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질문

안녕하세요 오늘 수능특강 지문을 공부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지문은 분노라는 감정을 인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표지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했는데요. 타인과 내가 찌푸리는 눈썹을 분노의 요소라 정의하고 합의가 됐다면 이러한 표지를 통해 분노라는 감정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용을 읽고 예전에 재미삼아 했던 철학자 테스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도 없는 숲 속 나무 한그루가 쓰러졌을 때 소리가 난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소리라는 개념이 귀에 들리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듣는 자가 없으니 그것을 소리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개념도 분노라는 감정처럼 등장 이전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라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소리라는 개념의 인식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하고 머리가 복잡해서 한번 여쭈어 봅니다. 적절한 적용인가요?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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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철학에서 ‘행동주의‘라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문 같네요. 어떤 사람이 고통이나 분노 같은 심적 상태를 지니고 있는지의 여부가, 그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보이고 있는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가령, “철수가 치통을 느낀다.“라고 할 수 있으려면, 철수가 “아야!“하고 외치면서, 얼굴을 찡그리면서, 진통제를 찾으면서, 치과 예약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죠.

행동주의는 주로 20세기 초중반에 논리실증주의라는 입장과 함께 널리 퍼졌습니다. ‘심적 실체‘, ‘심적 상태‘, ‘심적 속성‘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환원하여 설명하려 하는 입장이다 보니, 실증주의를 지지하는 철학자들이 대개 행동주의도 지지한 것이죠.

오늘날에는 행동주의를 받아들이는 철학자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아무리 고통이나 분노를 느끼더라도 전혀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는 초금욕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행동주의가 설명하기도 어렵고, ‘감각질‘처럼 1인칭적 관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현상도 설명하기 어려운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어서요.

다만, 행동주의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여러 입장들 중에서 ‘기능주의‘라는 입장은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지지합니다. 특정한 자극이 입력되었을 때 거기에 맞는 출력을 일으키는 기능적 성향으로 마음을 설명하려는 입장인데, 행동주의보다 훨씬 더 섬세한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을 뿐더러, 마음을 초자연이거나 신비주의적 실체 따위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옹호받죠. (물론, 이 입장에도 여러 비판이 제기되는데, 그 중 하나가 존 설의 유명한 ‘중국어 방‘ 이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