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to and the copula (ACKRILL 1957)
이 논문은 『소피스트』를 통해 플라톤이 be 동사의 사용(의미)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설명했는가를 robinson과 conford의 주장에 반박하며 다룬다. 논자는 플라톤의 철학적 언어에서 참여와 그 유사어들이 일상 언어에서 계사의 역할에 상응하는 역할을 지닌다는 것을 논증하고자 시도한다. 또한 다양한 진술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플라톤이 계사, 동일성 기호 그리고 존재사로서의 be 동사의 사용 간 차이를 밝힌다는 것을 논증한다.1) 플라톤에 의하면 형상들 간에는 결합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이 철학자의 일이다. 그런데 형상들 간의 결합관계에 있어서 be 동사의 의미가 확실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be 동사의 의미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운동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운동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라는 표현을 모순으로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존재사로서의 be 동사를 다른 사용과 구별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구별을 행한 걸로 보이는 구절은 ‘change is, because it shares in being(운동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있음과 섞이기 때문이다.)’이다. because 이하의 절이 운동이 있음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254D10에서 이미 운동은 있기 때문에 ‘있는 것’과 섞인다고 동의가 됐다. 또한 because 이하의 절은 운동이 있는 원인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because이하의 절은 ‘있음’에 대한 확장 또는 분석을 제시한다. ‘shares in being(있음과 섞인다)’은 존재사로서의 is의 철학자의 등가적 표현이므로 존재사로서의 의미는 구별된다.
플라톤이 존재사로서의 is를 구별한다면, 문제시되는 것은 ‘플라톤이 계사와 동일성 기호로서의 be 동사를 구별했는가’이다. 논자에 따르면 플라톤은 두 가지 사용을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은 역설적으로 보이는 ‘change is the same’와 ‘change is not the same’에 대해 분석하며 두 문장에서의 is가 사용된 방법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 두 문장 사이에 논리적모순이 없음을 보인다. ⓵‘change is the same’(운동은 같은 것이다)은 ‘change shares in sameness’(운동은 같음에 참여한다)의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서 is는 단순히 두 개념을 연결하는 계사로서 사용되며, ‘shares in’의 철학자의 등가적 표현이다. ⓶‘change is not the same(운동은 같은 것이 아니다)’은 ‘change shares in difference with respect to the same(운동은 같음에 대해 다름에 참여한다)’를 의미한다. 여기서 is는 동일성 개념을 표현하는 동일성 기호로 사용됐으며, ‘shares in difference from’의 철학적 등가 표현이다. 위 두 구절을 통해 플라톤은 명명된 두 개념을 단순히 연결하는 계사로서의 is와 동일성(혹은 차이)의 개념을 표현하는 동일성 기호로서의 is를 구분한다. 동시에 ‘shares in difference from’ 뒤에 기술될 something(어떤 것)이 동일성(혹은 차이)의 개념 아래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 논자는 플라톤의 위 분석과 프레게의 계사와 동일성 기호 구분을 비교한다. 프레게에게 있어서도 be 동사는 계사와 동일성 기호 두 가지 방법 모두로 사용 가능하다. ⓵프레게에게 있어서 계사로서의 is는 ‘falling under a concept(한 개념 아래 들어감)’과 같은 표현이다. 이는 플라톤에게 있어서 ‘μετέχειν’로 표현된다. ⓶프레게는 동일성 기호로서의 is를 ‘is no other than ~(~와 다름아닌)’로 확장시킨다. 여기서의 ‘is’는 단순한 계사이며, ‘no other than ~’은 개념을 대신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동일성 기호로서의 is를 ‘shares in sameness(같음에 참여한다)’로 확장한다. 여기서의 ‘shares in (참여한다)’은 계사의 역할을 하며 ‘falls under(영향을 받다)’를 의미하고, ‘sameness(같음)’은 개념을 칭한다. 논자는 두 철학자의 분석을 통해 플라톤이 프레게보다 명석하게 be 동사의 사용을 구분하지는 않았더라도, be 동사의 사용을 구분했다는 점만은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이 『소피스트』 251-9에서 하는 일들 중 한 가지가 계사와 동일성 기호 사이의 구별이라는 주장은 다음에 의해 지지된다. be 동사 사용 구별을 통해 늦게 배우는 자들에 대항해 면역을 가질 수 있으며, 플라톤은 자신의 논의가 그들을 제자리에 데려다 놓는 것이라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robinson은 위와 같은 주장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robinson에 따르면 플라톤은 분명 자신의 결합(communion)에 관한 논의가 늦게 배운 자들을 논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논박으로 인해 그들이 계사와 동일성 기호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 도출되지 않으며 플라톤이 그들을 계사와 동일성 기호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로 생각했다고 볼 구절이 있지도 않다. 