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형이상학 정초 질문

윤리 형이상학 정초를 읽고 있는데 이해가 잘 안 가는 문단이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질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자기 자신에 대한 필연적인 의무의 개념에 따라, 자살하려 하는 사람은, 과연 자신의 행위가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간성의 이념과 양립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물을 것이다. 만약 그가, 힘겨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는 그의 인격을, 생이 끝날 때까지 견딜 만한 상태로 보존하기 위한, 한낱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건이 아니고, 그러니까 한낱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모든 행위에 있어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인격 안에서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처분할 수 없으니, 인간을 불구로 만들거나 훼손하거나 죽일 수 없다. (모든 오해를 피하기 위한 이 원칙에 대한 더 상세한 규정, 예컨대 나를 보존하기 위한 지체의 절단, 나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나의 생명을 위험에 내맡기는 일 등등에 대한 상세한 규정은 여기서는 지나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본래의 도덕에 속하는 것이다.)73]

  1. 여기서 칸트의 현안은 상황에 맞는 도덕의 세세한 강령이 아니라, 도덕 원리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다. 곧, 도덕이 아니라, 도덕철학이 논의의 주제이다.

제가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건 (모든 오해를 피하기 위한~그것은 본래의 도덕에 속하는 것이다) 이 부분인데요. 칸트가 세세한 강령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칸트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칸트의 관심사는 저런 실례들이 아니라 일단이 도덕이 가능하기 위한 법칙들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밝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희가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시간에 칸트를 배우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칸트가 앞서 말한 실례들을 들거나 일종의 딜레마 상황(누군가가 살인자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살인자가 쫓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거짓말하지 말라는 원칙에 따라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을 제시하면서 칸트의 정언명령이 너무 엄격하다! 혹은 불완전하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거죠 물론 저도 저 지적이칸트 철학을 오해하고 있으며, 핀트를 잘못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이 저의 머릿속을 스치기는 합니다. 저런 세세한 강령들에 대해 칸트가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칸트 자신조차 저런 딜레마 상황을 가지고 자신을 공격할 것을 알면서 그 논의를 피하는 것은 약간 강하게 말하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요.

  1. 칸트가 저런 딜레마 상황에선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니 대답을 안 하겠다" 류의 태도만을 취했나요? 그리고 그런 공격이 들어왔을 때 칸트의 철학으로 어떻게 방어를 할 수 있을까요?

[둘째로, 타인에 대한 필연적이거나 당연한 의무에 관한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거짓 약속을 하려고 뜻한 사람은 곧바로, 그가 다른 사람을, 이 사람도 동시에 자기 안에 목적을 포함하고 있음을 무시하고, 한낱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한 약 속에 의해 나의 의도를 위해 대하고자 하는 그 사람은 그에 대한 나의 처 신 방식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 자신 이 행위의 목적을 함유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원리와의 이 상충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침해의 예를 들어보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거기서, 인간 권리의 위배자가, 다른 사람들도 이성적 존재자로서 항상 동시에 목적들로, 다시 말해 바로 그 동일한 행위에 의해 그 자신 안에도 목적을 함유할 수 있어야만 하는, 그러한 존재자로 평가되어야 함을 보 지 못한 채, 타인의 인격을 한낱 수단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 여기서, '사람들이 네게 함을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등의 상투적인 말이 준거나 원리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말은, 비록 여러 가지 제한과 함께이기는 하겠지만, 단지 저 원칙으로부터 파생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편적 법칙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들의 근거도, 타인에 대한 사랑의 의무들의 근거도 함유하고 있지 않으며 -타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을 그가 하지 않아도 된다면, 타인들이 그에게 자선을 행하지 않는 것에 많은 사람이 기꺼이 동의할 터이다, 드디어는 서로 간의 당연한 의무들의 근거도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범죄자는 바로 이 근거를 가지고서 그에게 형벌을 내린 재판관에 대항하여 논변할 터이니 말이다]

저는 저 마지막 문단이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저는 칸트의 도덕 철학을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해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의미에서 '사람들이 네게 함을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도 칸트 철학을 설명하는 데 오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칸트는 여기서 왜 그것을 쓰지말라고 하는 건가요? 저 문단을 읽어보아도 이해가 잘 안 돼서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칸트의 관심사가 아닌게 아니라, 칸트의 <정초>가 다루려는 대상이 아닌겁니다. 둘은 다릅니다. <정초> 서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1개의 좋아요

는 한낱 부정적인 측면에서 의무를 다루는 것—x해선 안 된다—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구절을 보면 칸트는 한낱 부정적인 측면에서 의무를 논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x해야만 한다—에서도 의무를 논하기 때문으로 보이네요. 정확히 어디서 인용하신지 모르겠어서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힘드네요.

1개의 좋아요

제가 인용하는 법을 잘 몰라서 어떻게 말씀 드려야할지 모르겠는데 B67 IV 430파트에서 했습니다

칸트의 윤리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얄팍한 지식으로 답변을 드리자면...

