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는 국법이 시킨 일을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시킨 일만 한다. 사형수를 참수해 죽이는 것 말이다. 망나니 춤은 실제로는 없었으니 그 참수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런데 우리는 제멋대로 거칠게 행동하는 것을 '망나니짓'이라고 한다. '망나니'는 어원적으로 '막돼먹은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구에서도 망나니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망나니 일은 부정타는 일이었고 그래서 망나니는 일반인들과 접촉할 수 없게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격리되었다. 그런데, 당대의 수렵채집 부족들의 관습에 대한 초기 인류학자들의 보고가 옳다면, 우리의 먼 조상들은 심지어는 전투에서 적을 죽이는 행위조차도 속죄와 정화가 필요한 부정적 행위로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사둔지 30여년만에 읽은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 (김종엽 역, 문예마당, 1995)에서 재인용한다. 다른 번역본보다 번역의 질이 더 높을 가능성이 크고, 새파랗게 젊은 시절에 몇 차례 뵌적이 있는, 내가 본 가장 지적 재기가 발랄한 인물인 역자가 쓴, 합치면 80쪽이 넘는 두 개의 글이 붙어있기도 하니 강추한다:
(69-70) 승리한 살인자에게 가해지는 제한들은 언제나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대한히 엄격한 것이 일반적이다. 티모아에서는 전쟁에 나갔던 통솔자는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는 특별한 움막에 머물면서 두 달 동안 육체적, 정신적 정화를 지켜야 한다. 이 기간 중에 그는 자기의 아내를 볼 수 없고, 또 자기 손으로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음식을 입에 떠먹여주어야 한다.
(71) 북아메리카의 나트체즈의 젊은 전사가 처음으로 머리가죽을 벗겨 오면, 그는 6개월 동안 금욕 생활을 하여야 한다. 아내와 함께 잘 수 없고 고기도 먹지 못하며 생선과 옥수수죽만 먹을 수 있다. 적을 죽이고 머리가죽을 벗긴 촉토인은 죽은 사람을 위한 한달 동안의 장례를 치르고, 그 동안에는 머리를 빗지 못한다. 머리가 가려워도 손을 사용할 수 없으며 작은 막대기만을 사용할 수 있다.
(71-72) 파마 인디언이 아파치족을 죽였을 경우에 그는 가혹한 정화예식과 속죄예식을 치러야 한다. 16일 간의 금식 기간 중에 그는 고기와 소금을 건드리지 못하고 타오르는 불길을 보아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 된다. 숲속에서 혼자 살면서 나이 많은 여자가 가져오는 빈약한 음식물만을 먹어야 한다. 또 가장 가까이 있는 냇물에서 가능한 한 자주 목욕을 하고, 애도의 표시로 머리에 진흙 한 덩어리를 얹어 놓아야 한다. 제17일이 되면 그와 그의 무기를 정화하기 위한 공적인 행사가 엄숙하게 진행된다. 피마 인디언들이 살인자가 지켜야 할 타부를 그들의 적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속죄와 정화를 싸움이 끝난 뒤로 연기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용감한 병사들은 윤리적 엄격성 내지는 경건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탁월한 용맹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미국인들이 보기에 아파치와의 싸움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연합세력이었다.
프로이트는 수렵채집 부족들의 이 관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69) 우리가 이 모든 규정들로부터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은 적을 대하는 태도에서 표현되는 충동은 단순한 적대감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규정들에서 후회, 적에 대한 찬양, 그를 죽인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표현되는 것을 보게 된다. 신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훨씬 전에 이 야만인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을, 그것을 어기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 생생한 명령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저항할 수 없다.
<토템과 터부>는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명망도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이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간에게는 한편으로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자기보존에 필수적인 자원들을 두고 다투는 이웃 무리들과의 전쟁의, 따라서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행위의 불가피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주 초기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 인식은 적어도 전투 중에 적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는 태도를 필연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사태로서의 죽음에 대한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이 의식은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쉽게 발현되어 적의 나에 기인한 죽음조차도 애도해 마땅한 것이라는, 강박에 가까운 느낌을 야기했던 것 같다. 문명화된, 또는 문명화가 훨씬 더 진전된 우리는 다르다. 문명인은 한편으로는 네 이웃은 물론이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라는 초현실적인 도덕적 계율을 생산할 정도의 사해동포주의자이고 그 계율은 못 지켜도 적어도 사형제는 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자비로운 존재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는 조금도 후회와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다. 트라우마로 이어지는 그 '후회'와 '가책'은 '일부' 개인들의 사적인 몫이다. 노자가 31장에 다음 구절이 포함된 <도덕경>을 쓰기 훨씬 전부터, 로마 제국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나 군대를 성대한 개선식으로 맞이 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그랬을 것이다:
勝而不美, 而美之者, 是樂殺人.
전쟁에 이겨도 자랑스러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것이다.
夫樂殺人者, 則不可得志於天下矣.
무릇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자는 천하에서 뜻을 얻을 수 없다.
殺人之眾, 以悲哀泣之, 戰勝以喪禮處之.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슬피 울어 애도해야 하니, 전쟁에 이길지라도 상례로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