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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종교가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 지배 계층과 그들의 지적 대변자들은 그 종교의 반체제적 잠재력과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수 있거나 지배 이데올로기와 훌륭하게 양립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저울질 할 것이고 후자로 기울어지면 그 잠재력을 최대로 실현하기 위해 교리, 성직자 제도, 의례 등을 구성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 종교의 급진적 잠재력은 억압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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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Hudson, ...and forgive them their debts: Lending, Foreclosure and Redemption From Bronze Age Finance to the Jubilee Year (2019)
마이클 허드슨: 그는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채무를 대신 상환하기 위해 죽었다
2017년 12월 23일 람버트 스트레더에 의해 게시됨
미주리 대학교 캔자스시티 캠퍼스 경제학 연구 교수이자 바드 칼리지 레비 경제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마이클 허드슨과의 인터뷰. 그의 최신 저서는
J is for Junk Economics
이다.
허드슨의 사이트에 게시된 글을 재게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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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와 하누카를 맞아 지난 한 해를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와 유대교 신앙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적어도 한 명의 경제학자는 우리가 성경을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읽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이 주제에 대한 전체 책을 썼다. And Forgive them their Debts: Credit and Redemption (올해 봄 아마존에서 출시 예정)에서 마이클 허드슨 교수는 성경이 섹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경제학, 특히 채무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기독교는 예수의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허드슨 교수는 말한다.
실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대교도 예수의 유대교가 아니다.
그 경제학자는 Renegade Inc 에게 주기도문 중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구절이 구체적으로 채무를 언급한다고 얘기했다.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기독교가 전적으로 죄에 관한 것이지 채무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죄와 채무에 해당하는 단어는 거의 모든 언어에서 동일하다.”
“독일어 ‘Schuld’는 ‘채무’와 ‘범죄(offense)’ 또는 ‘죄’를 의미한다. 프랑스어로는 ‘devoir’이다. 아카드어(바빌로니아 언어)에서도 같은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디어는 유럽과 바빌로니아 일부 지역에서 존재했던 ‘wergeld’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지위에 따라 인간 생명의 가치를 정하는데, 부상을 당하거나 살해된 이의 가족에게 그 가치에 해당하는 보상이 지급된다.
“지불 – Schuld 또는 의무 – 은 범죄에 의해 야기된 피해를 속죄한다”고 허드슨 박사는 말했다.
십계명은 채무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순수하게 성적 의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경제학자는 그것은 채권자들이 채무자의 아내와 딸을 미상환된 채무의 담보물로 성노예로 삼는 것을 구체적으로 지칭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제3천년기 수메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그는 말했다.
마찬가지로,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미상환된 채무에 대한 위협에 의한 고리대금과 착취를 지칭한다.
그 경제학자는 예수가 채무에 대한 견해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한다. 십자가 처형은 특히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부과된 처벌이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그의 경제적 견해에 대한 처벌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허드슨 교수는 말한다. “그는 채권자들에게 위협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대 경제의 안녕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졌던 정기적인 채무 탕감 제도의 지속을 위한 사회주의 활동가였다.
정부는 채무를 탕감할 수 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에서 새로운 통치자가 권력을 잡을 때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하곤 한 일은 "클린 슬레이트(clean slate, 과거의 실수와 문제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상태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선포였는데, 그것은 ‘채무 주빌레(debt jubilees)’로 알려졌던 것을 통해 주민들의 개인 채무를 탕감했다.
채무를 갚지 못한 이들에게 대안은 채권자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정부는 그런 채무자들을 군대에 동원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파르타와 코린토스의 귀족층을 전복시킨 BC 7세기의 그리스 '폭군들'부터 스파르타인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려고 했던 BC 3세기의 스파르타의 왕들인 아기스와 클레오메네스,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비롯해 빚 탕감과 토지 재분배를 주장한 로마의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신민들의 채무를 탕감한 고전 고대의 통치자들은 곤혹스러울 정도로 자주 전복되었다.
