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형이상학에 대한 두 측면 해석

칸트의 형이상학에 대한 ‘두 측면 해석(two-aspect interpretations)’을 대표하는 연구서나 논문으로 어떤 것을 읽으면 좋을까요? 앨리슨이 이 주제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자라고 알고는 있지만 아직 읽어본 적은 없네요. 혹시 추천하시는 연구자나 텍스트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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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측면 해석"도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갈래가 좀 나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Allison (2004)은 두 측면 해석의 고전이면서도, 강조점을 "인식론적"인 것에 좀 더 두면서 물자체에 대한 꽤나 modest 한 독해에 속합니다. 반면 두 측면 이론 중에서도 소위 물자체적 측면을 대상의 내재적 속성 (intrinsic properties)으로 독해하는 이들은 좀 더 "형이상학적" 독해에 가까워집니다. Langton (1998)이 이 지점에서 많이 읽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형이상학적 측면을 더 강조하게 되면, 즉 대상의 내재적 속성의 역할을 더 인정하게 되면 Van Cleve (1995)와 같이, 꽤나 "두 세계 해석"과 유사한 지점에까지 이릅니다.

Allison, Henry E. (2004). Kant’s Transcendental Idealism: An Interpretation and Defense. Yale University Press.

Langton, Rae (1998). Kantian humility: our ignorance of things in themselv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Van Cleve, James (1999). Problems from Kant. New York, US: OUP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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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R B65-66 이 관련이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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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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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물자체 개념 해석과 간접적으로 연결된 저작을 읽다가 알게 된 구절이 있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유작에 "the thing in itself (ens perse) is not another object but another relation (respectus) of the representation to the same object"라는 구절이 있는데, 혹시 두 세계 해석 지지자는 이 구절을 근거로 "칸트는 같은 대상에 대한 두 측면을 논한 것이다"라는 두 측면 해석에 대해 어떻게 반박하는지 아시나요? (AA XXII) 제가 보기엔 두 측면 해석이 옳다고 못을 박아버리는 구절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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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그들이 해당 구절을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앞서 "형이상학적" 두 측면 해석은 두 세계 해석과 유사해진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과정은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의 대상은 관계적 속성과 비-관계적(혹은 내재적; intrinsic) 속성을 가집니다. 관계적 속성은 대상과 주체 사이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으로서, 모든 현상적 지식과 경험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로 환원되지 않고, 대상 자체에게 고유하게 귀속되는 모종의 형이상학적 속성들이 있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주된 이유는, 관계로서의 현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계의 근거가 대상 자체에 내재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라이프니츠의 견해를 칸트가 받아들였다는 해석이고, 실제로 칸트가 비슷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하긴 합니다).

아무튼 대상 자체에 내재적으로 속하는 이 비-관계적인 형이상학적 속성들은, 관계적 속성들과 존재론적/형이상학적으로 아예 다르며 (different in kind), 따라서 동일한 대상이 현상계의 속성과 예지계의 속성을 모두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라는 서술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이들은 주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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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에 등장하는 그 구절이 두 측면 해석 지지자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텍스트상의 증거로 사용되는 것 같지만, 두 세계 해석 지지자들도 그만큼 강력하고 무시하기 어려운 다른 텍스트상의 증거들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해석을 지지하는 것 같아요. 가령,

The two-world camp, to the contrary, can refer to the fact that Kant makes a distinction between mundus sensibilis and mundus intelligibilis, a sensible and a noumenal world. In addition, there are numerous passages in which Kant holds that appearances, as representations, exist ‘merely in us’ and not outside the subject (A129). Appearances are ‘only representations of things’ (B164), ‘nothing but representations’ (A250), ‘merely representations in us’ (A387), and the like. They are not ‘in the same quality as they are in us as things external to us and subsisting by themselves’ (A386) and ‘cannot exist at all outside our mind’ (A492/ B520). Kant flatly says that ‘that which we call outer objects are nothing other than mere representations of our sensibility’ (A30/B45).

Michael Oberst, "Two Worlds and Two Aspects: on Kant’s Distinction between Things in Themselves and Appearances", Kantian Review, Vol. 20 (1), p. 55.

