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성찰> 질문

안녕하십니까. 아직 철학에 입문한 지 얼마되지 않아 매번 질문만 하게 되네요.

혹시 답해주실 선생님 계실가요?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에서 두번째 인과론적 증명 시작부분의 한 문단을 발췌해왔습니다. (이현복,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74p)

그런데, 만일 내가 나로부터 나온다면, 나는 의심하지도 원하지도 않을 것이며, 단적으로 그 어떤 것도 나에게 빠져 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완전성들에 대한 관념들이 내 안에 있다면, 나는 그 모든 완전성들을 나에게 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내가 바로 신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나에게 빠져 있는 완전성들이 이미 내 안에 있는 완전성들보다 획득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반대로, 나, 다시 말해, 사유하는 것, 혹은 사유하는 실체가 무로부터 출현하는 것이 이 실체의 우유성들에 불과한,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에 대한, 인식들을 획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 이 부분부터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제 나름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지각하는 신의 관념들에 포함되는 완전성은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전지성, 전능성, 무한성, 비의존성 등등이 있다. 이 중에서 예컨대, 전지성, 전능성은 나에게 빠져있고, 무한성, 비의존성만 내(신)가 가지고 있어서 전지성, 전능성이 이미 내 안에 있는 무한성, 비의존성보다 더 획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나는 무한실체이며 제1원인이다. 제1원인이라는 것은 내가 무로부터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 어려운 것도 했는데 내가 이 무한실체의 우연한 성질에 불과한 전지성, 전능성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냐?

이런 식으로 이해해봤는데 완전히 이상한 상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만일 내가 더 큰 저것을 나로부터 얻는다면, 적어도 나는 더 쉽게 가지게 되는 이것들을 나로 하여금 거부하지 않게 했을 것이고, 또 내가 신의 관념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지각하는 것들 가운데 다른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1)그것들에서 만들어내기가 더 어렵게 보이는 것은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2)그것들에서 만들어내기가 더 어려운 것들이 있다면, 확실히 (3)그것들 또한 나에게 더 어렵게 보일 것이다. 만일 정말 내가 갖고 있는 나머지 것들을 나로부터 얻는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4)그것들에서 내 힘이 한정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그것들 퍼레이드가 나오네요..첫번째, 두번째 그것들은 ‘내가 신의 관념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지각하는 것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3)(4)그것들은 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든지 읽어주시는 선생님들 죄송합니다. 배경지식상 모르는 것이 있어서 질문한다는 느낌보다 늘 독해력이 부족해서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 질문하는 것 같아서요. 며칠 동안 고민해봤는데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질문드립니다 ㅠ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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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려운 단락을 가져오셨어요. 당장 답을 드리고 싶은데, 저도 해야되는 게 있고 워낙 어려운 단락이라 며칠 걸릴 것 같네요. 일단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단락은 웬만한 전공생한테도 굉장히 어려울 거에요. 저도 <성찰>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인데 굉장히 어려워요. 배경지식도 조금 필요하고요. 그러니깐

독해력이 부족하신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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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어려운 단락이었군요.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yhk선생님! 나중에 혹시 시간 괜찮으실 때 알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blush: 좋은 하루 되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너무 바쁘고 올려주신 단락도 어려워서 몇 주째 답을 못드리고 있네요. 일단 제가 써놓은 것만 올릴게요. 미완성인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보단 "답을 해야하는 걸 의식하고 있고, 답을 작성 중에 있다" 라는 정도로만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언제 완성할진 모르겠지만요... ㅜㅜ

작성 중:

사람들이 <성찰>을 저 번역으로만 읽는 게 아니어서, CSM - The Philosophical Writings of Descartes Vol II 페이지도 같이 써주시면 도움주기 편할 것 같습니다. 첫번째 인용구 같은 경우는 CSM II 33 에서 나오네요. 그리고 CSM 옆에 적혀있는 AT (원본) 도 같이 적어주시면 도움 주기가 쉽습니다. 그러니깐 (CSM II 33; AT VII 48) 이렇게 페이지 써주시면 편할 것 같네요. 특히 올려주신 저 부분만 봤을 때는 저 한국어 번역도 의역이 꽤 있어서 여러 번역을 번갈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CSM 번역도 의역을 많이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단락을 올려주셨어요. 저도 <성찰>을 열심히 본 편인데, 이 부분은 다시 봐도 헷갈리네요. 일단 써볼게요. 일단은 데카르트가 어떤 맥락에서 이 얘기를 하는지를 봐야합니다:

If one concentrates carefully, all this is quite evident by the natural light. But when I relax my concentration, and my mental vision is blinded by the images of things perceived by the senses, it is not so easy for me to remember why the idea of a being more perfect than myself must necessarily proceed from some being which is in reality more perfect. I should therefore like to go further and inquire whether I myself, who have this idea, could exist if no such being existed (CSM II 32-33, AT VII 47-48).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신 것 같지만, 세번째 성찰에서는 존재의 정도로써 신의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P1: 관념은 무언가에 의해 생성됐다.
P2: 무에서 무는 올 수 없다 (ex nihilo, nihilo fit)
P3: 관념이 생성되는데 있어서 더 높은 정도의 존재를 가질 수 없다 (P1, P2).
P4: 나는 완벽한 관념을 갖고 있다.
P5: 완벽한 관념은 완벽한 것이 생성했다 (P3, P4).
P6: 나는 완벽하지 않다.
C: 완벽한 관념은 내가 아닌 내가 아닌 완벽한 것 (신) 이 생성해냈다. (P5, P6)

이렇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데카르트는 P6에 누군가가 반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찰>은 데카르트가 우리로써 하여금 성찰하게 하는 책이고, 그 성찰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집중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집중을 할 때에는 P6 이 사실인 것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P6에 대한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의심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올려주신 인용구입니다.

P6가 거짓이고 우리가 완벽하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어디서 올까요? 이 질문은 인용해주신 단락 전 단락에서 다룹니다:

From whom, in that case, would I derive my existence? From myself presumably, or from my parents, or from some other beings less perfect than God.

그러니깐 데카르트는 P6에 대한 반박을 제시하고, 그 반박이 사실일 경우 나의 존재가 나로써 온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인용구의 첫 문장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이유는

이것이 됩니다. 여기서 "왜냐하면"에 집중을 하셔야합니다. 제가 그 어떤 것도 의심하고 원하고 결핍하지 않는 이유는 제가 모든 완전성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는 인과적 증명에서 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봤듯이, 인과적 증명에 의하면 완벽한 관념은 완벽한 곳에서 옵니다. 그리고 이 완벽한 것이 내가 아닌 무언가에서 왔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을 언급하기 위해서 이 단락이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이때 내가 완전성이 원천인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경우에는 제가 신이겠지요.

그 다음에 이 단락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나옵니다:

일단 이 문장은 의역이 조금 들어가있어요. 원본에서는 완전성 (perfectum) 이 들어가있지 않습니다:

Nec putare debeo illa fortasse quae mihi desunt difficilius acquiri posse, quam illa quae iam in me sunt.

직역하자면,

나는 또한 어쩌면 내게 부족한 것들이,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보다 더 얻기 어렵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입니다. CSM 영역이 이걸 더 잘 캐치하고 있네요:

I must not suppose that the items I lack would be more difficult to acquire than those I now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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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느릿하게, 같이 공부를 한단 느낌으로 답변을 적고 있다가, 이미 선생님이 훨씬 더 충실한 내용과 가독성 좋은 문체로 답변을 남겨주셨으므로 제 답안은 폐기할 것이지만, 스스로 생각한 것을 필기로 남겨놓을 겸 (그리고 선생님의 의견도 들을 겸) 이곳에 약간의 첨언을 두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완전성들에 대한 관념들이 내 안에 있다면, 나는 그 모든 완전성들을 나에게 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내가 바로 신일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이 문장 자체가, "그렇다면 내가 신이라고 해보자"로 이어지는 어떤 이어지는 반박의 전제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완성된, 독립된 논증이라고 읽었었어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But all this is impossible, First, though it is true that there is a gradual increase in my knowledge, and that I have many potentialities which are not yet actual, this is all quite irrelevant to the idea of God, which contains absolutely nothing that is potential; indeed, this gradual increase in knowledge is itself the surest sign of imperfection. (CSM II 32, AT VII 47)

주지하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고려하고 있는 구절 이전에서부터 데카르트는 관념의 실재성에 기반한 신 존재 증명에 대해 가능한 여러 반박들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사실은 내가 신에게 귀속하고 있는 이 완전성이란 것이 내 안에, 다만 잠재적으로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신이 완전하고 무한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신은 이미 신에게 가능한 모든 것을 현실태로서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은 지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 즉시 실현하지만, 유한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내 안에 있는 완전성들에 대한 관념을 나에게 주지 않은" 그 순간 바로 내가 신이라는 가정은 거부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CSM Ⅱ 33에 있는 저 문장은 반박하는 논증의 전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완결지어진 논증처럼 느껴지구요.

혹시 이어질 내용에 이런 해석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면 괜한 호들갑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