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기존 해석에 대한 의문

상세하고 깊이 있는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박사 학위 논문의 중심 주제와 겹치는 민감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부분들을 짚어주셔서 논의를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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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가 제시했던 딜레마가 P. M. S. 해커와 같은 표준 해석에 대한 유효한 비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Youn님의 말씀 덕분에 제 논의의 핵심이 특정 용어의 적절성 여부가 아니라, '이론 거부'와 '규범적 비판'이라는 두 과제를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음이 분명해진듯 합니다.

데이비드슨에 대한 Youn님의 지적 또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비드슨의 입장은 제가 제시한 딜레마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딜레마의 한쪽 뿔을 선택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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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님께서 카벨과 맥도웰을 통해 제시해주신 내재적 비판도 바로 이 딜레마를 논의하는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의 잣대 없이, 비판 대상이 스스로 상정한 기준을 통해 그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인거죠. (가령 데이비드슨의 논의에 대해 내재적 비판을 수행하려면, 적어도 합리성 개념에 대해 저 역시 전제하는게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내재적 비판이 상대방의 전제들을 대부분 수용한 상태에서 그 안의 문제를 드러내는, 일종의 귀류법과 유사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보여주는 몇몇 비판들은 (특히 논고) 분명 이러한 내재적 비판의 유형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비판이 '전부' 내재적 비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가령, 비트겐슈타인이 '본질'을 찾으려는 철학적 충동 자체를 비판하거나, "'여기에 손이 있다는 것을 안다'의 의미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의 형식 자체를 문제 삼을 때, 그는 상대방의 전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전제들이 놓여있는 '게임판' 자체를 문제 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상대방과 같은 게임을 하다가 규칙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게임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게임판 자체에 대한 비판'은 더 이상 내재적 비판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제 원래 질문이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게임판 자체를 비판하는 행위가 어떻게 규범적 힘을 가질 수 있는지, 그 근거는 어디에서 오는지 하는 문제인거죠. 그래서 저는 효과적 비판에 대해 Youn님이 제시해주신 내재적 비판의 예시는 딜레마 상황을 다시 정교하게 재배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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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문제는 Youn님께서 현재 연구하고 계신 박사 학위 논문의 중심 주제라고 하시니, 제가 더 이상 가볍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습니다. 오늘 나눈 대화를 통해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내어 응해주신 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부디 좋은 논문을 완성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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