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시다시피, 근대철학적 맥락에서 attribute는 속성으로 번역되고, property는 특성으로 번역되곤 하지만, 현대적 논의에서 property에 대응되는 번역어는 오히려 속성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물론 근세의 property와 현대의 property가 가지는 외연은 같지 않기에, 이 둘에는 다른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이 분명 어떤 점에서는 옳아 보이지만, 근세의 attribution과 현대의 property를 '속성'이란,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번역하는 것은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번역어가 관습으로 자리잡았네요. 이에 대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그럴듯한 설명이라고는 '생각없이 일본에서 유래한 번역어들을 받아들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정도가 끝인데, 혹시 이에 대해 달리 알고 계신 바가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부디 답을 여쭙고자 합니다.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게 있어 attribute은 실체로써 있을 수 있게 해주는 property, mode은 실체임을 유지하면서 바뀔 수 있는 property라고 보시면 됩니다:
We use ‘mode’ when speaking of a substance as being affected or
altered (·if you boil some water its heat is a mode of it·). We
use ‘quality’ when speaking of facts about a substance that
make it belong to such and such a kind (·water’s fluidity is a
quality of it·). And we use ‘attribute’ when talking in a more
general way about what there is to a substance (·water’s
being extended in space is an attribute of it·). Descartes, Principles §56
사실 제가 너무 뭉뚱그려 적긴 했지만, 철학자마다, 그리고 그 철학자의 철학에 대한 해석마다 그 심각성의 수준이 달라질 문제라는 생각이 이제야 드네요.
다만 제가 아는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이를테면 데카르트가 정신은 원리적으로 사유 속성을 가지고(혹은 사유 속성 아래에 있고), 물체는 원리적으로 연장 속성을 가진다고 말할 때, 이 속성, attribution은 어느 개별 실체에 있어 본질적인, 필연적인 무엇을 함축하는 듯 보입니다. (아시다시피 사유 실체의 본질은 사유니까요.)
스피노자는 attribution과 달리 property를 따로 정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에티카』 안에서 property라는 말을 쓸 때는 "본질로부터 따라나오는 무엇"을 의미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며, 그 점에서 property를 attribution과 구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어 E2P40S2Ⅳ에서 "비율이 가지는 공통 특성(common property of proportion)"이라고 쓸 때처럼요.) 반면 attribution은 "지성이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지각하는 무엇(E1D4)"라고 말하구요. (그런데 또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에서는 property와 attribute를 교환 가능한 단어로 사용하는 듯한 구절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현대적 의미에서 속성이라고 쓸 때, 그것은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을 모두 포괄해서 쓰는 용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attribute가 가지는 필연적 함의를 희석시킨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아무리 필연적인 property라고 해도, 만약 attribute가 어떤 본질을 함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그 필연적 property는 근대적인 의미에 attribute에 대해서는 후행해야만 할 것 같이 느껴져요. 즉, 여전히 외연이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또 같은 곳의 §59에서 등장하는 property를 살펴보면 양태를 property라고 말해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And the fact that square on the hypotenuse is equal to the sum of the squares on the other two sides is a property belonging to all and only right-angled triangles. Finally, if we suppose that some right-angled triangles are in motion while others are not, this will be a universal accident of such triangles. Hence five universals are commonly listed: genus, species, differentia, property and accident.
여기서 property는 accident와 대비되는, 어떤 "필연적 속성"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 같은데, 이 점에서 양태와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물론 property가 쓰인 다른 단락을 또 살펴봐야하겠지만요)
말씀하신 단락에서는 "property belonging to all and only right-angled triangles"에 대해서 논하지요. 그러니깐 데카르트는 'property = 필연적 속성'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속성 중에서 필연적인 속성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53을 보시게 되면;
A substance may indeed be known through any attribute at all; but each substance has one principal property which constitutes its nature and essence, and to which all its other properties are referred. Thus extension in length, breadth and depth constitutes the nature of corporeal sub stance; and thought constitutes the nature of thinking substance. Every thing else which can be attributed to body presupposes extension, and is merely a mode of an extended thing; and similarly, whatever we find in the mind is simply one of the various modes of thinking.
이 단락에서 데카르트는 attribute과 mode를 property의 종류들로 보고있는 것 같습니다.
아, 네! 이 단락을 통해 확실히 말씀하신 바가 이해가 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저의 원 질문도 해소되는 것 같네요. 확실히, 적어도, 데카르트의 이 단락에서 국한해서 말했을 때는, attribute와 property의 외연이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속성'이라는 번역어를 공유해도 문제가 없겠네요. 감사합니다!
