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을 읽으면서 저도 이 부분이 좀 까다로웠습니다. 우선 이 논의는 '있음'의 의미 중 첫째가는 의미, 즉 실체 개념을 검토하는 지점에서 등장한다는 점이 파악되어야 할 것 같아요. 실체의 후보자인 기체, 본질, 유, 보편자를 검토하는 지점에서 질료 개념이 갖는 문제가 좀 더 명료하게 보이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약 우리가 질료를 기체로서 받아들이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동상을 예시로 들어볼게요. 이순신 동상을 존재하게끔 만드는 토대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동상의 우연적 속성을 하나씩 지워볼 수 있습니다. 그 모양이라든지, 서 있는 위치라든지, 그 크기라든지 등등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특정한 모양을 한 청동을 동상의 기체(hypokeimenon)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 청동 또한 일정한 길이와 속성, 성질들을 갖고 있으니, 또 그 청동을 이루는 재료적인 것들로 파고 들어갈 수 있겠죠. 근데 문제는, 이 과정의 끝에서 주어질 법한 기체는 결국 어떤 성질이나 속성, 크기, 형상 모두를 갖지 않는 기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질료가 기체라면 그것은 한 사물을 바로 그 사물이게끔 하도록 만드는 명확한 개별성과 지칭 가능성을 지녀야 하는데, 막상 그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보니 정반대의 결과, 저 둘 모두를 지니지 못한 것이 되어버렸다는 게 문제인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제7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7권 1029a11-27
왜냐하면 만일 질료가 실체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것이 있는지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왜냐하면 다른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분명 밑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다른 것들은 물체들의 양태들이거나 그것들로써 만들어진 것이거나 그것들의 능력이고, 그런가 하면 길이나 넓이나 깊이는 양적인 것들이지 실체들이 아니요(양적인 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런 것들을 자기 안에 속하는 것으로 가지고 있는 첫째가는 것, 바로 이것이 실체이다. 그러나 길이와 넓이와 깊이를 덜어내면, 우리는 이것들에 의해 제한된 어떤 것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데, 결국 이런 관점에서 그 문제를 고찰하는 사람들에게는 질료가 유일한 실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 결국 그 최종적인 것은 그 자체로서는 어떤 종류의 것도 아니요 양적인 것도 아니요 다른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것들의 부정태들도 아닌데, 그 이유는 이것들은 부수적인 뜻에서 그것에 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질료가 실체라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일반적 의견에 따르면 분리가능성과 ‘이것’은 주로 실체에 속하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형상과 둘로 이루어진 것이 질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실체로 생각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질료를 기체로 간주한다면, 우리가 접하는 모든 대상들을 형상과 질료로 구분할 수 있게 되고, 계속 추상을 진행한다면,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형상을 갖지 않는 질료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 거죠.
다른 관점에서, 특히 주어와 술어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어요. 만약 질료가 실체라면, 그것은 다른 것들을 술어로 갖지만, 다른 대상들은 질료를 술어로 가지지 않겠죠. 근데 우리가 질료를 규정하는 술어를 하나씩 추상하게 된다면, 결국 질료는 규정성과 개별성을 갖는 주어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규정되지 않는다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얘기로 볼 수 있겠습니다.
TL;DR: 만약 질료를 기체로서 간주하게 된다면, 분명 개별성과 규정성을 지녀야 하는 것이 오히려 무규정적인 것이 되어버린다는 게 문제인 셈이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를 기체로서 간주하는 입장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형상과 본질에 대한 논의에서, 형상을 제일 실체(prote ousia)로 제시합니다.
...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나 형이상학에 좀 더 빠삭한 선생님들의 도움을 기다려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