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가끔씩 서강올빼미에 들어가서 여러 사람들이 올린 글을 조금 읽어보고 약간이나마 대화도 해보고 느낀 것이 그냥 철학 공부를 하지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왜냐하면 평생을 비전공자로서 이렇게 해봤자 아무런 의미 있는 성과도 내지 못할뿐더러 괜한 시간 낭비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느낀 것이 전공자분들이 괜히 전공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또 다시 강하게 들곤 합니다. 오래된 전공자분들의 배경지식과 섬세한 논리 전개 방식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몇 년 전에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철학에서 손 떼고 살아간 적이 꽤 되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곤 하네요. 철학에서 손 떼고 다른 어떤 일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금보다 더 의미가 있을까요? 아니면 철학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 의미가 있고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마땅히 해야만 하는 그런 것이기에 충분히 그런 활동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할까요? 이곳에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조금은 웃길 수도 있는데 저는 나름 진지합니다. 일반인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단순한 자기 만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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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뿐 아니라 전공자도 거의 자기만족하려고 하는 겁니다. 재밌으시면 하시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요. 더군다나 취미로 하신다면 더더욱이요.

근데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철학은 굉장히 외로운 학문이에요. 공학처럼 실험실 같이 쓰면서 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말 그대로 생각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주를 이룹니다. 보통 전공자들은 일주일에 철학에 40-50시간을 쓰라고 합니다. 세미나 + 수업 10시간을 빼면 30-40시간이네요. 이 시간의 대부분은 혼자서 생각하고 자료들을 읽으면서 보냅니다. 이게 서강올빼미가 비교적 활동량이 적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건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보다는 혼자 생각하는 게 메인이거든요. 실제로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현상이 아주 자주 벌어집니다: 혼자서 아주 열심히 10-20시간을 생각하고 교수님을 찾아뵈면 5분 정도의 대화 끝에 할 얘기가 없어지고 사무실을 떠나게됩니다. 그러고 다시 10-20시간을 생각하지요. 원래 그래요, 철학이.

또 철학은 비효율적입니다. 100만큼 투자를 해도 100만큼 나오지가 않아요. 몇십시간동안 생각했던 논리가 말 한 마디에 파훼될 수도 있고요. 그럴 때마다 굉장히 허무하죠. 저 같은 경우는 단락 하나 제대로 적는데 40시간을 넘게 쓴 적도 많아요. 근데 그게 철학인 것 같습니다. 이는 전공자들도 많이 겪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만일 철학 공부가 하고 싶으시면 하되, 외로움을 견뎌내실 수 있어야하며 비효율성에 대한 끈기를 가져야할것 같습니다. 처음엔 힘들지만 결국 내성이 생겨요. 그리고 거듭해서 하다보면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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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왠지 저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전반적인 이해력이 느리고 문장을 구성해내는 능력 또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온라인상으로는 그런 과정이 보여지지도 않고 생각의 결과물만 알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제 주변에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으니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몇십시간동안 생각했던 논리가 말 한 마디에 파훼될 수도 있다는 말 정말로 공감이 가네요. 저는 간접적으로 이것을 온라인상에서 좀 많이 경험을 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항상 제 자신을 탓했죠. 또한 철학은 굉장히 외로운 학문이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어떤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는 말 또한 공감이 갑니다.

저의 하찮은 글에 진지한 조언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철학은 <말 그대로 생각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주를 이룹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제가 비전공자라서 전공자들분의 생활을 잘 모르는데 엄밀히 전공자라면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보다 어떤 주제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거기에 덧붙여 토론하는 식의 공부가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요? 왜냐하면 제 딴에는 철학은 단순히 생각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곁들이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일까요?

혼자서 하는 생각이 주를 이루다보면 아집이나 독단에 쉽게 빠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기도 합니다. 물론 철학은 공학처럼 실험실 같이 쓰면서 하는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생각하는 시간이 주를 이룬다는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으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읽는 시간과 생각하는 시간을 딱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제 경험으로는 책/논문 읽는 시간보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리고 보통 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페이퍼를 쓰고 페이퍼에 대한 점수와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독단에 빠지기 쉽지 않습니다. 논문 출판도 하게 되면 또 달라지고요. 컨퍼런스도 자주 나가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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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저는 인터넷상으로만 접해봐서 잘 몰랐던것 같습니다. 인터넷상으로 도사같은 분들이나 독단에 빠져 있거나 자신의 오류나 잘못되어 있는 생각들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을 좀 많이 봐왔었거든요. 그런 분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었기에 제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어후... 전 그런 적은 없지만 그런 사람들은 철학이 정말 재밌긴 하겠네요 ㅋㅋㅋㅋ (만일 자기 주장에 대한 확신이 있고 반박을 마주하면서 주장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발전시킬 기회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전 제 주장에 확신을 가질 단계는 아니네요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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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드립니다.

