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도덕철학 질문

얼마 전 피터 싱어가 편집한 <규범윤리의 전통>이라는 앤솔로지에서 Onora O'Neill이 쓴 칸트 도덕철학 소개글을 읽었는데요. 아직도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 질문드립니다. 롤즈의 구성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중간 다리로 읽기 위한 칸트였는데 아직 이해가 가지 않네요.

  1. 제가 지금은 해당 책을 반납해서 오닐의 표현을 정확히 그대로 옮겼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고서 제가 나름 정리해둔 것을 보면 오닐은 원문에서 정언명령의 첫번째 정식을 '너의 준칙이 보편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하여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이성적인 행위자가 따르는 도덕규칙은 /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규칙에 따라 행하는 것을 (행위자가) 원할 수 있는/ 규칙이어야 한다' 라고 이해했습니다. (거짓말 사례를 예로 들면,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서 약속을 가능케 하는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거짓말을 행하라' 라는 규칙을 자신이 준수할 수 없으므로, 이성적 행위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 규칙에 따라 행하기를 원할 수 없음) 제가 이해한 것이 정식의 원 의미라고 할 수 있나요?

  2. 정언명령의 첫번쨰 정식에 따라 '거짓말을 하라'라는 규칙은 도덕규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칸트는 도덕규칙이란 세계의 우연적인 특성이나 행위자의 성향 or 가치관에 상관없이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라'라는 규칙은 도덕규칙이 아닌 것으로 판명하는 논증에서도 세계의 우연적인 특성들이 몇 가지 전제되지 않나요?
    ㅡㅡ 모든 인간의 심리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던지 말던지에 상관없이 약속을 체결하는 성향을 가진 가능세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신뢰가 무너지지 않으므로 '거짓말을 하라'라는 규칙이 도덕규칙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글을 쓰면서 생각난건데 칸트의 입장에서는 '그런 순진한(?) 성향을 가진 행위자들은 이성적 행위자들이 아니다'라고 변호할 수도 있을것같네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이성적 성향'이라는 개념이 너무 두꺼운 개념thick concept이 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애초에 칸트에게 이성적 행위자라는 개념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제겐 너무 복잡한 것 같습니다.)
    ㅡㅡ 각자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 사회 (예컨대 프라이버시가 매우 높은 정도로 지켜지거나 매우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도 신뢰가 무너지지 않으므로 도덕규칙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저는 도덕철학에서 구성주의를 '도덕원칙은 인간 이성의 특성에 따라 만들어진다'라는 입장이라고 조악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도덕원칙은 인간의 존재와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성적 존재자들은 원칙을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하면 구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입장의 범위가 매우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구성주의를 어떤 부분에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ex: 예를 들어 예전에 어떤 전자책에서 얼핏 읽은 내용으로는 칸트 도덕철학을 구성주의로 해석하는 입장(롤즈, 코스가드 등)과 구성주의가 아닌 것으로 해석하는 입장이 나뉜다고 들었는데, -동시에 그 책에서는 칸트 도덕철학이 구성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나가는 투로나마 언급하는데- 저처럼 구성주의를 이해하게 되면 칸트를 구성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가 매우 힘들어지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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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본을 번역한 책은 apa방식으로 어떻게 인용해야하나요? 편집본의 편자, 역자, 편집본 챕터의 저자를 같이 설명해주는 곳을 찾기 힘드네요...

첫 번째 정식은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라는 것이고, 여기서 핵심은 준칙이 모순을 일으키느냐 일으키지 않느냐 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모순이 발생하냐는 것이 뒤따르는 물음이 될 텐데, 그 중의 한 가지가 개념 상의 모순입니다. 약속의 예시가 개념 상의 모순이 발생하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 개념 상의 모순에 대한 해석도 복잡합니다.