누가 복음 4장에 기록된 예수의 첫 설교는 그가 희년(Jubilee Year)의 집행을 부활시키기 위해 왔다는 선언을 담고 있다. "복음" (또는 ‘좋은 소식’)은 특히 제정 로마 시대의 주요 정치적 투쟁이 되었던 채무 탕감을 지칭한다. 그 투쟁에서 예수는 채권자 편을 든 바리새파 (기원전 167년경 랍비 유대교의 기반이 된 정치적 정당이자 사회적 운동)와 맞섰다.
예수는 우리의 채무를 대신 상환하기 위해 죽었다
허드슨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행동[주의에] 대해 최고의 대가를 치렀다고 말한다.
바리새파, 힐렐(랍비 유대교의 창시자) 및 그들을 지지한 채권자들은 예수의 점점 증가하는 인기가 그들의 권위와 부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이 사람을 제거하고 유대교를 재편해 그것을 계급전쟁 대신 섹스에 관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계급전쟁은 사실 구약성경 전체가 다루는 주제이다”라고 허드슨 교수는 말했다.
“그것이 기독교가 왜곡된 지점이었다. 기독교는 그렇게 해서 반-예수적이 되었다, 그것은 아인 랜드식으로 부와 그리고 심지어 탐욕을 찬양하면서 미국 티파티 운동의 등가물이 되었다.”
그 경제학자는 기독교가 성 바울에 의해 재구성되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키릴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아프리카"파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지난 1000년 동안 가톨릭 교회는 가난이 고귀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예수는 가난이 좋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가 말한 것은 부자는 탐욕스럽고 부패하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도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 철학자, 성경의 이사야 선지자들도 그렇게 말했다."
예수는 고귀해지게 하기 때문에 가난이 좋다고 말한 적도 없다.
예수가 말한 것은 돈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복음주의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허드슨 교수는 말한다.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한 푼도 나누지 말라고 한다. 예수 왕이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백만장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마라. 예수님이 나에게 로또를 당첨시켜 주실지도 모른다. 주님이 죄 때문에 버려두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라. 여기에는 희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오늘날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허드슨은 성경의 답변이 그 시대에는 실용적이었다고 말한다.
“채무가 쌓여 갚을 수 없을 때, 연합국들이 최소 잔액을 제외한 독일의 모든 채무를 탕감한 ‘1947년 기적’ 동안 독일이 한 것처럼 채무를 탕감하고 다시 시작하거나, 오바마가 2008년 위기 후 미국에서 한 것처럼 채권자들이 강제집행을 하는 것을 허용해 1,000만 가구가 집을 잃게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 부를 그대로 두면 그것은 부채 디플레이션으로 사회를 질식시킬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채무의 신성함을 믿는다. 하지만 수메르와 바빌로니아부터 성경까지, 채무 탕감이 신성시되었다.”
그 경제학자는 소득세를 토지세, 독점세, 자연자원세로 대체하고, 부재지주 소유를 금지하며, 정부에게 국민에게 토지를 분배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할 것을 권장한다.
“예수처럼 되고 싶다면 정치적이어야 하며 이것이 문명 전반에 걸쳐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온 동일한 투쟁 – 채무가 상환 능력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사실에 대처하려는 사회의 시도 - 임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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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가 지배적 경제로 자리잡으면 지배 계급 입장에서는 마땅히 그러해야 했던 것으로 광고 (최선의 경제체제로서의 자유시장경제) 해야 할 필요와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점들과 결부된 부정적 사태들을 자본주의가 순전하지 않아서 (시장이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가 않아서, 시장과 무관한 외부적이고 우발적인 원인들로, 정부가 자유 시장을 보호하는 것과 무관한 경제 개입을 해서) 생기는 문제들로 광고할 필요가 생겼죠. 그 둘 다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처음으로 자본주의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이름난 학자의 저작들을 그 광고에 적합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짜집기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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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than Wight, Saving Adam Smith: A Tale of Wealth, Transformation, and Virtue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