학은 인문학 및 사회과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미셸 푸코는 구글 스칼라 전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학자이다. 하지만 분석철학은 철학과들 내에서 제도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에서 경험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의 배경 문화가 그 전통들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대로의 분석철학이 된 것에 녹아드는 것을 쉽게 했다는 슈링가의 주장은 전적으로 맞다. 하지만 분석철학의 제도적 성공에 대한 나머지 설명은 철학적이기보다는 대체로 역사적이어야 한다.
특히 분석철학의 우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학들이 전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된 것과 분석철학의 방법들이 매우 적합했던 특정 종류의 학문적 전문성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개별적으로든 팀의 일원으로든 가정들의 받아들여진 틀 안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로서의 학자의 이미지는 현대 대학 개념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석철학의 많은 부분에 매우 잘 어울린다.
분석철학의 다른 우발적 특징들도 그것의 제도적 성공에 기여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분석철학은 주로 영어권 저널들과 컨퍼런스들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원어민에게 부인할 수 없는 이점을 제공하며, 역사적 연구와 달리 다른 언어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필요하지 않다. 또한 논리학과의 역사적 및 교육적 연관성은 분석철학이 자신을 수학 및 컴퓨터 과학과 같은 학문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을 허용했다(물론 한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연관되어 있었다).
이 제도적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역설은 분석철학이 대학에서 지배적이 될수록, 철학에 관심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사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는 것이다. (대륙철학의 관심사 대부분도 마찬가지로 동떨어져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이것은 나를 처음 제기했던 물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마주치는 적대감과 이해 부족을 진지하게 다루려면, [분석]철학자들은 먼저 자신들의 지적 규율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은 철학이 고유한 테크닉들과 높은 기준들을 가진 전문적 주제라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어떻게 이런 의미의 철학이 세상이 철학으로 여겨온 많은 다른 것들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내게는 슈링가의 책의 진정한 가치는 — 일단 우리가 그 책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사회사 부분을 괄호 속에 넣으면 — 그 책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진지하고 그럴듯한 시도를 한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분석철학의 소위 중립성에 대한 그의 논의, 그리고 필연성과 가능성 개념들 (및 그것들의 논리)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논의는 분석철학이 독자적인 사고방식을 발전시켜 온 방식을 진정으로 밝혀준다.
물론, 슈링가 자신은 이 사고방식을 싫어하지만 그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요점은 그가 이 중심적 테마들을 명확하게 식별하고 어떤 철학적 영향들이 그것들을 발생시키는지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책은 왜 분석철학이 특정 문제들과 질문들에 직면하고 다른 것들은 무시하는지, 즉 이 질문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우발적인 지적 상황들로 인해 그것들이 지배적인 질문들이 되었는지 이해하려는 진지한 시도이다.
분석철학자들이 자신들의 전통에 대해 보다 무사심적이고 덜 방어적인 방식으로 성찰한다면, 왜 다른 전통들의 철학자들이 그것을 그렇게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지, 그리고 왜 철학 외부인들이 그것을 그렇게 요점이 없다고 여기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은 철학적 질문들의 요점은 철학자들이 어떤 텍스트들을 읽고 있는지, 그 저자들이 어떤 텍스트들에 응답하고 있었는지, 그들의 스승들이 어떤 텍스트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지, 그리고 이 스승들이 그들에게 그 텍스트들을 어떻게 읽으라고 가르쳤는지를 알 때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질문들 배후의 지적, 제도적, 과학적, 종교적, 사회적 맥락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한다면, 분석철학자들은 두 가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분석철학이 진정한 철학을 구성하는 문제들의 메뉴에 대한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 그러나 또한 이것이 그것의 질문들이 진정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나 외부인들에게 왜 이 질문들이 중요한지 알려주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분석철학자들은 역사적 감각과 자신들이 "비전문가"라고 보는 이들에게 얘기하는 더 나은 방도 둘 모두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전문가들 또한 왜 [분석]철학이 오늘날 그것이 있는 곳에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소통에 이르지 못한 것은 많은 이들이 이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데 대한 책임의 일부는 분석철학자들에게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로잡는 특정 문제들의 중요성이나 흥미로움을 자신들의 비판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왔다. 그들이 먼저 자신들에게 이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