논리적 모순 해석에 따르면,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거짓 약속을 할거야'라는 거짓 약속의 준칙은 (a) 약속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는데, (b) 이 준칙을 보편화하면 약속이 불가능해지므로, (c) 해당 준칙과 해당 준칙이 보편화된 형태 사이에는 논리적인 수준에서 충돌이 발생합니다.

실천적 모순 해석에 따르면—제가 알기론 오닐은 실천적 모순 해석을 지지—,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거짓 약속을 할거야'라는 거짓 약속의 준칙은 (a) 돈 획득이라는 목적을 위해 약속이라는 수단을 상정하고 있는데, (b) 이 준칙을 보편화하면 해당 목적이 실현 불가능해지기에, (c) 수단-목적 관계가 파괴됩니다.

정말 대강 설명했는데, 설명하기 너무 복잡합니다.

에서의 "약속"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약속과 같은 개념인가요? 제가 보기엔 아닙니다. 약속은 그 약속이 이행될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지 않고선 성립할 수 없지 않나요? 제가 보기엔 이행될 가능성 없이도 약속하는 세계에서의 약속은 칸트가 말하는 우리의 약속과는 다른 약속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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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반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준칙'은 나의 의지를 규제하는 규칙이고, '법칙'은 모든 사람의 의지를 규제하는 규칙이니, 준칙이 법칙이 되도록 행위하라는 말은 나의 의지를 규제하는 규칙이 모든 사람의 의지를 규제하는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행위하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행위만 내가 따라야 하는 행위로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행위는 내가 따르지 말아야 하는 행위로서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죠.

(2) Sophisten님이 위에서 구분해 주신 '논리적 모순 해석'과 '실천적 모순 해석' 중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논리적 모순 해석'을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단순히 모든 사람이 따를 경우에 특정한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현실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서 그 행위가 도덕규칙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따를 경우에 그 행위 자체가 개념적으로 혹은 의미론적으로 무의미에 빠진다면 그 행위가 도덕규칙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라고 해석해요.

이 해석이 옳다면, 적어도 말씀하신 사례에서 '세계의 우연적 특성'은 거짓말을 도덕규칙에서 배제하는 데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거짓말'이란 개념적으로 '참말이 아닌 말'이니, 참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만 거짓말도 존재할 수 있죠. 그런데 모든 사람이 거짓말만 하면서도 약속을 체결하려는 성향을 지닌 세계라는 것은, (a) '거짓말'의 의미가 우리세계와는 매우 다른 세계이거나, (b) 실제로는 상상불가능한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라면 우리가 '참말'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 세계에서는 '거짓말'이라고 부를 뿐이니 그 세계와 우리세계의 차이는 매우 사소할 것이고, 후자라면 거짓말이 보편화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거짓말을 개념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칸트의 주장을 입증하는 셈이 될 것 같네요. 즉, 전자의 경우 apprentice님의 주장처럼 "거짓말을 하라."라는 도덕규칙이 성립할 수도 있겠지만, 이때 이 도덕규칙은 우리세계에서 "참말을 하라."라는 도덕규칙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 그런 세계 자체를 유의미한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apprentice님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런 성향을 가진 행위자들"을 "이성적 행위자"로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3) '구성주의'라는 표현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철학 용어의 의미가 저자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다 보니 의미를 하나로 확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칸트의 도덕철학은 (a) 분명히 도덕을 인간 이성의 보편적 성격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구성주의적 특징을 지닌다고도 할 수 있지만, (b) 인간이 도덕을 자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구성주의적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칸트는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입장들을 '이성의 영역' 혹은 '이성의 한계'라는 개념으로 통합하려고 했던 철학자잖아요. 칸트가 이론철학에서는 경험론과 관념론을 통합하려 한 것처럼, 실천철학에서는 윤리적 실재론과 구성주의를 통합하려 한 철학자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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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분들께서 중요한 얘기를 해주셔서, 저는 그저 첨언 정도로만 덧붙이겠습니다!