CUP에서 나온 Kisner의 에티카 번역 서문에 따르면, (제가 알기로 스피노자의 개념적 바탕인 데카르트의 또다른 개념적 바탕이 되는) 수아레즈의 철학에서 (Disputationes Metaphysicae) proprietas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고 합니다: 어떠한 사물에 대해 필연적이지만 그 본질에 속하지는 않는 것. 한편 스피노자는 E1D4에서 이 의미에서의 proprietas를 제외한 사물의 필연적 성질만을 attributum으로 (역시나 수아레즈를 따른 듯?) 정의하고 있어 보입니다. Kisner는 이 구분에 대해, attribute를 사물의 근간이 되는 필연적 속성으로, property를 그에 기반해 성립하는 속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이에 따르면, modes는 properties의 일부가 아닌 셈입니다.) 따라서 둘은, 수아레즈 전통의 개념 체계에서 ‘필연적 속성’이라는 큰 집단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외연을 갖는 셈입니다.
이와 별개로, attribute에 ‘특성’, property에 ‘속성’를 각각 역어로 취하는 게 저는 맞다고 봅니다. Attribute는 현대적 용법에서건 근대적 용법에서건 (가령, 지성이 그 대상의 본질로 여기는 요소들을 attributes로 보는 [수아레즈-데카르트-]스피노자의 정의에서도) 대상에게서 어떤 속성을 귀속시키는, 내지는 발견하는 인식 주체에게 초점을 맞추는 반면 property는 그 대상이 가진 특성으로부터 어떤 성질이 그 대상에게 소유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서요. (어원 상으로도 그렇죠. Attribuere는 ‘귀속하다, 할당하다’를, proprietatem은 ‘소유하다’를 의미하니까요.) 그냥 제게만 있는 초내포적 구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ㅋㅋ
다만 이때의 문제는 characteristics를 attributes와 어떻게 역어 상으로 구별하느냐는 데에 있겠습니다. 다만 현대적 맥락에서는 둘의 구별이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 듯합니다. 다행히도, 둘의 어원도 각각 희랍어와 라틴어로 다르고요!
제가 알기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 아래에서도 수아레즈 식의 정의에서 attribute에 해당하는 것이 본질, property에 해당하는 것이 (필연적이든 우연적이든) 그 본질에서 따라 나오는 속성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attribute와 property를 다시 번역해본다면, 네, 여전히 뭔가 이상하긴 하네요.
저도 그래서 『포트-로얄 논리』를 한 번 참고해봤는데, 여기서는 저희가 이야기하던 흐름과는 조금 이질적인 방식으로 용어를 정의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나는 사물 안에 있지만 그것 없이는 자립할 수 없고, 그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있도록 결정하며, 그 사물에 그러한 이름이 붙도록 야기하는 그 무엇을 한 사물의 방식, 혹은 양태, 혹은 속성(attribute), 혹은 성질이라 부른다. (Arnauld & Nicole 1996 p. 30)
한 관념은, 그것이 본질 안의 제1 속성으로 고려되는 것이 아닌 한, 현실적으로 사물의 본질에 속하는 속성을 대상으로 할 때 한 특성(property)이라 불린다. (ibid. p. 41)
그러니까 이곳에서 attribute는 오히려 현대적 의미의 property에 가깝지만서도, property는 수아레즈 전통의 그 property를 따르는 느낌이네요. 이렇게 보니 제 질문은 간단하지 않은 질문을 간단하게 만드려는 아주 건방진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 어떤 철학자에 대해 논하느냐에 따라 전부 그 답이 달라지는 이야기였네요...
라는 말씀과 달리, 포트로얄의 해당 인용구에서도 attribute를 근본적 속성으로, property를 (편의상?) 그 외의 내재적 속성으로 보는 듯해요. 현대에도 extrinsic property를 차라리 relation으로, intrinsic property만을 property로 부르는 관행이 있음을 고려할 때, 말씀하신 근현대 용법이 뒤집힌 상황은 없는 것 같아요. 차라리
‘본질’에 대한 용법이, 내재적 속성을 의미하는 데에서부터 근본적 속성을 의미하는 데로 현대에 바뀌었다고 보는 게 일견 자연스러운 것 같네요. (Esse의 의미를 생각해서도, 당대에 essentia가 오늘날의 용례보다 덜 무거운 의미를 갖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철학사에는 과문해서 근거는 없습니다만.)
지금 제가 계속 혼란스러운 이유는, 제가 알기로는 당대에도 essence는 그만큼의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스피노자가 "[실체인 신에게] 실존은 본질과 동일하며 하나(E1P20)"라 말할 때나, 로크가 "실체는 단지 성질들을 받치는 것으로 가정된 알 수 없는 무엇(Ⅱ.23.2.)"이지만 그 실체의 실재적 본질은 "알려지지 않은 사물의 내부적 구조(Ⅲ.3.15.)"라고 말할 때, 이 사람들은 본질과 실체(혹은 대상)를 서로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본질은 정말 어마어마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그렇다면 아르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했을 것이란 느낌이 들고요.
