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히테 저작의 영역본에 대해서

요즘 피히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국내 자료가 많지 않아 영역본을 읽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찾아본 바로는 Daniel Breazeale가 옮긴 Introductions to the Wissenschaftslehre and Other Writings
(Hackett, 1994)와 같은 분이 번역하신 <J. G. Fichte: Foundation of the Entire Wissenschaftslehre and Related Writings, 1794-95>(Oxford, 2022)가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전자는 소위 '학문론 제1서론'과 '제2서론'이라고 불리는 글과 여러 짧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고, 후자에는 '학문론 또는 이른바 철학의 개념에 관하여'라는, 현재 한국어 번역본을 구할 수 있는 저술과 '전체 학문론의 기초'라는, 지금은 국역본을 구할 수 없는 대표 저술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요. 제가 궁금한 것은, 저 두 책 중에서 어떤 책을 읽는 것이 피히테 철학의 핵심을 파악하기에 더 적절한가 하는 점입니다. 또 번역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추천할 만한지도요. 개인적으로는 분량상으로도 그렇지만 국역본을 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1서론'과 '제2서론'에 마음이 가기는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핵심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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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몇 자 적어볼게요.

일단 저 두 번역 다 굉장히 좋은 번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2022년 버전은 좋은 평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2021년에 제 교수님께 피히테를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2022년에 브리질 번역이 나오니 그때까지 참으라고 하셨네요.

Introductions to Wissenschaftslehre 는 피히테가 정말 자신의 철학을 소개하는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자신의 철학을 일일히 설명한다기보다는 그때 어떤 철학들이 있는지, 또 어떤 비판이 가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관념론이 맞는지 등을 주장했던 걸로 기억해요 (정확히 말하면 첫번째 introduction은 자신의 체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두번째는 자신의 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써졌던 걸로 기억해요. 그러니깐 두번째가 더 디테일하고 '비판적인' 면모가 많겠지요.). 그러다보니 저는 이것만 읽었을 땐 붕 뜨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 관념론이 맞는 형태의 철학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뭘 주장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Foundation of the Entire Wissenschaftslehre를 읽기 시작했었지요.

그리고 Foundation of the Entire Wissenschaftslehre 은 자기 철학을 진짜 파고드는 저작이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하지만 또 렉쳐 노트가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제대로 서술한다기보다는 예측해나가면서 읽어야했던 기억이 있네요. 제 기억에 주석 몇 개가 되게 중요했었는데, 그걸로 교수님이랑 싸우던 게 기억이 납니다. 피히테의 저작을 읽으면 이런 '문헌적인 작업'을 많이 해야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할 거 같아요.

또, 피히테가 전반적으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는 않은 철학자라서, 이해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피히테가 말하는 거, 그리고 연구자들이 말하는 걸 그럴싸하게 duplicate할 순 있겠지만, 그 말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배경을 갖추고 있어야해요. (보통 철학에서는 '쉽게 말할 수 없으면 이해한 게 아니다' 라는 말을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비전공자들 (정확히 말하면 철학 전공자지만 피히테 비전공자) 에게 설명을 할 수 있어야돼요. 근데 저는 아직도 피히테의 철학을 비전공자들한테 설명할 자신이 없네요. 그냥 전공자들한테 '아는 척'만 할 뿐입니다.). 특히 칸트의 intellectual intuition이 왜 중요한지 비전공자가 이해할 수 있게 오랫동안 떠들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꽤 힘드실 수도 있어요.

2025년에 피히테를 공부하는 건 여러모로 힘들어요. 괜찮은 입문서 하나도 찾기 어렵습니다. 말릴 생각은 없지만, 하시기 전에 이 점들을 염두에 두고 하셔야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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