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굉장히 공부적으로 부족한 사람이니, 사소한 사견에 불과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역으로 철학을 공부한 다음 문학책들을 읽으면 그 저서들이 담고 있는 철학적 주제가 눈에 띌 수는 있어도, 그 반대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철학은 논증인데, 아무 바탕 없이 플롯과 대화로 이루어진 산문 속에서 그 논증 구조를 찾아내기란 무지하게 어려울 것 같거든요.
현대 프랑스 철학에 아무런 조예가 없는 사람으로서 이 경험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방인>을 읽으면서 어떤 철학적 함의도 못 끌어냈었습니다. 'ㅋㅋ 재밌당' 이게 끝이었어요. 작가가 담아낸 어떤 존재론이나 윤리학적 논증의 구조를 전혀 읽어내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소용있을 지는 잘 모르겠어요. 말씀드렸듯, 그 역은 몰라도요....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신지에 따라, 철학 공부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1) 특정한 철학 텍스트, 철학자, 철학적 주제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시라면, 단순히 고전적 소설만을 읽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철학자와 소설가가 종종 유사한 주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그들의 문제의식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자들 사이에서조차 문제의식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데, 철학자와 소설가의 문제의식이 일치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겠죠.) 특별히, 소설은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독자가 이야기에 부여할 수 있는 의미의 폭이 대단히 넓은 만큼, 소설의 이야기가 현대철학의 아주 테크니컬하고 세부적인 논의와 곧바로 연결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오히려 소설을 바탕으로 철학에 접근하려는 시도란 자칫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자의적인 것이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똑같은 작품을 읽고서도, 어떤 사람은 그 작품을 무신론이나 염세주의적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토지 개혁에 관한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2) 그렇지만 몇몇 경우에는 소설을 읽는 것이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키에르케고어의 『유혹자의 일기』는 미적 실존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비판을 소설 형태로 형상화한 작품이고, 사르트르의 『구토』 같은 소설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이야기의 형태로 형상화한 작품이니 말입니다. 또한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해석하는 방식대로 『햄릿』을 읽어보거나, 들뢰즈가 트루니에의 『방드르디』를 해석하는 방식대로 『방드르디』를 읽어보는 것도, 그 철학자들의 관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 자신이 쓴 소설이나, 철학자가 직접 소개하는 소설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는 것은 그 철학자에게 접근하는 데 분명히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 철학자의 입장과 소설의 이야기 사이의 연결점이 분명하게 보장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떼어놓고 보기가 힘들죠 소설에서 기안한 철학이론도 많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분석철학 정도만 제외하면(이쪽에서도 크립키처럼 햄릿이나 성경같은 고전을 예시로 들기도 합니다) 읽어둬서 나쁠 게 없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그 지역의 사고방식에 어느정도 익숙해지질 수도 있고요.
추천하는 작품은 본인이 재밌을 것 같은 작품을 보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왕 고전을 읽으실 거라면 영미권에선 메리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독일어권에선 말씀하신 카프카의 소설들이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