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결론]
헤겔은 절대자≒진무한≒절대정신≒자유라는 통일된 개념 구조를 제시하나, 그러나 "하나의 절대자만 허용", "세계창조 이전 절대자의 상태", "인간이 절대자를 완전 인식 가능" 등에서 여러 논쟁점을 남기며, 이들은 헤겔 체계의 내적 일관성과 종교철학적 함의를 재검토하도록 유도한다. 해당 논문에서 저자가 바라보는 절대자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그에 따른 가능한 논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4.1 비판적 고찰 및 쟁점
(1) 절대자 단일성의 문제: 헤겔에게 절대자는 유일하나, 수학적 무한열(자연수·짝수·홀수 집합)처럼 서로 독립적인 복수의 무한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 세계창조 이전의 절대자: 순수존재(Sein)로서 '아직 외화를 이루지 않은' 절대자는 불완전한 존재인가? 세계창조는 본래 내재한 유한자의 전개인가, 아니면 외적 필요에 의한 행위인가?
(3) 유한 정신의 필요성: 절대정신이 대타성을 위해 반드시 유한 정신(인간)을 필요로 하는지, 물질 등 다른 타자도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한 논란.
(4) 인간 이성의 한계: 헤겔이 제시한 ‘인간 속 신적 이성’을 통해 절대지absolute Wissen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의 본질적 유한성 및 인식 좌절 경험과 어떻게 조화되는가?
4.2 결론이 남겨놓은 쟁점들과 그 해결책
그러나 논문이 게시된 시점에서 요약문이 쓰인 시점 까지 대략 20년 정도의 시간적 차이를 볼 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쟁점들은 오늘날 현대의 학자들에 의해서 어느 정도 해결되었거나, 몇몇은 이미 헤겔 자신에게도 해결책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각각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1) 절대자 단일성의 문제: 칸토어의 집합에서 나타나는 초한기수에서 도달불가능한 '절대적 무한' 개념의 모순적 성격과 연동하면 절대자의 단일성은 궁극적으로 내재적인 모순의 자기관계적 구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를 지젝은 바디우의 사랑 개념('사랑은 근본적으로 무신론적 개념')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함의를 통해 그것이 대타자(=초월적 보증자) 자신의 결여임을 설명한 뒤, 이후에 절대정신의 단계에 도달한 정신은 '사랑의 심연'이라는 구조로 스스로를 자신을 드러낸다. 즉 절대자란 그 자신의 궁극적 부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절대지를 자각한 절대정신은 단순히 세계를 하나로 포섭하는 틀(형식)이 아니라, 그러한 틀이 결여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며 이러한 틀의 부재는 틀 자체에 내재적인 것으로, 자기관계적으로 모든 외적 대립을 자기 안에서 끌어안게(=포섭·지양하게)된다. 이를 지젝은 자신의 저서『Less than nothing』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운명을 보증해줄 대타자는 없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우리 사랑의 자기근거적 심연뿐이다." 지젝은 이같은 절대정신의 성격이 헤겔적인 공동체('성령')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을 이룬다고 말한다.
(2) 세계창조 이전의 절대자: 이 또한 철학적 차원에선 라캉이 프로이트에게서 차용한 용어 '사후성'을 통한 개념의 소급적 과정을 해명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즉, 즉자존재의 전개는 '사후성(과거로 소급해가는 속성)'이라는 구조를 갖는다. 즉자존재는 순수 자기정립의 과정으로 무규정성 속에서 스스로를 긍정·부정하며 자기 자신을 조건 삼는다. 헤겔에게서 이는 전통적인 '외적 조건 없음'과는 구별되는 자기매개적 무규정성이다.
따라서, 절대자의 즉자 존재는 순수하게 논리적이며 따라서 소급적으로 정립된 가정이고, 논리학에서 나타난 즉자 존재의 전개는 단순히 즉자대자적인 상태에 있는 정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소급적으로 정립된 가정'을 회상하는 중층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다.즉, 절대자의 즉자 존재는 늘 이미 소급되어서만 판단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증법적 한계 바깥으로 자신을 밀어붙이지 못한다 — 혹은 달리 표현하면 그 바깥은 자신 안에 내재적 한계로 존재한다.