1.제임스 레이첼즈의 <도덕 철학의 기초>에서 칸트 윤리학을 다루는 부분에 해당 딜레마에 칸트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칸트의 대처에 대한 비판이 실려있습니다.

칸트는 이타적인 이유에서 거짓말을 할 가상의 권리에 관하여"(On a Supposed Right to Lie from Altruistic Motives)라는 매력적으로 고풍스러운 제목의 글에서 자신의 답변을 풀어냈다. 그 글에서 칸트는 살인자의 문•의에 대해 논하면서 거짓말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두 번째 주장을 했다.
살인자가 찾고 있는 사람이 집에 있는지에 대한 문의에 당신이 사실대로 답했더라도, 살인의 표적이 된 남자가 이미 집에서 빠져 나와 살인자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질문에 "그 사람은 집에 없다"고 거짓을 말했는데 사실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 그 사람이 이미 집을 빠져나갔다면, 그래서 도중에 살인자가 그를 만나 죽였다면, 당신은 마땅히 그 죽음의 원인 제공자로서 비난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아는 대로 사실을 말했다면 살인자가 집을 뒤지는 동안 이웃들에 의해 체포되어 범행이 사전에 방지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어떤 좋은 의도에서였건 간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결과가 아무리 예측 불가능했더라도 그에 대한 죄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심사숙고 과정에서 진실한(솔직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신성하면서도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이성의 명령으로, 어떤 편의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않는다.

이 논증은 보다 일반적인 형태로 제시될 수 있다. 거짓말을 금하는 규범에 예외를 두고 싶은 유혹이 드는 것은, 때로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을 했을 때보다 도리어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절대 확신할 수없는 일이다. 즉, 좋은 결과가 따를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거짓말의 결과는 예상 외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방침은 이미 알려진 악인 거짓말을 하지 않고 결과는 순리에 따르도록 놔두는 것이다. 그 결과가 나쁘더라도, 우리는 의무를 다했으므로 우리의 잘못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중략) 하지만 칸트의 논증이 안고 있는 문제는 매우 명백하다. 실제로 너무 명백한 나머지 칸트 정도의 철학자가 이에 대해 보다 민감하지 못했다는 점이 놀랍게 느껴진다. 우선 이 논증은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해 불합리할 정도의 비관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행위의 결과에 대해 꽤 확신할 수 있고, 그러한 상황에서는 불확실함 때문에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철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보다 흥미로운 점은, 칸트는 거짓말로 인한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사실을 말해서 얻게 되는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이 없다고 가정했던 것 같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살인자가 피해자를 찾아 내어 죽였다고 가정해 보자. 칸트는 이 사례에서 진실을 말한 우리는 전혀 죄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그렇게 쉽게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살인자를 돕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 논증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도덕철학의 기초, 232-233)

칸트의 거짓말 옹호에 관해 검색을 해보니, 이하의 논문이 아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 해당 각주에서 칸트가 축약해서 말하고 있어 이해가 좀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일단 칸트는 '사람들이 네게 함을 바라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원칙이(이하 황금률) 보편적 법칙일 수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뒤에 나오듯이 (칸트가 이해한) 황금률이 자기 자신의 의무, 타인에 대한 사랑의 의무, 서로간의 당연한 의무 등 인간이 지켜야할 여러 의무들에 대한 근거를 함유하고 있지(가지고있지)않기 때문입니다.

왜 의무들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있지 않는걸까요? "타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을 그가 하지 않아도 된다면, 타인들이 그에게 자선을 행하지 않는것에 많은 사람이 기꺼이 동의할 터이다."라는 문장에서 볼수 있듯이, 단지 남이 원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말라 규정하는데 그치고, 동시에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타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켜야할 의무도 없다고 보는 황금률은, 칸트가 보기에 지켜야할 의무들의 근거가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의무들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보는것은 결국 '보편법칙으로 의욕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앞서 말한 '거짓말은 안된다'라는 의무를 생각해 봅시다. 이는 단순히 (황금률처럼)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남이 싫어할 것이라 생각해서 의무로 지정되는 것이 아니라,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남의 입장에 서보는 등) 생각해볼 때 거짓말 하는 것을 보편법칙으로 의욕할수 없기 때문에(거짓말이 보편법칙이 될수 없음은 분명하기에)
'거짓말은 안된다'가 우리가 따라야 할 의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칸트가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경향성에 휘둘려, 자기 이익만 생각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맞지만, 여기서 칸트는 더 나아가 모든 경향성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때 보편 법칙이 될 수 있는 것을 의무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네가 바라지 않는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황금률과는 다른 것입니다.

또햐 칸트는 보편법칙의 고려가 아닌 황금률만을 단순히 의무의 근거로 볼 경우 범죄자 스스로를 황금률에 의한 논변-재판관도 벌받기 싫을테니 나한테도 벌주지 마라-가 가능해진다며 이를 황금률이 의무의 근거가 될수 없는 이유로 보고있는것 같네요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