철학을 잘하는 분들이 제 글에 대해 논리정연한 비판을 할 때 약간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 예의를 갖추고 감정적 요소를 배제한다는 전제하에서요. 스트레스라기 보다는 철학을 공부할수록 자괴감이 커지는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허무함과 함께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상황에 따라 다른 거 같아요. 데드라인이 얼마 안 남았는데 반박을 들으면 너무 허무하고 스트레스 받는데, 또 데드라인 없는 프로젝트에 대한 반박은 좀 즐기기도 하는 거 같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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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라서 더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있죠...
뭐든지 좋아하고 재밌어서 하면 성과랑은 상관 없이 좋은 것 같아요.
성과가 없어서 오히려 더 좋은거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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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군요.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나름의 성과가 없으면 어떤 의미에서 허탈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미 많은 분들께서 좋은 얘기를 해주셨지만, 한 가지 첨언만 할게요. 아마 인생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라는 얘기입니다.

유의미한 성과라는 말로는 다양한 것이 불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술적인 성과 외에도, 철학 공부를 통해서 자신을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유의미하지 않을까요? 예전과 다르게 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고, 예전에 멈춰섰던 물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고, 예전에는 캐묻지 않았던 것을 조금씩이나마 캐묻기 시작했다면, 그것도 유의미한 성과, 아니 대단한 성과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늘 이 물음을 스스로 되묻곤 해요. '요즘 같은 험난한 시대에 철학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라고 좀 멋있게 꾸며볼 수 있지만, 결국 묻고자 하는 내용은 작성자 분이시나 저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런 물음은 철학을 공부하면서 당연히 생기는 질문이기도 하고, 그 누구나 한번쯤 고려해볼만큼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작성자 분처럼,

이런 비슷한 고민(좀 심하게 말하면 절망)을 겪곤 합니다. 물론 지금도요. 근데 다들 비슷한 느낌이나 고민이 들었을 거에요ㅎㅎㅎ 그래서 자주, 철학자가 모든 힘을 쏟아부은 텍스트나 논문을 단박에 이해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이 이해한 부분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 역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스스로 다독이곤 합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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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철학은 정말 생각의 결과물만 보여지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르니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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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드립니다.

안그래도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 철학은 외로운 학문인데 저는 왠지 느낌적으로 조금은 더 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제 주위에는 철학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다수가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그에 따라 주식이나 코인에 관심이 많습니다. 순수한 호기심 같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나면 먹고 마시고 놀고 이런 것 밖에 없습니다. 오프라인 상에서 진지한 철학적 고민들을 나누고 대화도 해보는 그런 기회를 못 가져보는 것이 조금은 아쉽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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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비전공자로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제 관심에 따라 어떤 텍스트를 찾고, 그 텍스트를 읽고, 요약하고, 여기 올빼미나 다른 통로로 반론을 찾아보는 방식으로 혼자 철학을 공부합니다. 그런데 이 철학으로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낄 틈 하나 없다는 사실에 조금 외로워지긴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외로움보다는 철학 공부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더욱 큽니다. 그래서 여태 전공도 철학과 영 상관없고, 앞으로도 상관없는 진로를 밟을 테지만, 철학을 놓지 않았고, 놓지 않을 거 같아요.

  • 혼자 공부할 때 메소드 연기(?) 철학자들의 문제의식을 마치 제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근엄하게 대하면서 읽곤 해요. 가령, 저는 비판이론을 읽을 때 ‘맑스는 혁명이 성공하면, 인간적인 사회가 올 것이라 했다. 그런데 소련은 인간적인 사회는커녕 베버의 예측대로 관료화된 사회가 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물음을 던졌어요. 이런 순박한 태도가 공부를 재밌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ㅎㅎ

여하튼 그 즐거움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김영건 선생님께서 남겨두신 두 에세이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발췌 대신 링크로 갈음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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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군요.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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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에 시간낭비가 어디있겠어요? 재밌는만큼 하시고 즐길만큼 즐기세요. 자신의 위치를 알고있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취미라는 첫 목적을 덮어버릴 정도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성과가 중요한가요? 철학의 깊은 층위까지 공부하지 않은 마찬가지로 비전문가인 저도 이런걸 공부할때 느끼는건, 정말이지 세상에 정말 새로운것은 없다는것입니다. 어지간한 샹각들은 이미 누군가가 했던 말들이에요. 그렇다고 내 생각이 가치가 없어지던가요? 누군가가 어?! 그거 이미 누가 했던말인데! 왜 배끼심?! 이런 소리 한다고 기 죽으실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사람 생각이 나랑 같은가보지~하고 넘기고 그 사람의 철학도 겸사겸사 배우면 되죠.
철학을 배우는건, 결국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배우는거고, 그것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인생철학을 만들어가는게 재미이고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파이팅입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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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