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에는 정말 젬병이지만, 한번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ㅎㅎㅎ... 제가 틀린 주장을 할 수도 있으니 꼭꼭 다른 문헌과 교차 검증을 해보시길 바라요!
올려주신 질문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보편자는 어떤 형이상학적 지위를 갖는가, 라는 질문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형이상학 제7권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체의 네 가지 후보자에 대한 논의가 유용할 듯 싶습니다.
해당 권에서는 기체, 본질, 보편자와 유를 각각 검토하는 데, 우선 마지막 두 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기각됩니다. 그러니까 보편자와 유는 실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입니다. (우선 지금까지 논의된 실체는 감각 가능한 개별물인 복합실체가 아니었다는 점만 짧게 짚고 넘어갈게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만약 어떤 것이 실체라면 다른 것들과 구분되어 가리켜져야 하고, 특정한 이름으로서 불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가 서로 다른 각각의 개별자에 공통적으로 속한다는 까닭에 실체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주장해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제7권(Ζ), 1038b10-15
그 이유는 첫째로 각자의 실체는 각 대상에 고유하고 다른 것에 속하지 않지만, 보편자는 공통적이기 때문인데, 그 본성상 여럿에 속하는 것을 일컬어 보편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것의 실체이겠는가? 모든 것의 실체이거나 아무것의 실체도 아닐 터인데, 모든 것들의 실체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것 하나의 실체라면, 다른 것들도 그것과 똑같을 것인데, 그 까닭은 그것들의 실체가 하나이고 본질도 하나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 역시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체에 대해 술어가 되지 않는 것이 실체라고 불리지만, 보편자는 항상 어떤 기체에 대해 술어가 된다.
예컨대, 우리가 만약 동물이라는 보편적인 유를 실체라고 주장한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이 동물이라는 보편자나 유는, 주어로서 분리 될 수 있고, '이것'이라고 지칭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선 동물이라는 유나 보편적 규정은 하나의 개별적인 동물에만 속하는 게 아니라, 라마, 코끼리, 개미핥기 등 각 개별적인 동물들에 대해 공통적이기 때문에, 동물이라는 유는 그 자신에 고유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실체나 본질을 가질 수 없겠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편자는 실체가 지녀야 하는 주요 표징으로서 ‘기체성’을 지닐 수 없어요. 이것은 기체성의 의미에 연관됩니다. 어떤 것이 기체라면 그것은 다른 것들에 의해 서술될 수는 있지만(또는 술어로 가질 수 있지만), 다른 것들을 서술하는 것은 아닙니다.(그것은 다른 것들의 술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유와 같은 보편자들은 가리켜지는 실체에 대해 술어가 되는 까닭에, 엄밀한 의미에서 실체가 결코 되지 못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데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요. 보편자나 유가 엄밀한 의미에서 실체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 자체로 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고요. 근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가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실체를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그 자체로 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셈이죠. 이 부분은 형이상학 7권에서 제시되는 이데아 비판과도 유사한 맥락을 지니게 됩니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보편자를 실체로서 이해하게 된다면, 동일한 술어를 갖거나 동일한 유에 속하게 되는 개별자들이 각자의 본질에 있어서 모순된 규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있어요. 설령 개별자들 각각 속할 수 있는 보편자가 있다고 한다면, (가령 인간의 이데아, 기린의 이데아 등등) 그렇다면 이들을 공통적으로 동물이라는 유나 보편자에 속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동물이라는 유가 왜 자기 자신과 일치하지 못하는가 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형이상학 제7권 1039a25-33, 1039b8-16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아! 이 부분도 참 재밌는 얘기인데요, 이 부분은 형이상학 제5권의 "부수적인 것(kata symbebekos)"와 형이상학 7권의 본질 부분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아요.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우연적인 속성은 본질에 기생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노란 민들레를 떠올려보세요.
민들레는 노랗습니다. 근데, 그게 민들레의 본질적인 규정은 아니겠죠.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른다면, 민들레의 본질은 민들레 그 자체에 대해서 일컬어지는 규정으로부터 파악되겠죠. 속성은, 단지 실체가 우연적으로 갖는 부수적인 것으로서, 감각 경험을 통해서 파악될 수는 있습니다. 가령 이 민들레는 노란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나 노랑 자체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노랑 자체는 개별적으로 지시될 수 있고, 주어로서 분리될 수 있는 실체를 갖고 있지 않으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나, 속성이나 성질 같은 보편자의 독립된 실재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의미의 보편자 자체를 거부하느냐, 그건 또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결국 도움이 크게 되지는 않겠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온건한 유명론자의 입장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