3/ 메타 윤리학의 입장으로서 구성주의는 기본적으로 "도덕 원칙은 인간적 인식이나 능력에 독립적인 실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각 입장에서 무엇을 도덕 원칙이나 규범들을 구성하는 요소로 간주할 것인지 차이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말씀해주신대로, 구성주의의 입장을, 도덕 원칙이 도덕 행위자의 인식이나 능력(가령 이성적 숙고 등)에 의해 구성된다는 입장이라고 보게 된다면, 구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입장의 범위는 넓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러한 이해는 기본적인 차원에서는 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설명들이 덧붙여지면 좋을 것 같아요. 가령, 도덕 원칙이나 가치 및 규범과 같은 도덕적 실재들은 1) 인간적 능력이나 인식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2) 오히려 그것들에 따라 구성되며, 3) 이것들은 구성의 과정이나 절차를 거친다, 정도로요.

말씀해주신 칸트 도덕 철학에 대한 구성주의적 입장은 보통 칸트적 구성주의(Kantian Constructivism)이라고 불리곤 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칸트가 제시하는, 준칙의 보편화 작업들을 이성적 능력에 따라 도덕 원칙을 구성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정언명령은 행위자가 이성적 능력에 따라 구성해낸 (자기 입법한) 실천적 원칙으로 이해됩니다. 롤스의 원초적 입장이나,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정의 원칙을 도출하는 상상의 행위자로서 합리적 행위자 개념, 또는 코스가드의 절차적 실재론, 오닐의 자율적인 합리적 행위자 등등이 떠오르네요.

문제는, 칸트적 구성주의가 어느 정도로 "칸트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칸트가 제시하는 몇몇 구절, 가령 "실천 이성의 사실"이라는 칸트의 언급은 구성주의적 독해를 허락하지 않는 지점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비록 칸트적 구성주의자들은 도덕 원칙의 구성이 결코 자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닐이 지적하는 바처럼, 롤스의 구성주의적 독해는 원칙을 구성하는 행위자와 원칙을 수용하는 사회의 특정한 관념들을(가령 자유로운 민주주의적 사회, 광의의 손익을 고려하는 합리적 행위자) 전제한다는 것도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겠네요. 또는 '도덕적인 물음에 대해 답을 제공하는 올바른 절차가 존재한다'는 코스가드의 절차적 실재론의 경우, 칸트 도덕 철학에 대한 실재론적 독해에 비해 어떤 이론적 강점을 지니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정언 명령이 이성의 자율성에 따라 행위자 자신이 입법한 것이라는 오닐의 입장은 도덕 법칙의 객관성에 대해서 (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 것 같아요.

  •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더 살펴봐야겠지만, 칸트 도덕 철학에 대한 실재론적 접근과 구성주의적 접근은 각기 다른 지점에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칸트적 구성주의 관련해서 다른 문헌들을 찾아보고 싶으시다면, 아래에 지난 학기 칸트적 구성주의 세미나 강의계획서를 첨부하니 참조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강의계획서에 표기된 자료들이 필요하시다면 연락 주세요! 자료 보내드리겠습니다~!)

Weekly Schedule.pdf (101.5 KB)

  • 아마 이에 연관된 SEP 엔트리를 읽어 보시는 것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듯하여 아래 링크 올려드립니다! (아마 읽어보셨겠지만요)

https://plato.stanford.edu/entries/constructivism-metaethics/

  • 몇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오닐의 몇몇 텍스트를 통해서 칸트적 구성주의, 그 중에서도 롤스의 구성주의적 입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었어요. 아래는 한번 살펴보시면 좋다고 생각한 자료들입니다.

