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철학을 전공한다는 것

저는 얼마 전까지 고등학생으로서 대학 전공을 고민하였습니다. 제 주변을 보면 철학과는 소위 말하는 '낮은 과'라서 더 높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철학과에 진학하고 싶다하면 다들 굳이 이상한 선택을 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사회탐구 과목에서 철학인 생윤과 윤사는 항상 선택자 수 상위이니... 이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더군요. 다른 전공에 비해 철학과는 입결이 낮았습니다. (SAT 성적이라던가) 수험 과목이 아닌 학문으로의 철학은 다들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철학을 다른 학문보다 우월하게 보는건 아닙니다만, 꼭 필요한 분야이고 이는 여기 계신 분들도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필요성에 비해 사람들의 인식 속 철학은 가끔보면 돈 안되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느낌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전공생은 아니지만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외롭기도 합니다. 좋아하는게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여러분도 이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으신지, 만약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을 전공하시기로 한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두서 없이 쓴 건 용서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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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두서없이 개인적인 생각을 남기자면 이렇습니다.
(1) 소위 말하는 학과의 높고 낮음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수요와 공급에 따라 벌어지는 현상일 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어떤 학과는 많은 사람이 몰리는 학과라서 이른바 입결 컷이 올라갈 뿐, 그것이 각 학과를 본질적으로도 총체적으로도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모 대학 경영학과 입학 점수컷이 철학과보다 몇 점 높다는 통계적 사실이 경영학과가 철학과보다 좋다고 단언할 수 없고, 경영학과가 더 좋은데 철학과를 왜 가냐라는 식으로 학과간 우열 심지어 학과에 속한 사람의 우열을 전제하여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 생각에는 그런 범주적 오류를 저지르는 분들이야말로 철학을, 아니 교양과목으로 논리학의 기초를 배우셔야 할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 것 같네요.

(2) 철학과가 돈이 되냐라는 이 말... 이것도 참 오래된 말인데 이에 대해 여러가지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요즘 솔직히 드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럼, 돈 되는 학과는 뭔데?' 아니, 대학에서 공부하는게 이제 돈 버는 것과 얼마나 관련성이 있나가 의문스럽긴 합니다. 탁상공론이라는 말도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쓰는 말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은 본인이 그 분야에 대해 모르고 관심이 없는걸 단순하게 '공허하다', '무용하다'라고 쉽게 단정짓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요. 아마 기업체에서 4년제 대학 졸업한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그 사원이 무슨 학과를 나왔든, 대학에서 보통은 학문을 배우지 기업체의 실무를 배우지는 않으니까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대체로 '탁상공론'처럼 느껴질 겁니다.

(3) 오히려 철학과에 가면, 제 경험에 비추어서 하는 말이지만,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과 "점수 맞춰서 온 사람"이 어느 정도 나눠질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어떤 사람인지는 바뀔 수 있지만요). 그래서 저는 철학과 학부생일때 좋았어요. 철학과 학생들끼리는 '철학과 왜 왔냐', '철학 왜 배우냐'라는 질문을 하지 않거든요. 아니 하더라도 정말로 그 사람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궁금해서 묻지, '쓰잘데기 없고 탁상공론인걸 왜?'라는 식의 태도로 물어보지는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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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하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덕분에 훌륭한 사이트에서 이렇게 귀하신 분의 말씀을 볼 수가 있어서 뜻 깊고 알찬 시간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철학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기회였고 한국에서 철학을 전공한다는 것에 대한 글 포스팅도 잘 봤습니다...

사실 수험 과목으로서의 철학(윤리학) 역시 아이들에게 딱히 좋게 받아들여
지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흔히 말하는 쌍윤을 선택하여
재미있게 공부하였던 저와 달리, 제 주변 학생들은 대부분 다들 선택하니까
혹은 윤리끼리 하면 점수가 잘 나올 것 같다는 이유로 쌍윤을 선택했다가 도망치는 경우가 대다수 였으니까요... 결국 저희 학교에서 수능으로 쌍윤을 선택한 건 저 혼자였습니다..ㅋㅋ

고등학교 시절의 저 역시 글쓴이 분과 비슷한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맞나 싶기도 하고, 같이 철학 이야기를 나눌 곳이
이 커뮤니티와 학교에 계신 윤리 선생님 정도라 외롭기도 했죠.
그때마다 선생님은 대학에 가면 너랑 비슷한 애들이 있을 거라 하셨고,
실제로 대학을 오니 저랑 비슷한 애들이 꽤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철학과가 아닌 윤리교육과에 진학하긴 했지만,
철학이나 윤리교육 전공으로 대학을 오시면
본인과 비슷하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하시는 철학과에 진학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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