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자경의 <칸트철학에의 초대>를 읽고 있는데 범주 파트를 읽다가 의문이 생겨서 질문드립니다.
칸트에 따르면 판단의 논리적 형식은 이미 특정 개념들을 전제하 고 있으며, 그 개념들은 다시 인간의 통합적 의식인 통각의 객관적 통일성에 근거하고 있다. 판단의 논리적 형식에 이미 전제된 개념 을 칸트는 '범주'(Kategorie)라고 한다. 범주는 오성의 논리적 판단 형식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논리적 개념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판단 형식을 가능하게 하는 범주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모든 x는 y이다라는 전칭판단의 형식으로 판단할 수 있기 위해 서는 x에 속하는 각각의 것들을 '모든' 또는 '전체'로 묶어서 사유 할 수 있어야 한다. 각각의 x들을 합함으로써 비로소 '전체 라는 개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각각의 x를 하나로 합할 수 있기 위해, 그래서 전체를 지칭하는 전칭판단이 가능할 수 있기 위해, 이미
'전체성'의 개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성'이라는 개념은 논리적으로 전칭판단 자체가 가능하기 위해 이미 경험에 앞서서 전제되어야 하는 개념, 즉 선험적 개념이다. 이처럼 논리적 판단 형식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개념이 바로 범주이다.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지각되는 대상에 대해서도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안에 하나'라는 단일성의 범주 가 있기 때문이며, 서로 구분되는 두 경험 내용을 인과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우리 자신 안에 이미 '인과성'의 범주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12가지 판단형식에 대해 각 판단형식 을 가능하게 하는 각각의 개념이 곧 범주이다. 이렇게 해서 칸트는 논리적 판단형식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서 작용하는 선험적 개념들을 12개의 범주로 제시한다.
p.50-51
제가 읽으면서 의문이 든 건 볼드 처리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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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저 범주란 게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하니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자꾸 본유 관념처럼 범주를 우리가 갖고 태어났다는 건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게임 캐릭터가 어떤 기본 스킬을 갖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범주를 갖고 있다는 건가? 이런 의문이 드는데요. 저기서 범주가 우리 안에 있다는 건 어떻게 이해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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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렇게 보면 칸트의 범주 개념은 순환 논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칸트 는 흄이 언급한 인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거 아닌가요?
"우리가 인과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 흄 "경험적으로는 파악 못 한다" 칸트 : "우리 안에 인과성이란 범주가 이미 있다"
이렇게 대답하면 증명되지 않은 개념을 그냥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지 않나요?
- "통각의 객관적 통일성"이란 말을 칸트 공부하면서 처음 보는데 의미가 잡히질 않습니다. 칸트 철학에서 중요한 단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