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학습 방향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의과대학에 재학하다 군입대를 한 학생입니다. 내년 말에 전역하고 내후년에 복학하여 2030년에 학부졸업 예정입니다. 졸업 후에 의학철학을 전공하여 학자로서의 진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1. 제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저는 대학원 입학 때 30세가 됩니다. 다른 분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상태로 학업을 이어나갈 것 같은데, 이정도 나이가 추후에 학계에 일자리를 구하는데 있어서 크게 불리하게 작용할지 궁금합니다.
  2. 지금 당장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막막합니다. 저희 단과대학은 타 학과 캠퍼스와 떨어져 있어서 철학과 수업을 청강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입문서를 골라 읽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번에는 논문을 읽고 요약한 뒤 그를 반박하는 에세이를 짧게 써본 적도 있긴 합니다. 이렇게 입문서, 논문들을 요약해 보고, 제 나름대로의 견해를 에세이의 형태로 써보는 것으로 대학원 입학 전 대비는 충분할까요? 대학원 입학 전에 철학적 기본 지식과 글을 읽고 쓸 때 필요한 철학적 기술/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싶습니다.
  3. 대학원에 입학하면 과학철학(의학철학)을 전공할 계획이라, 입학 전에는 분석철학의 나머지 큰 주제들을 공부할 생각입니다. 형이상학, 심리철학, 언어철학, 인식론, 메타윤리학 등이 그러한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이들 전부 어느정도의 수준으로 해두어야 할지 궁금합니다. 특히 관심있는 분야는 형이상학입니다. 이들 분야를 얼마나 파고들어야 할지, 파고든다면 또 어떻게 파고들어야 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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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을 다니시다가 철학을 하실 예정인 거면, 특히 학계에 관심이 있으신거면 아주 큰 commitment가 있으시다는 걸로 가정을 하고 글을 쓰겠습니다. 1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2,3만 코멘트를 하겠습니다.

본인의 견해를 제시하는 에세이를 쓰는 건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적어도 1-2주에 한 번씩은 쓰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길 필요는 없고 2-3페이지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많이 쓸 수록 좋습니다. 일주일에 2-3개씩 써도 좋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들겠지만요. 더 긴것도 가끔씩 써주시면 좋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수업을 직접 들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피드백을 받는 게 아주 중요하거든요. 혼자 공부하게 되면 잘못된 길을 가기 너무 쉽습니다. 이공계랑 다르게 철학은 명쾌한 답이 있는 게 아니라서 직접 보고 피드백을 주는 게 아니라면 독학으로는 너무나도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영어로 적으신 게 있다면 제가 부족하더라도 봐드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분석철학으로 학계 진출을 생각하신다면 영문 에세이 작성도 선택이 아닌 필수 아닌가 싶습니다.

의과대학을 다니신다니 영어는 어느 정도 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형이상학은 van Inwagen - Metaphysics가 유명합니다. 한 챕터를 읽고 그에 대한 반박 글을 2-3페이지 작성하시고, 작성이 끝나시면 반인와겐이 적어둔 Further Reading 을 읽으시면서 본인의 견해를 확장시켜나가시면 됩니다. 의학철학을 하는데 형이상학이 어느 정도 필요할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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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옥의 길을 걸으시려고 하시는지 모르겠다만 :joy:

나이가 적은 편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많은 편은 아니에요. 어차피 박사 과정이 워낙 오래 걸리는 분야이고, 한국에서 오래 공부하다가 해외에 나가서 학위를 따느라고 엄청 늦게 학위를 받는 경우도 많아서요. 제가 아는 한 교수님은 한국에서 박사를 하다가 39인가에 박사하러 영국 나가셨어요.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대부분의 철학과 학부생보다 더 기본기가 더 뛰어나실거에요.
그리고 사실 한국의 철학과 대학원은 들어가는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언급하신 형이상학이나 심리철학 등 외 분야의 입문서도 두루두루 살펴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어차피 진짜 공부는 대학원에서 시작이고, 대학원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만 공부할 수는 없어요. 학위를 마치고 강사 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아쉽게도 수업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니, 다른 학부생보다 관심 영역 외 분야에 관한 기초 지식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적절한 비율을 맞춰서 다른 분야도 조금씩 보세요. 그러다보면 관심 분야가 바뀔 수도 있고, 다른 영역에서 배운 아이디어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칸트 전후 근대 대륙 철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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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sten 님과 비슷한 결에서 추가적으로 적어보자면...

가방 끈이 길어질수록 본인이 접하는 철학적 주제들이 점점 좁아집니다 (대신 점점 깊어지겠지요). 무슨 말이냐면, 석사 박사로 갈수록 자신의 주전공이 아닌 철학적 주제들을 공부할 시간과 여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에 입학하기 이전의 학부기간이야말로 아무 선입견없이 다양한 철학적 전통들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전공도 아닌 분야를 왜 공부해야 하는냐? 구덩이를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처럼, 지적 배경이 한정적이면 한 분야를 깊게 이해하는 데도 결국 걸림돌이 됩니다. 자기 주전공 분야는 솔직히 대학원 가서 깊게 공부해도 늦지 않아요. 학부 때 일정 깊이 이상 심화된 공부를 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고요. 때로는 넓이가 깊이를 가능하게 하고, 학부시기는 넓이를 확보하는데 매우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주전공 공부에 필요한 분야들의 기본기를 잘 닦아 놓으면 매우 좋습니다. 형이상학, 심리철학, 언어철학, 인식론, 메타윤리학 등의 분야에서 대표적인 "고전"으로 꼽히는 논문들이나 책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언어철학 분야에서는 프레게, 러셀, 크립키와 같은 이들이 꼽히겠죠. 혹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Syllabus나 reading list 들을 참조하셔도 좋습니다.
수준은 해당 분야에 흥미가 생기면 깊게 파고들어도 좋지만, 흥미가 안생기고 지루한데 억지로 붙들고 있을 필요는 딱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닌 "해야 하는 공부"는 재미도 없고 읽어도 별로 와닿지도 않고 뭐 그렇습니다. 흥미가 안생기는 분야는 그냥 찍먹 정도 해두고, 나중에 본인 공부를 하다가 이 분야를 다시 봐야겠다는 동기가 생기면 그 때 제대로 공부하면 됩니다.

2번과 같은 공부는 "수동적"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읽으면 좋다고 하는 고전들의 목록이 주어져 있고 나는 이 주어진 목록의 논문들과 책을 읽는 것이니깐요. 그런데 저는 이러한 수동적 공부와 별개로 "능동적" 공부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계에 진입하고 이것을 업으로 삼을 생각을 한다면요. 제가 말하는 능동적 공부는 자신의 관심사와 흥미, 필요에 따라 자기주도적으로 공부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논문 A를 읽고 이 논문이 비판하고 있는 논문 B가 궁금해지면 직접 논문 B를 읽어보는 것입니다. 논문 B와 전혀 다른 분야의 논문 C가 연결되어 있으면 이번에는 논문 C를 직접 읽어보는 것이죠. (논문들을 비판적으로 읽고 나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필수겠죠.)
사실 이 과정이 대학원 이상에서 연구를 해나가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학원 수준의 능동적 연구는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렇게 혼자 주도적으로 공부를 해나가는 경험이 결국 나중에 대학원에 가서도 빛을 발합니다. 또한 내가 단순히 철학 "독자"가 아닌 철학 "연구자"의 길에 적성이 맞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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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에세이 작성해가면서 대학원 전에는 좀 다양한 영역을 공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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