이처럼 즉자 존재에 내재된 모순은 변증법적 긴장의 궁극적 원천으로, 절대지란 이처럼 절대자가 모든 대립이 자신의 정신 속 중핵으로 자리잡는 궁극적인 내적 모순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즉, 절대자는 절대자 자신의 부재를 알며, 이를 통해 (절대자의) 정신은 자기관계하고, 따라서 변증법적 운동을 가능케한다.
(3) 유한 정신의 필요성: 이 또한 2번의 맥락에서 설명된다. 정신은 자신을 배제하는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전제, 곧 '자기정립'한다. 이 가정을 벗어나서 이 문제를 고찰한다는 것은 늘 자기에 대하여 모순을 내재한다. (=내부의 타자성) 정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절대정신은 우리가 사유하는 한에서의 절대정신이며, 또한 절대정신은 그러한 한에서만 존재한다. 절대정신과 인간의 유한 정신 사이의 불가분성은 세계와 세계 인식의 불가분성처럼 유착되어있다.
이 물음에 대해선 다양한 대답이 가능하겠으나, 당연하게도 이는 늘 헤겔의 총체성 개념처럼 열려있는 문제로 헤겔의 말을 빌리자면 오직 "전체만이 참(das Ganze allein ist wahr)"이라 말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본 요약문의 입장은 이렇다: 그것이 가능한지는 오로지 그것의 가능성이 실현된 이후에야 알 수 있다. 헤겔은 『법철학 강요』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자 속에서 자기 곁에 있음, 이것이 곧 자유이다." 이는 저자도 논문에서 인용한 문구로, 사실 문제의 해결책은 내재해있었던 셈이다.
(4) 인간 이성의 한계: 이 또한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된다. 실존적 문제가 실존적 상태로 전환, '지양'된다면 가능하다. 절대지가 인간 실존의 문제를 해결해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 실존이 가진 문제가 인간 실존을 이루는 근간, 곧 그 자신의 존재론적 균열이자 가능 조건으로서의 내재적 모순임을 깨달으면 된다. 철학적 해결책은 이렇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단순히 사유와 존재의 간극을 해소하는 것으론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인간 실존에 있어 이론적 문제가 지양되고나면 남는 부분은, 다름 아닌 실천적 영역의 활동 그리고 부정성과의 끊임없는 대면 속에서 해소시켜야 할 문제로 추측된다. 지젝은 한 인터뷰(Current Affairs, Oct 2019)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사랑은 극단적으로 폭력적 행위다. (...) 사랑은 무엇인가를 지목하는 것이다."
4.3 논의 확장: 이 논문의 통찰에서 얻을 수 있는 것
그러므로 해당 논문의 통찰에서 얻을 수 있는 변증법적 함의는 실천적 함의로 이어지는 가교이며, 이에 대해선 다음 두 항목으로 간단하게 요약된다.
(1) 이데올로기적 폐쇄 위험 방지: 절대정신을 '닫힌 전체'로 읽으면, 현실 모순이 이미 해소된 것처럼 보이는 환상idéological fantasy을 조장한다는 지젝의 지적과 이을 수 있다.
(2) 정치·종교철학적 공동체 가능성: 헤겔식 성령론pneumatology에서 절대정신은 다양한 주체들을 아가페agapē적 사랑으로 묶는 열린 공동체로 기능한다. 열린 절대정신이 현실 대립을 내적 간극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연대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다루므로, 절대정신 개념의 실천적 잠재력을 지닌다.
저자가 열어놓은 지평이 지닌 실천적 함의란, 이처럼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의 가능성이다. 저자는 충실하게 절대자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깊이있는 성찰을 이어나갔다.
따라서 본 요약문은 인식-존재는 논문의 내용에서 절대자의 도래가 '정신'의 입장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것에 집중했으며, 더하여 이러한 이해는 헤겔적 '총체성'이 지닌 논리적이고 실천적인 함의를 지닌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