그러나 256A10-B10이 합리적이라면(형상들 간의 결합이 있다면) 늦게 배운 자들이 be 동사를 동일성 기호로만 취급하는 오류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플라톤이 보인 be 동사의 용법 차이가 그들에게 효과적인 반박이 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논자는 주장한다. 형상들 간에 결합이 있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논거에 의해 이루어진다. ⓵만약 형상들 간에 결합이 없다면 엠페도클레스 등의 철학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말하게 된다. 조건문의 귀결절은 거짓으로, 그리고 엠페도클레스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의미 있는 말을 했다고 상정된다. ⓶형상들 간의 결합이 없다는 주장은 스스로 내적 모순을 가진다. 위와 같은 논거에 robinson은 반박한다. ⓵에 대해서는 그러한 상정은 늦게 배운 자들이 부인할 것이며, 그것에 기반한 주장은 늦게 배운 자들을 대항하는데 좋지 않다고 반박한다. ⓶에 대해서는 플라톤의 논거가 추상적이며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형상들 간의 결합이 없다는 주장은 늦게 배운 자들뿐만 아니라 진지한 철학자들에 의해서도 주장된다. 그런데 플라톤은 진지한 철학자들의 주장에 관심을 갖지도 않으며 그들 주장의 잘못이 무엇인지 짚어주지 않은 채 단순히 결합이 있다는 것을 주장할 뿐이다. 따라서 플라톤의 결합이 있다는 주장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플라톤이 분명히 불충분한 주장을 하였지만, be 동사의 두 가지 다른 사용에 대해서 구별했고 그 둘이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는 보여줬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논자는 robinson의 주장에 대해 다룬 후 conford의 주장에 대해서 다룬다. conford에 따르면 플라톤의 형상 관계 이론에서 be 동사는 계사로 쓰이는 구석이 없다. 그에 따르면 형상 간 결합관계는 대칭적인(symmetrical) 관계이므로 그 관계는 계사로서의 is로 지시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being connected with(~와 연결되다)’, ‘being associate with(~와 관련되다)’은 대칭적 관계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결합 관계에 있어서 대칭적 관계 외에도 비대칭적(non-symmetrical) 관계 또한 있다. 철자법과 음악 그리고 형상 간의 관계에 관해 언표하기 위해서는 비대칭적 관계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형상 간의 관계에서 정의(justice)는 덕(virtue)의 종류 중 하나이다. 즉 정의와 덕은 대칭적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유종 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대칭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철학자의 일이 형상 간 관계를 밝히는 것이라면 비대칭적 관계를 배제하고는 일을 수행할 수 없다. conford의 논의에 따라 비대칭적 관계의 표현인 참여를 배제하고 대칭적 관계인 혼합만을 형상들 간 결합에 적용시키면 다음과 같은 논증이 이루어진다.
⓵ ‘Motion blends with Existence(운동은 존재와 혼합된다)’와 ‘Existence blends with
Motion(존재는 운동과 혼합된다)’는 같은 말이다.
⓶‘Motion blends with Existence(운동은 존재와 섞인다)’와 ‘Motion exists(운동은 존재한다)는 같은 말이다.
⓷ ‘Existence blends with Motion(존재는 운동과 섞인다)’와 ‘Existence moves(존재는 운동한다)’는 같은 말이다.
⓸그렇다면 ‘Motion exists(운동은 존재한다)’와 ‘Existence moves(존재는 운동한다)’와 같은 말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⓸를 의도하지 않았다. conford의 주장대로 비대칭적 관계인 참여를 배제하고 대칭적 관계인 혼합만을 형상들간의 결합에 적용한다면 플라톤의 의도와는 다른 주장이 된다. conford의 주장대로 ‘communicates with(결합한다)’ 또한 형상들 간의 결합에서 대칭적 관계를 대신하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논증도 가능하다.
⓵’Motion is different from Rest(운동은 정지와 다르다)‘의 철학적 등가 표현은 ’Motion communicates with Difference from Rest(운동은 정지와 다름과 결합한다)‘이다
⓶’Motion communicates with Difference from Rest(운동은 정지와 다름과 결합한다)‘와 ’Difference from Rest communicates with Motion(정지로부터 다름은 운동과 결합한다)‘는 같은 말이다. ⓷’Difference from Rest communicates with Motion(정지로부터 다름은 운동과 결합한다)‘는 ’Difference from Rest moves(정지로부터 다름이 운동한다)‘와 철학적 등가 표현이다.
