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구상: 헤겔의 칸트 도덕철학 비판에 관한 아도르노적 고찰

*사실 이 구상은 몇 년 전부터 논문 게재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던 작업입니다. 영어로 원고를 작성해서 Philosophy & Social Criticism 같은 해외 학술지에 투고해보는 담대한 모험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최근 아도르노의 도덕철학 강의를 완독하고서야 논문을 보완할 방향과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수정 보완 작업도 매우 천천히 진행될 듯합니다만(군부대에서 참고문헌을 구해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고,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밑천에 녹슬기까지 한 어학 능력도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꼭 완성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이전에 발표했던 원고의 서론을 공유해봅니다.


칸트의 실천철학이 제시하는 도덕의 원리가 구체적 내용들을 사상해버림으로 말미암아 아무런 도덕적 지침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헤겔의 ‘공허한 형식주의 반론’으로 정식화된 이후, 칸트주의의 입장에서 헤겔의 반론이 칸트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 기인함을 보이거나 칸트의 입장에서 재반론을 펴려는 무수히 많은 시도들이 있어 왔다. 한편 헤겔의 비판이 칸트적 도덕(Moralität)에서 어떻든 내용이 결여되어 있음을 정당하게 지적함을 수긍하고 그로부터 헤겔의 인륜(Sittlichkeit)론이 칸트에 대해 갖는 이점을 음미하려는 논의들이 제기되었다.1) 그러나 칸트적 도덕과 헤겔적 인륜 사이의 이러한 대립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Freyenhagen, 2011: 95).

본고의 목적은, 헤겔의 공허한 형식주의 반론을 검토해보고, 나아가 칸트 도덕철학의 내용들이 헤겔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에서 인륜이 간과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들을 제공하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공허한 형식주의 반론을 다음의 물음 아래 검토할 것이다. 1) 칸트의 도덕철학은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도덕적 행위와 관련되는 지침을 제공할 수 없는가? 2) 공허한 형식주의 반론의 성공은 헤겔의 주장대로 도덕이 인륜의 계기 속에서 지양됨을 의미하는가? 3) 칸트의 도덕철학은 다른 형태로 재구성됨으로써 인륜을 넘어서는 도덕의 교훈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물음들, 특히 2)와 3)은, 칸트 도덕철학을 비판하면서도 인륜으로 해소되지 않는 도덕의 계기라는 진리내실(Wahrheitsgehalt)을 칸트로부터 통찰해내는 아도르노의 관점을 참조하며 논구될 것이다. 이에, 앞으로의 논의는 다음처럼 전개될 것이다. 먼저, 칸트가 제시한 정언명령의 정식이 도덕 법칙의 마땅한 규준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기존의 논의 속에서 검토한다(II). 이 절에서는 칸트의 단순한 형식적 동일성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해 칸트에 대한 간략한 변론을 시도하고, 그럼에도 헤겔의 비판이 가리키는 일련의 문제점을 어떤 점에서 칸트가 내포하는지 밝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칸트적 도덕이 인륜의 한낱 계기로 지양 및 해소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 논증될 것이다(III). 진정한 도덕 법칙을 판가름하는 정언명령의 규준을 인륜에 해소시켜 볼 수는 없으며, 따라서 헤겔의 주장과 달리 도덕과 인륜이 완전히 부합하지 않고 모종의 불일치 상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칸트의 도덕철학이 일련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륜 속에서 해소되지 않고 인륜을 넘어설 수 있는 ‘도덕’의 영역을 우리에게 시사할 수 있는지를 보일 것이다(IV).

  1. 그 대략적인 논의 지형에 대해서는 아메릭스(Ameriks, 2000: 309-313)와 나병상(Lo, 1981: 182)의 언급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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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어 보이는 내용이네요. 꼭 논문으로 완성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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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도덕철학의 문제 강의록을 중심으로 아도르노와 칸트 도덕철학의 관계를 (재)고찰해보고자 석사논문을 구상 및 작업하는 중에 있는데요. 메일이나 쪽지 등을 통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물론 내키신다면 말이지요). 제 메일은 purugo93@gmail.com입니다. 관심 있으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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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혹시 나병상 선생님의 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검색해도 나오질 않아서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발표 원고를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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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참조했던 논문은 Ping-cheung Lo의 "A Critical Reevaluation of the Alleged 'Empty Formalism' of Kantian Ethics"라는 논문입니다. 당시 저자명을 '핑청로'처럼 표기하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굳이 저자 프로필을 찾아 한자를 한국어 음독으로 옮겨놨었습니다. 지금 보니 괜히 혼란을 가중시키지 말고 영문명을 그대로 쓸걸 그랬네요. 당시 참조했던 논문을 올려드립니다.

Lo, A Critical Reevaluation of the Alleged Empty Formalism of Kantian Ethics.pdf (621.8 KB)

부끄러운 일이지만, 해당 원고는 저 포스팅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수정을 미루게 되어 아직 어디 내보이기에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후일 본격적으로 수정 작업에 돌입해서 스스로 보기에 만족스러운 수준이 된다면 꼭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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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아니지만, 'Wahrheitsgehalt'는 '진리내실'이라는 용어보다 '진리 내용'이 나을 것 같습니다. 'Gehalt'는 '형식(Form)'과 쌍을 이루는 '내용'이라는 뜻이니까요. 참고로 '내실(內實)'의 뜻은 이렇네요: "독일의 문학사가 발첼(Walzel, O.)이 언어 예술 작품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하여 도입한 개념으로, 작품의 내용과 소재를 이르는 말. 작품의 외적 형식을 가리키는 형상과 개념 쌍을 이룬다." 그런데 '내실'은 요즘엔 '내실을 기하다'라는 표현 외에는 거의 안 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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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 당시에 "Gehalt"를 될 수 있으면 "Inhalt"와 구별해서 번역하고 싶어서 "내실"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요즘 피히테를 읽다가 "Gehalt"가 영락없이 "Form"의 짝개념으로 쓰이는 걸 본 터라 말씀처럼 "내용"으로 번역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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