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금요일 저녁입니다. 알튀세르를 공부하다가 글이 도저히 안 읽히고, 그런데 글은 계속 읽어야겠고.. 이런 양가적 잡념에 시달리다가 김영건 선생님의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거기서 우연하게 <내 친구들을 위한 철학>을 읽었는데, 꽤 재밌는 데다 마침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주제이기도 해서 여기에 일부를 발췌해 봅니다.
벌써 십년은 넘은 것 같다. 아주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난다. 나름대로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갔던 두 놈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들이 이야기한다. 가끔 네 블로그에 들어와 본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다고. 이런 <스발놈>들이 있는가. ••• 여전히 그들의 삶에 바쁘기 때문이고, 이미 자기의 체험에서 얻은 어떤 생각이 거의 옳은 것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해도 적어도 그들에게서는 그것이 그들이 실제로 겪었던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것을 수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보냈던 과거 삶을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이 나에게 가르친 교훈이 바로 철학의 소통성일 것이다. 내가 제 아무리 쉽게 표현한다고 해도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난해한 개소리이다. 그것이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별 의의가 없는지 평가하기 이전에 우선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면, 그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 나도 해결하기 어려운 내 삶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대신에 오히려 셀라스의 책을 읽는 것이 더욱 용이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내 삶에 대한 철학적 혹은 수필적 성찰보다는 오히려 셀라스의 철학이 가진 의미와 한계를 밝히는 것이 적어도 내 직업 윤리에 충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자라는 것이 철학학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일종의 계몽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계몽하는가? 합리성일 수도 있고, 아니면 로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잔인성을 상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던 간에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중요하다. 조금만 생각하면 모든 인간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철학적 주제들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표현한다는 것, 그 이야기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철학이 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인데, 어떻게 해야 그것을 잘 하는 것인지 어렵기만 한 문제이다.
<인간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들을 다루는 철학을 우리는 알기 쉽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이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소리이지만, 정작 일상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요구가 된다는 점도 늘 경험해요. 특히 친구들과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한 듯싶네요. 물론 모든 문제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려는 강박이나 욕심 같은 철학적 질병과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만, 제 주위에는 철학도나 적어도 철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없는지라 철학을 이야기할 틈이 거의 없다는 게 저를 외롭게 만들기도 하네요.(선생님의 글과 다르게 제 이야기는 조금 무겁네요.. ㅎㅎ)
여하튼 올빼미분들은 비전공자인 친구들과 철학을 자주 이야기하시는지, 어떻게 이야기하시는지 궁금하네요!
https://blog.naver.com/sellars/100123618886?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6개의 좋아요
(친구가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시는 게 예의…읍읍)
저는 언젠가부터 굳이 철학적 얘기를 잘 안 하게 되네요. 아니면 철학이랑 관련된 사람과만 철학 이야기를 하거나요. 즐거울 수 있는 대화 소재는 철학 말고도 많으니…. 다만 비전공자라도 철학 버튼(?)을 누르면 급발진하는 것 같긴 합니다.
7개의 좋아요
저는 많이 합니다. 어제도 의학 공부하는 친구와 쇼펜하우어에 대해서 새벽 다섯 시까지 얘기했네요.
비전공자들이랑 철학 얘기하는 게 전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전공자들이랑 얘기하면 깊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거시적으로 볼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비전공자들이랑 얘기하면 이런 거시적인 것도 많이 보고, 생각지도 못했던 연결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무엇보다 비전공자들한테 얘기해주기 위해서 머릿속에서 한 번 필터를 거르고 말하게 되는데, 그렇게 말할 때 오히려 제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전 전공자들과의 대화만큼이나 비전공자들과의 대화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7개의 좋아요
제 목표는 제가 관심을 갖는 철학들을 대강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라 대화를 통해 어떤 문제를 <거시적>으로 보게 되기까지는 아직 먼 듯합니다.. 지금은 꾸준히 공부해야겠어요 ㅎㅎ 여하튼 비전공자와의 소통도 철학하기의 필요조건임은 아주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에 대해 새벽까지 이야기하는 의학 전공 친구는 상당히 귀하군요..)
1개의 좋아요
전공자분들이 주로 비전공자와 대화를 피하면서 한 번 물꼬를 틀면 비전공자 친구가 급발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아마 이런 상황이지 않을까요??
4개의 좋아요
저도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가 아니면 그다지 얘기를 꺼내지 않는 편입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면 상당히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사실 제가 친구가 많지 않고 딱히 말을 많이 안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산책을 할 때 제가 읽은 내용을 남한테 강의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영어로 작게 소리내어 요약하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물론 제 영어 어휘 수준이 처참해서 만족스럽게 중얼거리기는 힘들지만, 영어 공부도 되리라 생각해서요. 특히 한국어로 혼잣말하는 건 그 내용이 남들에게 쉽게 들린다는 점에서 그나마 익숙한 영어로 중얼거리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니체의 철학적 방법론에서 Justification과 affirmation의 차이', '헤겔의 체계에서 부정의 역할', '미적 경험에 대한 설명에서 칸트적 모델과 헤겔적 모델의 차이' 정도의 주제를 잡고 혼자서 대충 중얼거려봤네요. 물론 어휘적 측면에서 매우 기초적인 단어들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고, 많은 부분에서 알맞은 어휘를 찾느라 머뭇거렸지만요.
4개의 좋아요
니체와 정치 —특히 좌파— 라는 어그로 끌리기 최고로 좋은 것들을 전공하다보니 대화가 피곤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저는 최대한 피하고 전공자들과만 얘기하는 편입니다. 예전엔 인스타 프로필 설명에 “철학 질문하면 팔로우 끊음”이라고 써놓기도 했네요.
6개의 좋아요
저도 철학얘기를 하고 싶어서 주제를 꺼내면 경험에 의한 가치판단만이 목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작업이 필요해서 대화가 힘들더라고요... 특히 메타윤리에 관심이 많아서 반골 성향이 강한 학문에서 논리적 정합성을 찾아 얘기한다던가 아니면 주류 학문에서 정합적이지 않은 부분을 얘기한다던가 하면
제가 반골 취급당하는게 소외감 느껴집니다;;
4개의 좋아요
아, 아뇨 제가 버튼이 눌리면 급발진한다는 말입니다.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