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일단 비트겐슈타인은 '통약불가능성'이라는 것 자체가 허구이고, 그래서 이런 가능성은 성립조차 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보니, AI와 AI 사이의 '통약불가능성'이나 AI와 사람 사이의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상상도 허구라고 할 수 있겠죠.
가령,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다니는 소리를 듣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서 "저건 언어가 아니라 그냥 옥구슬 소리이다."라고 할 뿐, "옥구슬은 사실 언어를 말하고 있지만, 옥구슬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는 통약불가능해서 우리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이런 상황처럼, 완전히 '통약불가능한 언어'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란 사실 그 언어가 애초에 아무런 언어도 아니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죠. (로티의 지적대로, '통약불가능한 언어'란 '보이지 않는 색깔'이나 '둥근 사각형'처럼 일종의 형용 모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챗지피티 같은 오늘날 AI의 기반이 되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기본적으로 인간 언어의 패턴을 모방하고 있지 않나요? AI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지는 다소 의문스럽지만, 적어도 인간은 AI의 응답을 '인간의 언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응답을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죠. 그러니까, 현재 AI의 개발 방향이 '인간의 언어'로 해석될 수 있는 응답을 생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래서 인간도 그 응답을 '인간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는 한, AI와 인간 사이에, 혹은 AI와 AI 사이의 통약불가능성이란 (애초에 이론적으로도 성립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