그렇다면 attribute도 property도 모두 본질=실체에 의해 소유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본질일 수 있음을 함축하는 용법으로 쓰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바에 따르면 attribute나 property는 그 자체로 본질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아닌 것 같아요. (확신은 없지만요.)
물론 이 이야기는 원래 질문을 한참 벗어난 논제인 데다가, 제가 이에 대해 더 공부하는 것으로 해결될 것 같으니, 굳이 더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은 무의미(제 식견이 너무나 모자라기 때문에...)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쪽이야말로 언급된 철학자들에게 특이한 부분은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철학사에는 과문합니다만) 스피노자의 경우 essentia-existentia 관계에 대한 중세적 논쟁에 대한 응답을 하는 단락이고, 로크의 경우 그의 독특한 인식론-존재론을 펼치고 있는 단락이니까요. 그런데 말을 하려다 보니 당대의 본질 개념과 오늘날의 본질 개념이 뭐 크게 다를 것 있나 싶기도 하네요. 다만 뭔가 신비로움이 덧씌워진 ‘본질’ 대신 ‘내재적 속성’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생긴 것 정도가 아닌가… 하는. (이렇게 보면 주신 포르루얄 인용구는 현대적 용어법 하에서 ‘어떠한 관념은, 내재적 속성 중 근본적인 것이 아닌 한, 현실적으로 사물의 내재적 속성에 속하는 특성(attribute)을 대상으로 할 때 ‘속성’(property)이라고 불린다’ 정도로 환언할 수 있겠네요.) 여하간 재미있는 주제 감사합니다.
현대 ontology는 잘 알려져 있고 이를 언어로 표현방식도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지요. Xml이라는 언어 표현이 1990년 이후 나왔으니 속성이라는 어휘도 제법 바뀌었을 겁니다.
현대 과학적 존재론은 element와 attribute로 위계 구조를 나타냅니다. 기기의 규격, html 등 모든 데이타 구조가 이 구조를 따르지요. 가족관계 증명서를 예로들면 element는 아빠, 엄마, 자녀 등의 구성원의 배치를 표시하고 attribute는 각 구성원의 생일,성별 등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기기 같은 경우 큰 element안에 작은 element가 재귀적으로 끝없이 포함될 수 있지요. 이 두개 어휘로 그 복잡한 세상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요. Property는 attribute와 유사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스피노자, 데카르트 등 현대 과학이 나오기전 그들은 존재론은 현대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론에 알맞게 어휘가 사용되었을 거란데 한표 던집니다.
굉장히 흥미롭네요. 데카르트의 필연성 개념이 굉장히 흥미롭거든요. 데카르트는 일종의 conceivability-possibility를 개진하긴 하지만, 그건 현대철학의 conceivability-possibility와는 사뭇 다르지요. 현대철학에서는 if it is conceivable that p, then it is possible that p와 같은 명제 기반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데카르트는 if x cannot be intuited without also intuiting y, then x and y are necessarily connected와 같은 형식을 띕니다. 위에서 삼각형의 예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삼각형을 직관하는데 있어서 모든 각의 합이 180도라는 성질도 직관할 수 없기 때문에 삼각형은 필연적으로 모든 각이 합이 180도라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스피노자도 이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1p7, E1p11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전 E1d4가 필연성에 대한 정의로 보이지 않습니다).
수아레즈는 잘 모르지만, 데카르트가 수아레즈의 proprietas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인용한 §53을 본다면 말이에요. 그렇다면 수아레즈의 필연성이 정확히 뭔지, 그리고 수아레즈의 필연성이 데카르트와 어떤 것이 다른지, 그리고 그 차이가 어떤 철학적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 보면 재밌는 프로젝트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네요.
제 말의 순서가 바뀐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는 위 단락에서 봤듯이, property를 수아레즈와는 다른 방식으로 씁니다. 그렇다면 그 단어 사용을 다르게 하는 것에 있어서 필연성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고, 그걸로 생각을 전개시켜나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필연성을 언급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본질이 필연성을 야기할 수 있지만 (또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정의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서 언급했습니다. 아무래도 스피노자의 방법론에서 정의가 워낙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쪽으로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E1p7, E1p11은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식 필연성을 사용하는 것 같아서 언급했습니다. E2d2도 언급하셨지만, 파트 2에서 나오는만큼 주의를 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