⓸그렇다면 ’Motion is different from Rest(운동은 정지와 다르다)‘와 ’Difference from Rest moves(정지로부터 다름이 운동한다)‘는 같은 말이다.
conford의 주장대로 ‘communicates with(결합한다)’ 또한 대칭적 관계라면 ⓸와 같은 부조리한 결론이 발생한다. 만약 ‘운동이 정지와 다름과 결합한다’가 ‘운동은 정지와 다르다’를 의미한다면 여기서의 ‘communicates with(결합한다)’는 비대칭적 관계의 표현인 ‘partaking of(참여하다)’ 혹은 ‘falling under(영향을 받다)’로 바꾸어 표현되어야 한다. 논자는 스스로 conford의 주장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은 너무 많은 해석과 추정이 들어가있기 때문에 플라톤이 결합 관계에 대해 사용한 다양한 용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이 사용한 용어들 중 몇몇은 비규정적인 대칭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몇몇은 규정적이고 비대칭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기대된다. conford는 이러한 기대에 대해서 255d에 근거하여 형상들 간의 참여는 계사와 관련 없이 혼합과 같은 대칭적인 관계이라며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유적 형상이 종적 형상에 참여하는 것과 못지않게 종적 형상은 유적 형상에 참여한다. 그리고 존재가 ‘자체적인 것’과 ‘다른 것과 관계하는 것’ 모두에 참여하기 때문에 참여는 대칭적인 관계다. conford는 ‘Existence, which includes both these form(the absolute and the relative), is said to partake of both(자체적인 것과 다른 것과 관계하는 것 모두를 포함하는 존재는 그 둘이 참여한다고 말해진다)’의 구절을 통해 ‘partaking(참여)’가 대칭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언급은 형상들 간의 결합이 오직 대칭적 혼합이라는 그의 주장을 정당화해주지는 못한다. 논자는 David Ross의 주장을 근거로 들어 플라톤은 형상 간의 결합에 관한 용어를 2격과 3격 두 가지 문법구조로 나누어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Ross에 따르면 2격을 사용할 때는 ‘share in(참여하다)’의 의미로, 3격은 ‘combine with(결합하다)’ 혹은 ‘communicate with (결합하다)’의 의미로 사용했다. Ross는 플라톤이 두 차이에 대해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논자에 따르면 플라톤은 두 구조를 불분명하게 혹은 교환 가능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2격 문장 구조에서는 be 동사는 계사로서 사용됐으며, 2격 문장 구조는 한 개념이 다른 개념 아래로 들어가는 경우를 표현할 때 사용됐다. 반면 3격 문장 구조는 형상들간의 연결에 대한 상당히 일반적인 언급들에서 발생하며, 형상들의 어떤 특수한 쌍에 아무런규정된 사태도 진술되고 있지 않은 경우에 발생한다. 따라서 플라톤은 의식적으로 형상들 간의 결합을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사용했으며, 어떤 때에는 일반적인 대칭적 관념인‘connectedness(연결)’을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비대칭적 관념인 ‘share in(참여하다)’를 사용하기도 했다. 형상 간의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인 ‘μετέχειν’는 251-259에서 13번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형상들 간의 결합 관계가 대칭적인 관계임을 보여주기 위해 conford가 사용한 예인 255d이다. 하지만 나머지 열두 개의 경우 'A-ness μετέχει B-ness'의 형태를 취하는데, 이는 비대칭적 관계인 ‘A-ness is(계사) B’를 의미하며, ‘B-ness is(계사) A’를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플라톤이 형상 간의 결합을 표현하기 위해 ‘μετέχειν’를 사용하는 방식 모두가 대칭적 관계를 표현했다고 보기 힘들다. 또한 255e8-257a11에서 형상들 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때 등장하는 ‘μετέχειν’, ‘μεταλαμβάνειν’, 그리고 2격과 함께한 ‘κοινωνεῖν’는 conford가 배제하는 비대칭적 은유인 ‘partaking of(참여하다)’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한 플라톤에게 있어서 ‘partaking of(참여하다)의 의미는 분명하다. 한 개념의 이름인 추상 명사 뒤에 따라오는 ‘partaking of(참여하다)’는 일상적 언어 표현에서 그 추상 명사에 대응하는 형용사 뒤에 따라오는 계사로서의 is와 등가적 표현이다. 따라서 ‘blending(혼합) 은유가 형상 간의 관계에 관한 유일한 증거라는 conford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으며 ’μετέχειν‘와 그 문법적 활용들은 혼합의 단순한 비유로 치환할 수 없다.
- 존재사(existential use)로서의 be 동사는 ‘X is’ 와 같은 형식의 문장에서 사용되며, 여기서 is는 보
충어 없이 동사로서 홀로 사용되고 문장의 의미는 ‘x가 존재한다’이다. 계사(copula)로서의 be 동사
는 ‘X is Y’와 같은 형식의 문장에서 사용되며, 주어의 지시체 X가 보충어의 지시체 Y에 참여 혹은
속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동일성 기호(identify-sign)로서의 be동사는 ‘X is Y’와 같은 형식의 문장
에서 사용되며, 같음의 형상에 참여한 결과로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