저는 이 논쟁을 아주 깊게 파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긴 하지만, 칸트 텍스트 내부에 상충하는 구절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두 세계 해석으로 보는 쪽이 더 설득력 있는 구절들과 두 측면 해석으로 보는 쪽이 더 설득력 있는 구절들이 모두 존재하다 보니, 특정한 텍스트상의 증거만으로 상대편을 완전히 논파하기는 힘든 논쟁 구조가 아닌가 해요.

다만, 개인적인 의구심이 있다면, 이렇게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구절들이 칸트의 텍스트 내부에 모두 존재한다면, 결국 그 책임은 칸트 본인에게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물론, 칸트를 좀 더 정합적이고 관대하게 읽으려면 '두 측면 해석'을 따르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만, 애초에 칸트 본인이 현상과 사물 자체의 관계에 대해 스스로도 정리가 잘 안 된 입장을 제시했기 때문에 후대에 길이길이 물어뜯길 만한 여지를 남겨준 것이 아닌가 하는, (그래서 두 세계 해석이 칸트의 최종적인 의도와는 다소 어긋난다고 해도, 적어도 칸트 철학 내부에 다소 불명료하게 남겨져서 충분히 고민해 볼 만한 지점은 잘 짚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 그래서 칸트를 '두 세계 해석'으로 독해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 두 세계 해석의 난점을 타파하고 칸트보다 칸트의 철학을 더 급진적으로 밀어붙인 헤겔이야말로 훌륭한 '포스트-칸트적' 철학자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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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쪽으로 연구하시는 교수님께서 사실 이 논쟁은 거의 끝난거나 다름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양쪽 다 해석적인 서포트가 있어서 텍스트로는 완전히 underdetermine되고, 그냥 칸트가 살아나서 정해주길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물론 옛날에 들은 얘기라 확실하진 않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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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아니, 충분히 그렇게 말씀하실 법도 한 것 같아요. 게다가, 철학자가 고문헌학자가 아닌 이상, 결국 칸트가 텍스트상으로 뭐라 말했는지 이상으로 나가야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1) 두 측면 해석이 '철학적으로는' 좀 더 설득력 있는 입장이다. (2) 다만, 칸트 본인이 정말로 철저한 두 측면 해석 옹호자였는지는 '텍스트상으로는' 좀 아리송하다. (3) 그러니, 칸트 옹호자들은 칸트가 실제로 뭐라 주장했든 '두 측면 해석'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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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 분은 두 세계 주의자셨습니다 ㅋㅋㅋㅋㅋ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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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은 논문에서 유사한 얘기가 진행되기에 옮겨둡니다.

In this paper, it will not be possible to substantiate the main thesis of the “two-aspect-view” in full. Instead, I will limit myself to just a few remarks on this subject. As James Van Cleeve has pointed out, a textual basis does not provide a definitive criterion for establishing if either the “two-worlds-view”or the “two-aspects-view” is plausible, since passages can be found in the Critique of Pure Reason to support both positions. This is determined by a certain inaccuracy stemming from Kant himself. (341)

다만 저자는

I do not believe, however, that every passage carries the same weight, since Kant concentrates explicitly on an explanation of the difference between appearances and things in themselves in one particular section of the Critique. It can therefore be said that if he has ever provided a reliable illustration of his position, then it is to be found in these pages: since the concepts of phenomena and noumena are directly discussed here, a lapsus calami is much more unlikely than elsewhere in the Critique. (341)

라면서 두 측면 해석을 지지해요.

그러면서 두 측면 해석의 대표로 위에서 @Herb 님이 소개한 Langton의 해석을 소개해요. 요점은 다음과 같고요.

– Appearance = object considered with regard to its relational properties
– Thing in itself = object considered with regard to its non-relational properties (342)

마지막으로 헤겔을 언급하신 김에 니체도 끼워팔자면, "칸트가 두 측면 해석을 내세웠다고 하더라도, 니체의 칸트의 물자체 비판은 유효하다"가 지금까지 제가 인용한 논문(Riccardi 2010)의 핵심 주장입니다. 지금까지 대개 "니체는 칸트를 '두 세계 해석'으로 독해했고, 그런 칸트를 비판하고 넘어서려고 했다"가 학계의 주류 입장인 듯한데, 시도가 참신해서 저도 읽어봤습니다. :g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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