O’Neill, Onora. “Constructivism in Ethics”. in: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89(1), 1988. 1-18. (= O’Neill 1988)

——————. Towards Justice and Virtu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 O’Neill 1996) (특히 2장입니다)

——————. “Constructivism in Rawls and Kant”.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Rawls. ed. Samuel Freema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347-367. (= O’Neill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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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답변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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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갈듯 말듯 하네요. 그러니까 sophisten님과 youn님의 말씀은, 거짓약속, 거짓계약을 보편화하게 되면 거짓약속이라는 목적이 현실적, 실천적으로 달성불가능하게 되지만, (ex: 모두가 남을 불신하기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려함) 애초부터 거짓약속이 보편화되는 사회에서는 계약서 작성 등 약속의 외관을 갖춘 행위가 실천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약속의 개념이 논리적으로 내포하는 의미에 따라 약속이라고 부를 수 없다(논리적 모순)는 말씀이신걸로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칸트의 논증에서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아 약속을 하지 않으려 드는 심리적 성향이 전제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은 보편화절차에서 '모순'이 오직 실천적 모순으로만 해석될 수 있을때만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편화절차에서 일어나는 모순이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되는 이야기인데, 저는 지금까지 실천적 모순으로만 이해했던것 같네요.

+곁가지 이야기지만, 그래서 약속의 개념이 무엇이냐?라고 할 때 저는 sophisten님의 말씀처럼 약속or 계약or 합의의 개념은 그 약속이 이행될 가능성을 전제하는것 같지는 않습니다. 약속 체결 당시에는 약속 이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했다 하더라도, 약속을 체결할때 쌍방 당사자들의 의사표시가 당사자들 내면의 의사와 일치했다면 그것은 충분히 약속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의 어머니가 철수에게 '내일 자전거를 사주겠다'라고 진실되게 약속하고 철수가 그것을 동의하였다면, 당시 어머니의 생각과 달리 자전거가 품절이라 약속 체결을 시도하는 당시에 약속 이행이 불가능했더라도, 우리는 철수의 어머니가 약속을 체결했다는 직관을 가집니다. 반대로 철수의 어머니가 실제로는 자전거를 사줄 의향이 없었고, 철수도 겉모습과는 달리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면, 자전거를 운좋게 사주더라도 그것은 약속을 이행한 것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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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p에서도 칸트적 구성주의, 정치적 구성주의 등등을 검색하니 여러개가 나오네요.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자세한 교통정리 감사합니다!!!

저도 논리적 해석을 지지하는 쪽인데, 제한적인 의미에서 고려된다면 "세계의 우연적 특성"이 정언명령에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정언명령이 가지는 "명령"의 형식입니다. 윤리형이상학정초나 실천이성비판 모두에서 칸트는, 만약 "순수 이성적 존재자"만이 고려된다면 도덕의 형식이 명령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순수 이성적 존재는 순수 이성적 행위를 그냥 할 테니까요. 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당위(normative)의 명령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서술적(descriptive) 진술이 되겠죠.

도덕적 원리가 "명령"이 되는 이유는, 도덕원리들을 고려하는 "우리 인간"이 순수실천이성을 가짐과 동시에 (그러한 순수실천이성을 방해하는) 자연적 경향성을 가진 이중적 존재라는 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정언명령의 의미론적 구조는 "인간은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적 존재자이다"라는 "세계의 우연적 특성", 혹은 비트겐슈타인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삶의 형식 life form"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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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위에서 적었던 것을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a) 칸트의 맥락에서 '거짓 약속'이라는 것은 개념상 보편화될 수 없을 뿐더러, '거짓 약속이 보편화된 사회'라는 것도 우리는 엄격하게 말해서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b) '거짓 약속이 보편화된 사회'라는 것을 아무리 관용적으로 이해하려 하더라도, 그런 사회란 사실 '참된 약속이 보편화된 사회'를 표현하는 다른 명칭밖에 되지 않는다

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사회에서 '거짓 약속'이란, 우리가 '참된 약속'이라고 말하는 것의 다른 언어적 표현 뿐, 사실상 거짓 약속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사회와 우리 사회의 차이는 매우 사소한 언어적 차이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거짓 약속'이라 쓰고 '참된 약속'이라 읽는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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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잘못 전달했네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약속은 그 약속을 이행할 의지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에서의 약속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약속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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