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적 인간> 제2장 '탈유폐의 기호' 정리

제2장 탈유폐의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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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탈유폐의 기호

노양진의 기호론은 기본적으로 **'경험의 유폐성(incarceratedness)'**라는 전제부터 출발한다. 이러저러한 설명들이야 많지만 그 개념은 다음 구절과 같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당연하다. **"아무리 낯익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의 지각, 의식, 기억, 상상, 의도, 욕구에 직접 접속할 수 없다."**1 이러한 "경험의 유폐성은 우리 경험의 본성과 관련된, 경험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또 반박해야 할 이유도 없는 '기초사실'(basic fact)의 하나다."2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유폐성이 '자족성'(aseity)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3 인간은, 아니 더 나아가 모든 유기체는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기체는 자신의 경험 안에 유폐되어 있으면서도 생존을 위해 그 유폐성을 벗어나야만 하는 역설적 구조 안에 있다."**4

이러한 유폐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유기체들의 발버둥이 기호적 통로다. 이는 곧 기호적 해석의 대상, **'기표'(signifier)'**가 된다. 자신의 경험을 타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다름아닌 제3의 매개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우리를 포함한 모든 유기체들은 타자의 마음 속에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유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양진은 **'기호적 사상'(symbolic mapping)**을 통해 타자의 느낌이나 감각을 그의 몸짓이나 표정, 소리 등을 통해 매개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전 장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기호적 사상'은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G. Lakoff and M. Johnson)의 '은유'(metaphor)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 경험주의의 환상

그런데 이번 제2장에서는 위 내용 이상으로 딱히 대단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 같진 않다. 이후로는 위 내용이나 주장이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껏해야 철학사를 제대로 숙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는 부분이 있긴 했다. 18세기 흄의 경험주의와 20세기 초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과의 비교를 통해서 경험주의의 환상을 강조한 부분이 그러하다. 논리실증주의의 '감각자료'(sense-data)는 거칠게 봐서 흄의 '인상'(impression) 개념을 대신했을 뿐이다. 18세기를 살아간 흄은 경험 세계를 해명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인 '자아', '실체', '인과성' 등에 대응하는 인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에 20세기 초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감각자료 자체는 객관적이며, 따라서 경험의 객관성을 지탱하는 축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논리실증주의의 이러한 소박한 가정은 1960년대에 들어 안팎에서 가속되는 비판 속에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5

물론 이것들은 "기껏해야"라고 붙일 만큼 사소한 내용이 아니긴 하다. 단지 이번 장의 중심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오히려 일종의 **'철학사적 망각'**이 얼마나 자주 혹은 심각하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좋은 반성과 자각의 기회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데닛의 저서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에 쓰인 다음 구절을 참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왜 철학자들이 철학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데 공을 들이느냐고 곧잘 묻는다. 화학자들은 화학사를 띄엄띄엄 배울 뿐이고,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은 1950년경 이전의 생물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철학사의 상당 부분은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아주 솔깃한 실수를 저지른 역사이며 그 역사를 모르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학생들에게 철학사를 가르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철학에 콧방귀 뀌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철학과 무관한 과학, 즉 근본적인 철학적 가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연구되는 생짜 과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6

  • 전반적인 내용과 관련해서 예전에 장-뤽 낭시의 <코르푸스> 내용 정리를 해둔 다음 포스팅을 참고하셔도 더욱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해서 공유합니다.
    바람처럼 : 네이버 블로그

1 <기호적 인간>, 노양진, 서광사, 2021, p.37

2 <기호적 인간>, 노양진, 서광사, 2021, p.37

3 <기호적 인간>, 노양진, 서광사, 2021, p.37

4 <기호적 인간>, 노양진, 서광사, 2021, p.38

5 <기호적 인간>, 노양진, 서광사, 2021, p.41

6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대니얼 데닛, 노승영 옮김, 동아시아, 2015,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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