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 비판을 공부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이 있을까요?

이번에 학부 졸업 논문을 '판단력 비판으로 해석한 현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드러난 숭고'라는 주제로 잡았는데요. 제가 판단력 비판 전문을 읽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저 주제도 세부 사항을 다 계획했다기보단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정도에서 정한 거였거든요. 또 순수이성비판에는 형이상학 서설이 있고, 실천이성비판에는 윤리형이상학 정초가 있는데 판단력 비판은 저런 책(칸트가 비판서의 내용을 그나마 쉽게 써준)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래서 졸업 논문을 쓸 때 참고할만한 2차 문헌이나 연구서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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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책은 제가 아는 한 판단력비판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입니다:

  1. Wenzel, Christian Helmut: An Introduction to Kant’s Aesthetics: Core Concepts and Problems. Oxford: Blackwell Pub 2005.

좀 더 심화된, 전공자용 연구서로는 다음의 양대산맥이 있는데 학부수준에서는 약간 헤비할 것 같습니다.

  1. Allison, Henry E: Kant’s Theory of Taste: A Reading of the Critique of Aesthetic Judgmen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2. Guyer, Paul: Kant and the Claims of Taste. 2. Aufl.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칸트가 판단력비판을 쉽게 쓴 판본은 아쉽게도 없습니다. 전비판기 시절 1764년에 <아름다움과 숭고의 감정에 관한 고찰> (Beobachtungen über das Gefühl des Schönen und Erhabenen) 이라는 글을 쓰긴 했지만, 이 시절의 칸트는 영국경험론의 영향을 받았던 시절이라 판단력비판에서의 주장이랑 동일시할 수가 없습니다. 1798년에 출간된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이 약간의 미학적 논의를 포함하고 있기는 한데, 이 책의 주제는 말 그대로 "인간학"이다 보니 선험철학 3비판서 중의 하나인 판단력비판과의 비교에서 역시 신중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숭고"라는 테마는 20세기 미학과 (특히) 현대미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보니 이쪽의 논의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으로는 다음이 있습니다.

  1. Lyotard, Jean-Francois (1985). The Sublime and The Avant Garde. Paragraph 6 (1):1-18.
  2. Clement Greenberg (1968). "Avant‑Garde Attitudes"
  3. Barnett Newman (1944). "The Sublime is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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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혹시 피오나 휴즈가 쓴 <칸트의 미적 판단력 비판 입문> 이 책도 괜찮을까요?

휴즈의 그 책은 제가 읽어본 적이 없지만, 휴즈가 쓴 몇몇 통찰력 있는 논문을 읽어본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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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herb님께서 추천해주신 벤첼의 책은 국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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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찾아보니 학교 도서관에 있더라고요 내일 빌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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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벤첼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고 휴즈의 책을 읽었는데 괜찮았습니다. 다만 해당 책은 (1) 1부인 <미적 판단력 비판> 파트만 다루고, (2) 리더스 가이드 시리즈 특성상 원전에 대한 꼼꼼한 독해가 병행돼야 의미가 있는 책이지 단순 개론서나 입문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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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숭고론은 알고보면 숭고한 것이란 인간의 이성적/정신적/도덕적 존재성격이란 것인데, 그 존재성격은 동시에 인간이 유한한, 육체적이고 경향적인 동물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에만 숭고한 것입니다. 즉 후자의 존재 성격에 대비되는, 그것을 잠재적으로 능가하는 전자의 존재성격이 바로 그러한 존재성격이기 때문에 숭고함이라는 미적 광휘를 갖게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기본 줄거리는 "수명이 정해진 육체를 버리고 자신들의 정신을 초광속 우주 비행이 가능한 기계몸으로 옮겼으며, 이후 아예 정신 자체를 에너지로 바꾸어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로 진화"한 존재 덕분에 진화한 인류의 한 성원이 다시 그 존재 덕분에 그 자신도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로, '스타 차일드'로 재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스타 차일드는 분명 더는 유한한, 육체적이고 경향적인 동물적 존재가 아닐 것이고, 따라서 숭고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도, 자신이 바로 그 숭고한 것의 정체라고 (철학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칸트적 의미의 숭고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은, 그저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SF적 상상력의 터치를 받아 만들어진 영화인 것으로 보입니다. 곁가지를 붙이자면, '기술적 숭고' 개념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무한히 고도한 기술이 완전히 통제되고 있으니, 기술과 자신 사이에 아무런 거리도 없는 지적 존재가 등장하니 말이죠. 그런 존재가 되기 전의 인간도 AI가 일으킨 반란을 힘들게라도, 희생을 치루고라도 '잘' 진압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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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입문하려면 먼저 칸트 철학 전반에 입문해야 합니다. 한자경 선생님의 <칸트 철학에의 초대> (2006, 서광사)가 포괄적이고 간명하고 정확해서 그 입문(의 첫 단계)에 상당히 적합합니다(철학 전공자가 아니면 첫 단계 입문으로 충분합니다). <판단력 비판> 자체의 충분히 자세한 해설로는 Douglas Burnham 의 Introduction to Kant's Critique Of Judgement (2000, Edinburgh University Press) 을 권합니다. 그냥 제가 감탄하면서 읽어서 추천드리는 것이지 다른 해설들과 비교해서 유난히 뛰어남을 확인해서 추천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긴 편인 서론에 칸트 철학 전반이 요령있게 체계적으로 해설되어 있어서 칸트 철학 전반에 입문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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